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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메디오스 Sep 30. 2021

온라인 카지노 게임

내 몸에 대한 도발적이고 발칙한 이야기들

이빨로 맹세해, 나를 떠나지 않겠다고

팽이버섯처럼 생긴 어금니로 오래 씹어주면 좋겠어

피 냄새, 달 냄새, 정액 냄새, 무덤 냄새

가장 어리석은 암컷으로 널 기억할게

사랑한다면 이빨을 전부 뽑아줄 수도 있어

- 최금진, <고독한 뼈, 즐거운 이빨 중에서 -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깨졌다.


술래가 눈을 감고 미끄럼틀에 올라타 다른 아이들을 쫓는 ‘탈출놀이’를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생긴 일이다. 신축 아파트 놀이터의 미끄럼틀은 높고, 구조는 복잡했으며, 나는 스스로의 신체적 직관을 지나치게 맹신했다. 그 결과가 앞니의 박살이라니, 그것도 고작 10살 나이에.


이미 벌어진 일은 뒤로 하고, 나는 어머니의 불호령이 무서워 몸을 떨었다. 어머니께서 이 사태를 알게 되신다면 몇 년 치 꾸중을 다 들은 후에 동네 치과에 끌려갈 것이 분명했다. 당시 치과란 그 어느 공포영화 속 장소보다도 두려운 곳이었으며, 치과의사란 프랑켄슈타인이나 빨간 마스크보다도 무시무시한 존재였다. 위이잉-, 사각사각-, 끄으으-끄으으-, 그 어떤 끔찍한 의성어나 의태어들로도 표현할 수 없는 치과 특유의 소음들 또한 나를 겁먹게 했다. 그러나 초등학생의 참을성이란 고만고만한 것이었고, 나는 결국 단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저녁식사를 하다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어머니께 들키고 말았다. 그 날 얻은 배움이란 어머니의 목소리가 그 어떤 소프라노의 목소리보다도 높고 날카롭게 올라갈 수 있다는 것, 어머니의 혼쭐에 내가 아무리 울어도 옆집에서는 신고해주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치과치료는 매우, 매우 무섭고 고달프며, 비싸다는 것이었다.


반짝반짝한 세라믹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타고난 내 것처럼 달고 산 지도 20여 년째, 사고 당시의 고통도 치과 방문의 고통도 가물가물하건만 간혹 양치를 하다 거울을 볼 때면 까맣게 변색된 잇몸 색깔이 보여 움츠러든다. 십수 년 전에 생명력을 다해버렸을 본래 이의 흔적은 흉터처럼 고스란히 남았다. 슬슬 다시 치료를 받아야 할 터인데 육아에 직장까지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상황에 타임머신이라도 빌려야 할는지 고민이 많다. 건강이 최고라지만, 건강을 지키려면 시간이 필요하며, 시간보다 소중한 건 돈이고, 돈을 가져다주는 건 직장이라는 이 불합리한 굴레를 나는 앞니를 볼 때마다 뼈저리게 느끼는 것이다.


20대 중후반 당시 지역 방송국에서 아나운서로 활동할 때에도 내 이는 콤플렉스의 중심에 있었다. 아나운서의 얼굴을 드라마나 영화마냥 클로즈업할 일은 없기에 앞니는 오히려 우려의 대상이 아니었으나, 문제는 송곳니였다. 다른 이들에 비해 크기까지 큰 덧니였기에 평소에도 튀는데다, 웃는 표정을 하면 입술 부근의 입 속 살이 덧니에 걸려 미묘하게 우스꽝스러운 표정이 연출되었던 것이다. 이미지 컨설팅 학원에서도 덧니만 교정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일거리들이 들어올 거라며 유명한 치과와 성형외과들을 소개해줬지만 뭉그적거리다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내가 결국 지역과 인터넷만 전전하다가 방송인 생활을 끝내고 만 건 툭 튀어나온 송곳니 때문이 아니었을까, 지금도 생각해보고는 한다.


최근 우리 집에 놀러온 친구가 세 살배기 딸의 치열을 유심히 보더니, 교정을 알아봐야겠다고 한다. 송곳니 덧니가 심하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덧니가 애교스럽다며 선호하는 경향도 있었다는데, 21세기에는 오히려 결점이라니. 덧니가 있으면 음식물도 잘 끼이고, '정상' 온라인 카지노 게임보다 세균 수치도 높아 구강질환을 유발한다는 친구의 열변에 한숨이 나온다. 십년 넘게 치과 간호사로 재직 중인 이의 조언이라 그냥 흘려보낼 수도 없고, 하필 유전이 되어도 이런 게 되었나싶어 착잡하던 차, 눈과 코를 힘껏 찡그리며 입을 크게 벌린 채 씩 웃어대는 딸의 얼굴이 꽃처럼 곱기만 해 웃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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