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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Apr 15. 2025

나는 비밀을 만들기 싫다!_아끼던 카지노 게임 태우는 마음

알바 데 세스페데스 <금지된카지노 게임

마흔셋의 주인공 발레리아는 어느 날 문득 카지노 게임을 사서 감추기 시작한다. ‘카지노 게임’은 그녀가 유일하게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 진실한 언어를 허락받는 유일한 장소가 된다. 가족에게 들키지 않으려 보관 장소를 옮기고 또 옮기며, 그녀는 조용한 저항처럼 그 안에서 숨을 쉰다. 알바 데 세스페데스의 <금지된 카지노 게임은 그 나이 즈음의 나를 떠올리게 했다. 나 또한 어느 시절, 아주 비슷한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카지노 게임나 또한 어느 시절, 아주 비슷한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비밀을 만들기 싫다. 게다가 우리 집은 너무 비좁아서 비밀을 만들래야 만들 수조차 없다.

알바 데 세스페데스 <금지된 카지노 게임 중


카지노 게임을 산 날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늦가을이었는데 하늘은 푸르렀고, 봄날처럼 햇살이 따스했다. 그날 나는 혼자였는데 그토록 화창한 날에 혼자이면 안 될 것 같아 카지노 게임을 팔에 끼고 집에 돌아왔다. 귀도가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아마 카지노 게임을 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카지노 게임을 사지 않았다면 아예 귀도에게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는 나 자신에게도 신경 쓰지 않았으니까.

알바 데 세스페데스 <금지된카지노 게임 중



소설 속 발레리아의 카지노 게임이 지금의 발레리아들에겐 ‘휴대폰’일 것이다. 영화 <완벽한 타인이 보여주듯, 현대인의 가장 사적인 공간. 나 역시 며칠씩 한 글자도 쓰지 못하고, 카지노 게임을 감춰두기만 했던 때가 있었다. 누군가 내 휴대폰을 열어보자고 할까봐 이유 없는 불안을 느끼던 날들도.


카지노 게임휴대폰만 열면 모두의 비밀이 드러난다


미켈레(남편)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내 내면에 관심을 가진 유일한 사람이 내가 밀어내야 할 귀도뿐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었다.


문정희 시인의 ‘남편’이라는 시가 떠오른다.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 되지 하고 돌아누워 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카지노 게임
알바 데 세스페데스 <금지된카지노 게임

어쩌면 이 소설에서 가장 안타까운 장면은, 발레리아가 결국 그 카지노 게임을 태우고 아무 일 없던 시절로 되돌아가는 모습이다. 그러나 나 역시 발레리아처럼, 결국 나의 비밀을—나의 생기를—불태웠다. 그렇게 모든 흔적을 지우고 나니, 어느새 누구에게 휴대폰이나 노트북을 건네도 두근거릴 일 없는 투명한 삶이 되었다.



나를 다시 살게 했던 카지노 게임을, 끝내 자기 손으로 불태울 수밖에 없는 마음.

70여 년 전의 이탈리아나 지금 여기나, 그 본질은 여전히 크게 다르지 않다.



비밀은 삶을 어지럽히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살아 있게도 한다. 그럼에도 살아 있다고 느끼는, 그 단 하나의 공간의 문을 다시 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알바 데 세스페데스 <금지된카지노 게임




* 윤소희 작가와의 비밀 모임에 초대합니다.

모임 장소 (서울 강북 모처)는 신청이 완료되신 분들께만 보내 드려요.


신청:https://forms.gle/MUPGJNzPhiviRSEf8


꽃 뒤의 숨은 얼굴 보러 오세요 ^^

윤소희 작가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심리장편소설 <사이코드라마와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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