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날의 시선 35
"어머, 무료 카지노 게임이네!”
농협 로컬 매장에서 어릴 적 기억에 머물고 있던 사탕을 발견했다. 바로 ‘옥춘당’이다. 하도 반가워 두 통이나 샀다. ‘백 옥춘’과 ‘적 옥춘’이다. 잊고 있던 뜻밖의 인연을 만난 듯 두말할 것 없이 장바구니에 담았다. 옥춘당 얘기를 하느라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말이 부쩍 많아졌다. 일부러 찾으려고 들면 얼마든지 찾았으련만, 실제로 눈에 보이지 않았을뿐더러, 굳이 사려는 마음 또한 없었는데 눈앞에 떡 하니 있는 사탕을 보는 순간 혹시 누가 먼저 사 가기라도 할 세라 얼른 움켜쥐었다.
옥춘당은 내 가장 오랜 어린 시절이다. 내가 기억하는 인위적인 색깔의 처음에 옥춘당이 있다. 옥춘당을 보면 기분이 좋았다. 하양, 빨강, 노랑, 초록의 색깔로 어우러진 사탕을 제사상에 탑처럼 쌓아 놓은 길례 할머니 댁의 마루 흐릿한 불빛 아래 옥춘당이 있었다.
대체로 비슷한 음식의 차례상이나 제사상만 보았던 내게 어느 날 본 옥춘당은 그야말로 신비로운 빛깔의 그 무엇으로 다가왔다. 어째 저런 색깔이 다 있나 싶게 화사함을 넘어 차라리 이국적이었다. 내가 감히 넘볼 수 없는 어떤 생경하고 비밀스럽기까지 한 화려함으로 어린 나를 유혹하기에 충분한 색깔이었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자연이 주는 경이로움을 느꼈을 법도 한데 옥춘당은 더 먼 곳에서 오는 다른 무엇이었다. 그 별스럽게 촌스러운 색깔의 사탕이 아주 고급스럽게 다가와 소곤거렸다. 먹어보라고. 이 기막힌 단맛을 느껴보라고.
할머니 손을 잡고 밤마실을 나가는 곳은 으레 길례 할머니 댁이었다. 사람들이 자주 모이는 집이었다. 동네 사람들의 신년운세나 사주, 애경사에 있어 나름의 앞가림을 타 주고 간혹 굿도 하는 집이었던 것 같다. 십시일반 준비한 음식을 나눠 먹기도 하고, 제사의 주인공을 추억하느라 밤이 이슥하도록 사람들은 집에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여기저기 졸거나 아예 깊은 잠으로 빠진 손주들이 생기면 그제야 일어날 채비를 했는데 길례 할머니는 여타의 음식은 각자 손에 조금씩이라도 들려주면서 무료 카지노 게임은 아무에게도 주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그렇게나 서운했다. 마당을 나오는 아쉬운 얼굴은 무료 카지노 게임이 있는 마루를 못내 돌아 보고 또 돌아보았다. 어두운 길을 걸어 타박타박 돌아오는 길, 잠에 취했어도 무료 카지노 게임은 또렷이 밤길을 환하게 비추었다.
옥춘당이 뭐라고, 다음 날 아침에도 옥춘당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생각해 보니 아이들한테도 옥춘당을 주지 않은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다음 제사에 쓸 수 있을 만큼 옥춘당은 단단하기도 했지만, 비닐봉지에서 아예 꺼내지도 않았다. 화려한 모습으로 늘 같은 자리에 옥춘당은 있었다. 그래서 한 번도 흡족하게 입안에 넣어 본 기억이 없다. 눈요기만 실컷 하다가 사탕에 대한 갈증만 남기고 훌쩍 어른으로 자란 느낌으로 옥춘당은 기억 안에 꼭꼭 숨어 있었다. 언제든 옥춘당을 만나면 입안 가득 넣고 원 없이 오물거려보리라. 다짐도 했을 법한데 사실 그런 기억은 없다. 어쩌면 나는 사탕을 먹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그 화려하고 단순하며 선명한 색깔이 주는 명료함에 매료되었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무료 카지노 게임의 유치하기 짝이 없는 색은 무채색의 시골 풍경에 지겨워하던 내게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알 수 없는 세상에 대한 막연함을 유혹하는 손짓이었다. 마루 위에서 고고하게 나를 바라보던 무료 카지노 게임은 여전히 넘을 수 없는 벽이었고, 미래에 대한 까마득함이었다.
집에 돌아와 무료 카지노 게임 한 개 꺼내 냉큼 입안에 넣었다. 달아도 너무 단데 맛있다. 설탕 한 숟갈 먹는 기분이다. 성분을 보니 ‘설탕(원당100%), 물엿(옥수수 전분100%), 적색40호, 황색4호, 혼합초록(청색1호20%, 황색4호80%), 박하유’로 만들어졌다.
입안에서 아무리 열심히 굴려도 쉽게 닳지 않았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다 먹었다. 단맛이 줄줄 흐른다. 누구 함께 먹자고 건네지도 못할 단맛의 최고 수위를 가진 옥춘당, 어린 시절 그토록 먹어보고 싶고 갖고 싶었던 사탕을 이제야 만나 입안에서 오물거리는 맛이란 오롯이 혼자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함이고 나만의 작은 의식이었다.
총 20개의 옥춘당 중 1개를 먹고 19개가 남았다. 누구 줄 사람이 없다. 어른은 물론이고 아이들도 이런 사탕은 먹지 않는다. 그냥 두고 본다. 어느 날 옥춘당을 버릴 때가 오겠지. 그래도 옥춘당이 내 앞에 있는 내내 할머니랑 손잡고 다니던 동네 마실도 떠올렸고, 어두운 마당을 바라보며 어른들의 끝없는 수다에 지쳐 스르르 잠 속으로 빠져들던 어린 나와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작은 손짓을 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나도 만났다.
색깔에 대한 갈증이 어느 정도 해갈 되었다는 생각을 요즘 한다. 자연에 더 가깝게 있으려고 애쓰는 나도 있고, 물감을 쥐고 색 놀이하고 있는 요즘의 내 삶도 썩 괜찮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