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결백을 원하지 않는다면
바람이 세계를 천천히 쓸어 넘겼다
시간이 단정하게 걸어갔다
소리를 내며
들풀과 시계에 의존해
한참 작은 소리를 내며
모든 얼굴이 환해진다
폐부가 맑아진다
소리 없이 가능한 것들이 몰려온다
카스테라 속에 누운 것처럼
포근하고 따뜻해진다
난 이제 책 모서리를 접지 않아
개가 웃고 나도 웃고 내 앞 사람이 웃는다
내 것은 하나도 없으니까
쉽게 흘리고 쉽게 주웠다
빈손으로 흘러가는 강물은
밤에도 반짝이고 있었다
결백 이전과 이후
그리고 종말 내내
떨어진 귀들이 길바닥에 낙엽만큼 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