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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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연지 Feb 27. 2025

충돌의 빛

라스 폰 트리에, <멜랑콜리아를 보고

명화 같은 장면이 불연속적으로 배열되며 영화가 시작된다. 선명한 색채와 대비는 르네상스의 그림을 감상하는 것 같다. 정지된 듯 느리게 움직이는 장면들.길어진 나뭇가지가 드레스 입은 신부의 팔다리를 휘감고 있다. 발을 묶는 대지로부터 신부가 힘겹게 걸음을 뗀다. 장면 전환. 아이를 품에 안은 여자가 달려오고 있다. 장면 전환. 하늘에 떠 있는 세 개의 행성과 그 아래 앞서 등장한 세 사람이 서 있다. 장면 전환. 아이가 숲에서 칼로 나무껍질을 벗긴다. 장면 전환. 신부가 양손으로 가지런히 부케를 쥐고 물 위에 누워 있다.

짤막한 초현실의 장면들은 영화 전반을 암시한다. 이 적극적인 도망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마주하면 좋을까.



숲 속으로


'카지노 게임 추천 곧 남편이 될 '마이클'과 함께 리무진을 타고 숲길을 지난다. 긴 차는 좁은 숲길을 빠져나가기 어렵다. 기사의 운전을 못 마땅하게 여기는 '마이클'의 표정이 어두워질 때마다 '카지노 게임 추천 그에게 웃음을 보이거나 키스를 한다. '마이클'이 나서지만 보다 못한 '저스틴'이 운전대를 잡는다. 덕분에 그들은 숲길을 지나 결혼식장에 도착한다.

'저스틴'과 '마이클'을 반기는 건 예식이 다섯 시간 지연됐다고 말하는 신부의 언니 '클레어'다. '카지노 게임 추천 예식을 기다리느라 지쳤을 하객들을 뒤로하고 자신이 아끼던 말 '아브라함'을 보고 오겠다고 말한다. 드레스차림의 '카지노 게임 추천말을 쓰다듬으며 '마이클'에게 '아브라함'을 소개한다. '아브라함'을 향한 애정이 깃들어 있으나 '클레어'의 남편 '존'은 이를 한심하게 여긴다.

하늘엔 벌써 별이 떠오기 시작하고 '카지노 게임 추천 못 보던 별을 발견한다. 천문학자 '존' 역시 저 별은 처음 본다며 어리둥절해한다. '카지노 게임 추천 이들 중 최초로 낯선 행성을 발견한 자이다.


숲을 지나 도착한 이곳은 외부와 단절된 듯 보이지만 건물 안은 여전히 사회를 이룬다. 결혼을 축하하러 온 하객들은 이 두 사람과 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마이클'과 '저스틴'의 부모, 직장 사람들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저스틴'의 직장 상사는 그의 결혼을 축하하는 동시에 승진을 발표한다. 더불어 오늘 안에 그에게 새 광고 문구를 따낼 것을 선언한다. '저스틴'의 사회적 지위는 한 단계 승급되었고 결혼으로부터 받는 축복 이외의 찬사가 섞여든다. '카지노 게임 추천 식순 내내 광고 문구를 따야만 해고되지 않는 신입사원에게 시달린다.

이혼한 '저스틴'의 부모는 축사를 베푸는 동안에도 서로를 공격하며 타인이나 식장의 분위기는 고려하지 않는다. 엄마는 결혼 제도에 비관적인 독신주의자이고 아빠는 같은 이름의 여자 둘 사이에 앉아 내내 그들과 짓궂은 장난을 친다.

분위기는 자주 험악해졌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은 듯 보인다. 예정대로 식이 진행되고 누구도 그만두지 않는다. 이를 '클레어'와 그의 남편 '존'이 이끌어간다. 누구를 위한 결혼식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제각각인 가족들을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제자리란 무엇인가. '클레어'는 자신이 준비한 예식을 동생 '저스틴'이 잘 마무리하기를 바란다. '저스틴'이 원하는 자리가 아님에도 '클레어'는 동생을 찾아다니고 끌어 앉힌다. 두 사람은 각기 다른 것을 견디고 있다. '카지노 게임 추천 '클레어'의 마음을, '클레어'는 '저스틴'의 우울을 견딘다. 헤아림이 아닌 견딤이다.



오필리아 선고


'카지노 게임 추천 예식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골프 카트를 몰고 잔디밭으로 가 드레스를 걷어 올려 쭈그려 앉아 소변을 본다. '클레어'의 아들 '리오'의 방에 들어가 이야기를 나누다 잠들기도 하고 자신의 방에 들어가 드레스를 벗고 물을 받은 욕조 속에 눕는다.

예식은 끝날 기미가 안 보이고 '저스틴'의 움직임은 점차 둔해진다. '무언가가 나를 빨아들이고 있'다며 도움을 청하지만 엄마 아빠는 '저스틴'과 대화하지 않는다. 대화란 서로를 들여다보는 과정이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의 세계에 아무도 초대하지 않는다. 집 밖에 세상이 있다는 것을 잊어버린 사람들처럼 결코 문을 열지 않는다. '클레어'는 '마이클'에게 아프다는 건 절대 말하면 안 된다고 '저스틴'을 다그친다. '저스틴'이 욕조에 들어가는 장면은 첫 장면의 오필리아 '저스틴'과 일치한다. 그는 눈을 뜨고 죽은 자다.


'마이클'은 '저스틴'에게 과수원 사진을 건네며 미래를 약속하지만 방금 함께 사랑을 이야기한 '카지노 게임 추천 방을 나가며 무릎 위에 놓여 있던 과수원 사진을 떨어뜨린다. 마치 방금 앉아 있던 사람과 문 밖으로 나간 사람이 다른 사람인 것처럼 보인다. '마이클'은 이에 크게 상심한 듯 이 사실을 '클레어'에게 전한다. '클레어'는 이를 듣고 '저스틴'을 나무란다.

'카지노 게임 추천 미래를 간직하거나 들여다보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식에 늦었지만 말을 보러 가는 사람이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을 마주하고 싶은 사람이다. 앞으로의 일을 감당하는 것, 약속이나 관례는 '저스틴'의 대립항이다.


식이 끝날 무렵 '마이클'은 '저스틴'과의 섹스를 원하지만 '카지노 게임 추천 쉬고 싶다며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자신을 계속 따라오는 신입사원을 눕혀 골프장에서 섹스한다. 소통 불가능, 목소리와 입의 무용함이 그를 행동으로 이끈다. 온몸으로 분노를 발산한다. 언어가 사라지고 신음과 행위만 존재한다. 자신이 노출된 상황과 같은 상황을 스스로 연출한다.

'카지노 게임 추천 사회적으로 그보다 지위가 낮은 부하 직원을 강간한 것이지만 자신을 해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폭력을 전이하는 것은 자신이 겪은 폭력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섹스를 거절당했다고 느낀'마이클'은 '저스틴'에게 파혼을 청해 온다. 부하 직원이 다가와 '아까 좋'지 않았냐고 되물으며 '저스틴'에게 함께하기를 요청한다. '카지노 게임 추천 거절한다. 분노조차 원하는 대로 표현되지 않는 상황이다. 그의 분노는 지위나 성별에 의해 왜곡된다.

'카지노 게임 추천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사람은 당신 같은 사람들이라고 사장에게 외치며 스스로 직장을 그만두지만 사람들은 그를 직장도 결혼도 잃은 사람으로 대한다.


'카지노 게임 추천 도망친다. 끈덕지게 달라붙는 관계망 속에서, 마주 봄 없는 공허한 사랑과 기대로부터. 결혼식장에서 이 신부는 자신이 죽은 것과 다름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뿐이다.



병 속의 콩


'멜랑콜리아'라는 푸른 행성을 중심으로 2장이 전개된다. 이 행성은 1장에서 '저스틴'이 최초로 발견한 별이며 지구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

병이 깊어진 '카지노 게임 추천 언니 '클레어'의 집에서 함께 지낸다. 이곳은 결혼식 장소와 동일한 공간이며 여전히 세상과 유리된 숲 속이다. 결혼식장에서 집으로 전환된 것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불빛과 온기가 가득했던 곳에서 어둡고 쌀쌀한 공간이 된다.


'리오'가 '저스틴'을 '강철 이모'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아 두 사람이 가까운 사이임을 알 수 있다. 사랑하는 조카와 이야기 나눌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해진 '카지노 게임 추천 먹는 것도 씻는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존'은 아이 교육에도 좋지 않다며 못마땅해 하지만 '클레어'는 정성으로 동생을 보살핀다.

'멜랑콜리아'가 지구에 가까워지면서 둘의 관계는 역전된다. '클레어'는 행성이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지나갈 것이라며 자신을 안심시키는 천문학자 남편의 말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한다. 초자연 앞에서 불안을 느끼는 것이 당연해 보이나 '저스틴'의 건강은 점차 회복되고 불안의 그림자가 지워진다. '클레어'는 냇가에 나가 나체로 푸른빛 아래 누워 있는 '저스틴'을 발견한다. '존'과 '리오'는 매일 행성을 관측하며 신비함을 느끼고, 알 수 없는 미래가 가까워짐에도 태연한 '저스틴'의 모습에 '클레어'는 이방인처럼 보인다.

'존'을 통해 자연을 넘어선 인간의 권위를 느낄 수 있지만 '멜랑콜리아'는 지구와 충돌한다. 미래를 정확히 계산하는 인간은 없다.


그러나 푸른 별을 처음 발견한 '카지노 게임 추천 선지자적 면모를 갖는다. '카지노 게임 추천 광고회사에서 신선한 발상으로 회사의 신임을 받았다. 카피라이터는 세상을 잘 내다볼 수 있는 자에게 유리하다. '저스틴'의 예언적 기질은 '클레어'와의 대화에서 증명된다. '카지노 게임 추천 행성이 지구에 충돌할 것이라며 그에 대한 증거로 678개의 콩을 말한다. 이에 '클레어'의 불안이 증폭한다. 자신의 부정적 예상에 확신이 더해지자 더 불안해하는 '클레어'와 무엇이 두렵냐는 '저스틴'의 심리가 교차한다.

1장, 식장 입구에 병 속의 콩 개수를 맞추는 작은 행사가 있었다. 식장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병 속에 넣은 콩이 총 몇 개인지 맞추는 놀이다. 콩의 개수를 정확히 맞추는 사람이 있다면 운이 좋은 사람일 것이다. 이 세계는 우연의 지배에 놓여 있으며 미래를 정확히 계산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마이클'은 숫자를 적어 내지만 '저스틴'은 내지 않는다. 식이 끝난 후 행사 진행자는 콩 개수를 모두 세 보았다며 그 개수가 678개라고 '클레어'에게 전한다.

'카지노 게임 추천 유리병에 담길 콩의 개수를 알고 있었다. 아직 자신과 '마이클'이 콩을 넣지 않은 유리병이었다. 그러니까 뚜껑이 닫히지도 않은 유리병 속의 미래를 알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678이라는 나란한 숫자는 우연의 일치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게 만든다.



불가능의 가능성


예견하는 자로서 '카지노 게임 추천 현재에 집중한다. 식장에 늦었지만 기다리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말에게 인사를 하러 간다거나 '리오'의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잠든다.

'저스틴'에게 결혼식은 의미 없는 관례다. '클레어'로 인해 늪과 같은 그 장소에 있었다. 늪에서는 서 있고자 하면 아래로 추락한다. 꼿꼿하게 버틸수록 무너진다. 그의 우울은 이 고립으로 가속화된다.

그러므로 회복하는 2장의 '카지노 게임 추천 '미래 없음'으로 설명된다. 미래의 부재는 현재에 무게를 싣는다. 계속해서 현재만이 있고 아무것도 소유하고 꿈꿀 수 없으며 나 자신만이 존재한다. 반면 '클레어'는 동생의 결혼에 힘 쏟는 모습에서 알 수 있듯 관례나 미래를 생각하는 인물이기에 상실의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는 상실로부터 도망친다.

'멜랑콜리아'와의 충돌이 가까워지자 마구간의 말들은 더 이상 소리치지 않는다. '저스틴'과 '아브라함'은 절대적인 운명 아래 잠잠히 자신을 받아들이고 있다.


'우울증'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갖는 행성의 이름 '멜랑콜리아 melancholia'는 '저스틴'의 내면과 상응한다. 또한 '클레어'가 그러하듯 지구상의 존재는 다가오는행성 '멜랑콜리아'로부터 우울감과 두려움, 불안을 느낄 것이다. 이 행성의 존재로 인해 '저스틴'의 감정은 보편이 된다.



마법동굴


자신의 한계에 마주한 '존'은 '클레어'가 사두었던 수면제를 삼키고 자살한다. 명성이나 지위가 그의 전부였거나 '클레어'보다 잃어버릴 게 더 많았거나 둘 중 하나다. 그는 상실의 공포를 견디지 못했고 '클레어'는 그 시체를 마구간에 숨긴다. '리오'에게 아빠의 죽음을 알리지 않는다. '리오'는 상실이나 공포에 대해 알지 못하는 인물이다.

코앞으로 다가온 거대한 행성에 '클레어'는 '리오'를 안고 마을로 가지만 '카지노 게임 추천 그곳도 마찬가지라며 골프 카트에 오르지 않는다. '클레어'는 멀리 가지 못하고 '리오'를 안고 집으로 되돌아온다. '마찬가지'라는 '저스틴'의 말은 모든 이에게 주어진 상황이 같다는 말이다. 내면의 두려움을 해결할 자는 자신뿐이다. '카지노 게임 추천 불통과 고립 속에서 아파했으나 회복력을 얻은 인간으로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저스틴'은 '리오'에게 마법동굴을 만들자고 한다. 이들은 숲에서 나뭇가지를 주워 와 껍질을 벗겨 빙 둘러 세운다. 벗겨진 나무는 더 앙상하고 초라한 뼈대처럼 보인다. '저스틴'과 '클레어', '리오' 세 사람이 그 안으로 들어가 손을 잡고 둘러앉는다. 마주 봄과 연결의 동굴이 된다. 바람이 점차 거세지고 행성이 가까워진다. 같은 두려움을 손에 쥔 이들을 향해 거대한 빛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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