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라고요?
"얌전히 보고들 있어. 1층에 금방 다녀올게. “
아이들에게 꼬마버스 타요 동영상을 틀어주고 방을 나섰다. 7살, 6살, 3살 여아들만 방에 두고 얼른 1층에 있는 기념품 숍에 다녀올 생각이었다. 내일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라 오늘밖에 시간이 없었다. 친구 에스와 나는 홀가분해진 기분으로 기념품 숍으로 향했다. 우리가 찾는 물건이 마침 품절이었다. 호텔 정문을 나서면 바로 왼편에 있는 드럭 스토어에 들러보기로 했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친구 에스는 미혼 시절 나의 여행 메이트였다. 결혼 후 각자 육아로 살기 바쁘니 어느 틈에 소원해졌다가 7년 만에 다시 뭉친 여행이었다. 이번엔 각자의 딸들을 데리고 휴양지인 괌으로 향했다. 에스는 결혼 후 첫 해외여행이라 아이 둘을 데리고 고생스러워도 기꺼이 즐거워했다. 우리는 예전보다 후덕해지고 손이 많이 가는 예쁜 떨거지들을 동반했지만, 미혼때와는 견줄 수 없는 즐거움으로4일을 순식간에 보냈다.
호텔 로비에서 우산을 빌렸다. 우산 속으로 에스가 내게 밀착해 오니 시공간은 순식간에 여고시절로 돌아갔다. 우리는 변한 게 없는데 세월만 야속하게 흘렀다며 깔깔 웃었다. 첫 번째 드럭 스토어에도찾는 물건은 없었다. 한 블록만 더 걸어가찾아보기로 했다.돌아오기까지 채 몇 분 걸리지 않았기에 우리는 그 가게까지 총 세 군데를 들렀다. 결국 물건을 구했는지 이젠 기억나지 않는다.
로비로 돌아와 우산을 반납하려는데 키가 큰 서양인 남자가 다가왔다. 뭐 도와드릴 게 있느냐고 묻는다. 아니다 우린 우산 반납만 하면 된다고 답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에 가까워질수록 아기 우는 소리가 들려와 마음이 조급해졌다. 7층에내리자마자 달려갔지만방에 가까워질수록 울음소리가 멀어지는 게 아닌가. 우리 방에서 들리는 소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카드 키를 대고 육중한 방문을 밀어젖히자 동영상 소리가 방을 채우고 있다. 다들 영상 보느라 조용하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문가에 벗어둔 아이들 신발이 없다. 코너를 돌아 침대를 보니 아이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동영상 안에서 꼬마버스 타요가 저 혼자 신나게 노래 부르고 있었다.
"애들이 없어!"
나의 외침에 에스가 하얗게 질렸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나도 손 끝으로 피가 빠져나가는 듯 얼굴부터 전신이 하얘지고 있었다. 에스가 복도로 나가 살펴봤지만 고요한 적막뿐. 나는 방 안 전화기를 들어 0번을 눌렀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프런트의 안내 직원 목소리가 들렸다. 뭐라고 말해야 하지? 아이들이 없어졌다? 아이들을 잃어버렸다? 결국 아이들이 사라졌다고 말하고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프런트로 가자!
로비층으로 내려가는 내내 우리는 아무 말도 없었다. 심장만 요란스럽게 쿵쾅거렸다. 프런트로 달려가는데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는 게 보였다. 아까 봤던 키 큰 서양인 남자와 동양인 남자로 이뤄진 호텔 직원들이었다. 프런트의 직원에게 방금 전화했던 사람인데 아이들이 방에 없다고 말하는 순간, 엄마!! 하고 큰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로비 옆 라운지에서 우리 아이들 셋이앉아 있었다. 테이블에는오렌지주스가, 옆에는 호텔 직원으로 보이는 여자가 함께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에스는 아이들에게 달려갔고 안도의 눈물을 터뜨렸다. 그제야 로비에 모여있던 직원들 무리가 다가왔다.
전말은 이랬다. 동영상을 보다가 3살 막내가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울기 시작했다. 7살 큰아이는 엄마는 1층에 있다고 말했지만 아기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고. 할 수 없이 큰 아이가 6살과 3살 아이 모두를 데리고 1층으로 내려온 것이다. 동생들에게 신발을 신기고 그 무거운 방문을 당겨서 열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1층으로 가려면 로비인 L 버튼을 눌러야 했는데 7살은 가르쳐 주지도 않은 그걸 해냈다. 그리고 1층의 기념품 숍에 들어가서 엄마를 외쳤다고 한다. 하지만이미 고딩이 된 엄마들은 호텔 바깥에 있었고아이는 계산대 직원에게당당하게 한국말로 외쳤다
"우리 엄마 못 봤어요? 여기 온다고 했는데?"
아이들만 돌아다니는 걸 이상하게 여긴 계산원이 바로 로비에 연락했다. 그 시간 우리는 우산 속에서 팔짱을 끼고순간이자 영겁을 만끽하고있었다.
미국에서는 미취학 아동만 두고 부모가 집을 비우는 것은 아동학대라고 한다. 미국령인 괌에서도 아동학대는 중범죄에 속한다. 하룻밤 철창에 갇히고 머그샷을 찍어야 한다. 호텔 지배인인 키 큰 남자가경찰에 연락하겠다고 강경하게 나섰다. 상황을 지켜보던 로비의 한국인 직원이 곧 한국인 매니저를 불렀던 모양이다.
그는 한국에서는 이런 일이 흔하게 있으니 조금 기다려 보자고 했던 것. 그래도 키 큰 남자는 꽤 강경했던 모양이었고 그를 회유하느라 한국인 매니저는 애를 먹은 듯했다. 마침 그때 하얗게 질린 우리가 나타났고, 아이들을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린 에스를 보며 그들은 또 한참을 얘기하더니 마침내 키 큰 남자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휴 큰일 날 뻔했어요.
그렇게 그에게서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다. 에스의 눈물이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고의가 인정돼서 경찰서로 끌려갔을지 모르겠다. 다리가 풀려 일어설 수 없는 엄마들 옆에서 아이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천진하게 주스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연신 한국인 직원들에게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동시에 부끄러움도 밀려와 철썩였다. 얼른 방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도망치고 싶었지만 아까 빠져나간 피 때문인지 한 발짝 때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날의 비는 결국 태풍으로 바뀌어 비행기는 하루 지연되었다. 우리는 호텔에서 하루를 더 머물러야 했다. 다음 날 아침 조식 식당에 가니 한국인 매니저가온라인 카지노 게임 이름을 한 명씩 부르며 밝게 인사했다. 그의 눈에 우리는 무식한 한국 엄마들로 비쳤을지 모르겠다. 6살 내 딸과 3살 막내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7살 큰아이는 괌 여행과 자신들의 실종사건을 꽤 즐겁게 기억한다. 공포와 불안이 아닌 즐거운 해프닝으로 기억해줘서 고맙다. 손끝으로 피가 빠져나가 똑똑 방울지며 침잠하는 기분은 어미들로 충분하다.
언젠가 아기를 잃어버리는 꿈을꾸고 일어나 보니, 얼굴과 베개가 온통 눈물범벅이었다. 꿈속에서의 참담함이 생생해 깨자마자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옆에 있는지 확인했다. 현실에서 그것도 해외에서 잠시나마 아이들을 잃어버리니 세상 그 무엇도 덧없게 느껴질 뿐이다. 그저 내 옆에서 이렇게 웃어줘서 고마울 뿐이다.
우리는 꽤나 의연해졌다. 각종 실수와 사고를 치고 다니는 시트콤 속에서도 애만 안 잃어버리면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곤 한다. 그 후로 11년이 흘렀다. 아이들은 어느새 고등학생, 막내는 중학생이 되었다. 우리는 다시 여행을 계획 중이다. 사춘기들과 갱년기들의 충돌이 얼마나 멋진 하모니를 연주해 낼지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