『우리의 연애는 모두의 관심사』,마름모, 2025
그런 상상을 한다. 커다란 마트 가방에 빈 배낭과 옷가지 몇 벌, 운동화, 모자, 마스크를 챙긴다. 여동생의 이름으로 개통한 휴대전화와 미리 조금씩 모아둔 현금을 들고 집을 빠져나온다. 영등포역으로 가서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제일 중요한 것은 신발을 갈아 신는 거다―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모든 짐을 배낭에 넣는다. 그러고 기차를 탄다. 태어나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도시로 간다. 아는 이가 단 한 명도 없는 곳은 의외로 많다. 예컨대 화양읍이나 미암면 같은 곳, 듣도 보도 못한 곳으로 떠나는 거다. 특산물이 나는 고장이면 오히려 좋다. 하루 벌어 하루 살 수 있는 일을 쉽게 찾을 수도 있다. 그렇게 뜨내기처럼, 그 동네에서 아무도 알지 못하는 완벽한 이방인으로 사는 그런 상상. 언젠가 실현 가능성이 있을지 모르니 아주 헛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따금 불가능하거나 금지된 일을 꿈꾼다. 그런 일들은 가슴을 뛰게 만든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내로남불, 금지된 일 중에 최고는 사랑이 아닐까. 장강명, 차무진, 소향, 정명섭 작가의 앤솔러지 『우리의 연애는 모두의 관심사』는 한국 사회 어디에나 있지만 드러내지 않는, 누구나 마음속으로는 몰래 꿈꾸지만 겉으로는 아닌 척하는 금지된 사랑에 대해서 말한다. 현재 문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네 명의 작가가 어느 북토크 뒤풀이 자리에서 툭툭 던진 말이 시초가 되어 이번 앤솔러지가 탄생했다고 한다. 그들의 작품 세계가 아주 비슷하다거나, 연령이나 활동기간이 같은 것도 아닌데, 신기하게도 한 사람이 썼다고 해도 될 만큼 묘하게 분위기가 비슷하다. 공통의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네 편의 단편 소설의 핵심 키워드는 카지노 쿠폰이다.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카지노 쿠폰은 때로 올바르지 못한 카지노 쿠폰으로 치부되곤 한다. 그 판단의 기준은 무엇이며, 과연 누가 판단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봐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금지된 카지노 쿠폰을 꿈꾸고, 왜 그런 카지노 쿠폰에 빠지는가. 소설은 가정이 있는 직장 상사와의 건조한 섹스, 종교적인 규범과 인륜에 맞서는 욕정, 복수를 위한 의도적인 접근과 유혹, 동성 간의 카지노 쿠폰, 배신과 살인 등 자극적인 장면으로 우리를 홀린다. 그 너머에 하나의 공통점을 찾고 싶었다, 무엇이 그들을 카지노 쿠폰에 빠지게 했는지.
“어떤 공간에 인간적인 분위기를 부여하는 것이 뭘까 하는 생각도 했다.”
“큰딸은 모두가 죽어 있는 집에서 홀로 생명을 품고 있었고, 또 생명 그 자체였다.”
“과연 진짜 내 집은 어디일까 생각했다. 세상 어디에도 온전한 내 집은 없는 것만 같았던 시절이 꽤 길었으니까.”
“둘은 예전부터 각방을 썼어요. 어차피 그 새끼는 집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거든요.”
정리가 잘 되어 있지만 삭막한 오피스텔, 그마저도 피난처로 삼은 공간, 아내가 죽은 뒤에도 아내를 잊지 못하고 한 집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남자, 부유하고 화려하지만 자신의 것이 아닌 집, 같은 집에 살지만 함께 살지 않는 부부. 그들에게 집은 있지만 가정은 없다. 가정의 부재에서 오는 결핍.
결핍은 흘러넘쳐서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질투의 씨앗이며, 자격지심의 원천이다. 증오와 배신도 결핍에서 시작되곤 한다. 결핍이 성공이나 성취에 도달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결핍은 마치 늪 같다. 발버둥 칠수록 더 깊숙한 곳으로 빠지고, 한 번 빠지면 헤어나기 힘들다. 늪은 밖에 있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결핍이라는 늪에서 나를 끄집어낼 수 있는 것은 타인의 카지노 쿠폰도 타인과의 카지노 쿠폰도 아니다. 지극한 자신과의 카지노 쿠폰이다. 타인의 이해를 바라지 말고 내가 어떤 결핍의 늪에 빠져 있는지 먼저 알아차려야 한다. 내가 나를 꺼내야 한다.
“마음이 차가워서 그런 거야. 마음을 좀 따뜻하게 가져보라고.”
누군가의 카지노 쿠폰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기에 앞서, 그의 결핍이 무엇인지 조금이라도 알게 된다면 심판을 멈출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에게서 나를 발견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