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고 오래된 말
낡고 시대에 뒤처져 보여도 꼭 필요한 언어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일본의 노벨 문학상 수상 카지노 게임 추천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은 이렇게 시작한다. 일본어가 지닌 독특한 운율감과 생동감 넘치는 묘사로 유명한 구절이다. 눈 덮인 니가타 지방의 정경을 손에 잡힐 듯 세세하게 드러내어, 뚜렷한 줄거리 없이도 찬사를 받았다. 그렇다. 줄거리 없이도 치밀한 묘사와 감각적 문체로 노벨상을 받은 것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도 한강 카지노 게임 추천가 노벨상을 받았다. 그의 장편 소설 <흰은 책 표지에 '소설'이라 써 놓지 않았다면 시집 혹은 에세이집이라고 불려도 무방할 정도로 짧고 특별한 줄거리가 없다.
"날카로운 시간의 모서리 - 시시각각 갱신되는 투명한 벼랑의 가장자리에서 우리는 앞카지노 게임 추천 나아간다. 살아온 만큼의 시간 끝에 아슬아슬하게 한 발을 디디고, 의지가 개입할 겨를 없이, 서슴없이 남은 한 발을 허공카지노 게임 추천 내딛는다. 특별히 우리가 용감해서가 아니라 그것밖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이 문장에서 보듯 언어가 상당히 함축적이고 운율감이 느껴진다. 하나의 글을 새기기 위해 마치 수백 번 숨을 들이마신 뒤 완전한 자기 것으로 만든 뒤에야 내뱉은 숨 같다. 마치 여러 겹으로 이루어진 크루아상 빵처럼 여리지만 단단하다.
양질의 좋은 책을 읽다 보면 일상에서 잊고 지내는 수많은 어휘들을 만난다. '눈송이가 성글게 흩날린다'라든지, '진눈깨비가 뺨을 물큰하게 적신다'든지, '하얗게 웃는 다'든지. 이런 언어들을 만날 때면 가슴을 부드럽게 적시면서도 서랍 깊은 곳에 접어 넣어 두고 싶다. 잊지 않게 소중하게 꺼내보고, 따라 써보고 누군가에게 날려 보내고 싶다.
한강 카지노 게임 추천의 책을 읽으며 '한자어'가 많은 것에 새삼 놀랐다. 언론이나 사진으로 보기에 젊어 보였던 그녀의 나이를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정말 오랜 시간 글을 쓰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설을 쓰기 위해 대학 교수직도 내려놓다니. 그 반대의 경우는 봤어도 이런 경우는 흔치 않을 것이기에 그 선택이 놀라웠다.
나도 학교에서 한자를 배우지 않은 세대로서, 우리말에 들어 있는 한자를 깊이 탐독하지 못한다. 그의 시와 소설에 쓰인 언어 속에 마음껏 유영할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다고 우리말을 또 얼마나 잘 사용하고 있는가? 묻는 다면 부끄러움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몇 안 되는 한정된 어휘만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나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영상과 숏폼에 중독된 사람일수록 도파민 중독률이 높고 문해력과 집중력이 떨어진다고 한다. 유행하는 릴스나 인기 많은 콘텐츠를 확인해도 유치원생 정도만 되어도 알아듣고 따라 부를 정도로 쉬운 언어와 멜로디를 사용한다. 우리들의 언어가 점차 더 단축되고 한정되어가고 있다고 느끼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해결 방법은 간단하다. 좋은 책을 많이 읽는 것이다. 내 생각에 '좋은 책'은 많이 팔린 책도, 유명한 카지노 게임 추천의 책도, 여기저기서 광고하는 신간도 아니다. 그것은 먼지 쌓이고 빛바랜 책일 수도 있고, 아직 나오지 않은 미래의 책일 수도 있다. 출판 시점보다는 당연히 내용이 중요하다. 읽는 이의 사고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넓혀주는 책, 마음을 화사하게 열어젖혀 주는 책, 다양한 어휘를 폭넓게 사용한 책, 독자의 가슴에 청진기를 댄 듯 다독여주는 책이라 생각한다.
핸드폰이나 유튜브 대신 책을 집어 들고 진득하게 앉아서 글밥을 읽어 나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쩔 땐 잠이 솔솔 쏟아지기도 하고, 품을 들여 책을 읽기보단 누군가 만들어 놓은 30초 남짓의 짧은 영상을 유쾌하게 쳐다보며 시간을 때우고 싶다. 고독 속에 쏟아지는 사유에 머리를 싸매고 지경을 넓혀가기보단 카페에 앉아 감성 사진을 남기며 신나게 수다를 떨고 싶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은 갇힌 내 사고의 틀을 깨고 자아를 넓혀나가는, 끝 모를 고된 작업이다.
말의 맛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말의 맛을 잘 살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양서를 다독하고, 시간을 들여 사고를 채우고, 그것을 글로 표현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무수히 많은 출간물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진짜 '카지노 게임 추천'를 만나고, 공명하는 '작품'으로 심장을 물들이고, 씁쓸한 건강식을 씹어 삼키듯 글자를 새겨 나가야 한다. 심지어 원하지 않는 공간과 시간 속에 처했더라도 말이다.
때로 감정이 허락하지 않더라도, 머릿속에서 텅텅 소리가 울리는 것 같더라도 끊임없이 나를 담금질하며 채워 나가야겠다. 내가 보기엔 유행가는 몰라도 좋아하는 카지노 게임 추천의 책 제목은 아는 사람, 유행어는 못써도 고유어는 잘 쓰는 사람이 매력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