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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Mar 06. 2025

이틀 동안 카지노 게임 끊어본 썰

카지노 게임, 다들 보시죠?


근데 다들 '' 보시는지 생각해 보셨나요? 심심해서, 뭔가 배우려고, 음악을 듣고 싶어서, 등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텐데요. 저의 경우는 이게 이유였습니다.


공백을 채우려고 카지노 게임 본다


저는 늘 집에서 일을 하고, 아이들이 집에 오면 아이들을 돌보다 하루가 갑니다. 그러다 보니 뭔가 '나 자신만을 위한 시간'이라는 게 특별히 없어요. 몸과 손가락은 계속 움직이는데 뭔가 심심한 느낌이랄까요? 즐거움에 대한 욕구는 있는데 그렇다고 밖에 나가서 뭔가 할 시간은 없고, 원래 해야 할 일들은 있고..


마음의 공백을 채우는 데 카지노 게임가 최고였던 겁니다. 일을 할 때는 포모도로 동영상을 틀어 놓거나 asmr 영상을 틀어 두고, 빨래를 개거나 방 정리를 할 때는 범죄물 다큐멘터리를 귀로 듣고, 운동을 할 때는 자극적인 예능을 보고, 너무 카지노 게임 폐인 같다고 느낄 때는 세계사나 한국사 다큐를 보아서 자존감을 되찾았습니다(?). 심지어 잘 때도 카지노 게임로 오디오북을 들으며 잠을 청했어요.

카지노 게임

그러다 보니 어느새 카지노 게임가 틀어져 있지 않은 시간이 지루하고 단조롭게 느껴지기 시작했죠. 한 시간 정도 일하고 나서 좀 쉬어야 하는데, 뇌에 자극을 주지 않는 휴식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일을 하든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고 멀티태스킹을 하는 게 습관화되어 버렸죠.


이런저런 고민이 있을 때도, 카지노 게임를 틀어서 머릿속에서 고민을 쫓아내기 바빴던 것 같아요. 그런 시간이 장기화되다 보니 조금 우울해지더군요. 마치 아래의 책에 나오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어요.


소피라는 내 환자는 (...) 자신이 깨어 있는 동안에는 인스타그램 하기, 카지노 게임 보기, 팟캐스트와 플레이리스트 듣기 등 일종의 기기에 의존한 상태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수업을 받으러 걸어가면서 아무것도 듣지 말고 생각지 수면 위로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해 보라고 권했다.
그러나 그녀는 못 믿겠다는 듯이 나를 쳐다봤다.
"제가 왜요?" 입이 떡 벌어진 채 그녀가 물었다.
"음," 난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그게 자신과 친해지는 방법이거든요. 자신의 경험을 통제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그대로 펼치는 거죠. 전자 기기만 붙잡고 지내는 게 소피의 우울감과 불안감을 키우고 있을 거예요. 매번 자신을 피하는 건 정말 지치는 일이죠."

애나 렘키, <도파민네이션, p. 72



하루만, 딱 하루만 끊어 보자

아예 끊거나 하루 시청 시간을 제한하는 건 내키지 않더군요. 그래서 딱 하루만 끊어보고, 그다음 일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어요. 좀 웃긴 소리지만, 하루만 끊어보고 그 하루만이라도 전보다 행복해지는지 관찰해보고 싶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식구들이 각자의 자리로 출근/등교/등원을 하고, 저만 혼자 집에 남았습니다. 밤새 밀린 이메일함을 열며, 집중력 강화를 핑계로 틀어놓던 Work with Me로 자연스럽게 손이 갔지만 틀지 않았습니다. 그날만큼은 아예 안 보겠다고 생각했으니, 틀어놓을까 말까 고민하는 시간이 없어서 좋았어요. 그냥 한 번에 하나씩, 주어진 일만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책상 정리가 하고 싶었지만 그것도 참아냈습니다)


잠시 일을 하고 집안을 청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쯤이면 팟캐스트나 카지노 게임를 들어야 하겠지만, 그냥 지루함을 참고 묵묵히 집안일을 했어요. 이제까지 생각하기 싫어 미뤄왔던 생각들이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내 감정을 오랜만에 날것으로 마주했어요. 행주로 식탁을 닦으면서 지워지지 않는 얼룩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하고, 이불을 정리하며 이불 빨래를 언제 할지 생각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카지노 게임에서 나오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느라 놓쳤던 것들이에요.


헬스장에 가는 시간은 위기였습니다. 원래 카지노 게임를 하루 동안 끊기로 할 때도, 운동할 때만큼은 예외를 두려고 했었어요. 지루한 트레드밀을 카지노 게임 없이 어떻게 견디겠냐고요. 그러나 운동을 핑계로 카지노 게임를 보기 시작하면 운동의 종료와 함께 칼같이 끊기가 더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소설책을 한 권 들고 실내자전거를 타기로 했어요. 다행히 소설은 예상보다 훨씬 자극적이었고(꿀잼), 자전거 운동을 하는 시간도 지루하지 않게 지나갔습니다.


다시 책상에 앉아 일을 하는데, 문득 창 밖의 나무가 눈에 들어왔어요.

카지노 게임이미지: Unsplash.com

예전 같으면 컴퓨터 화면과 카지노 게임 영상 때문에 쳐다보지도 않았을 초라한 겨울나무였죠. 2월, 겨울은 끝자락인데 아직도 작년의 이파리들이 몇 개 남아 매달려 있는 게 보였습니다. 올 겨울은 유달리 춥고 눈도 많이 왔는데, 이 긴긴 겨울을 인내하고도 아직도 떨어지지 않았구나. 하지만 그렇게 견뎌 내고도, 봄이 와서 새순이 돋으면 자신의 자리를 결국 내어줄 수밖에는 없겠구나. 버텨낸 것도 대단하고, 그럼에도 새 생명에게 내어주는 것도 기특하다. 기분이 묘했습니다.


걷잡을 수 없이 엉켜있던 머릿속과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게 느껴졌어요.



그 하루가 너무 좋아서, 내친김에 하루 더 끊었습니다. 이틀이 지난 뒤에는 다시 조금씩 돌아가고 있어요.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지루한 공백을 메우고 싶을 때 카지노 게임에 손이 갑니다.


결론적으로는,그 이틀 때문에 더 ’ 행복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삶의 윤곽이 좀 더 선명해졌습니다. 고민이 좀 더 내 것 같아지고, 안절부절못하는 시간이 적어졌습니다. 이틀로는 부족하지만,이런 이틀이 조금 더 쌓이면 분명 더 행복해질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러다 보면, 가끔 접하는 카지노 게임 속 영상이 훨씬 더 재미있고 유익하지 않을까요? 분명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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