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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준희 May 04. 2025

카지노 게임 죽고 1년이 지났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1년

내 아기가 떠난 지 1년이다. 이 1년을 기다려왔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하길 첫 1년은 그저 '생존'의 시기라고 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저 계속해서 숨을 쉬는데 모든 에너지가 들어가는 시간. 그 이후에는 그 상실감이 익숙해져서 자신의 자연스러운 일부가 되고 다시 삶을 직면할 수 있어진다고 했다. 1년이 지나고 나면 뭔가 좋아졌으면 좋겠다는 희망이 있었다.


씩씩하다, 강하다는 말

1년 동안 단 한순간도 카지노 게임를 잊은 적이 없다.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내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꿈에도 모를 거다. 일상을 살아가고, 웃고, 떠들면서 내가 속으로는 얼마나 문드러져 있고 항상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지 꿈에도 모를 거다. 아마 짧게 살다 간 카지노 게임를 잊고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겠지. 나는 "너는 참 강하다, 씩씩하다"라는 말이 정말 싫다. 전혀 강하지 않다. 나도 살기 싫다. 이렇게 마지못해 애쓰는걸 "강하다" 라를 말로 칭찬받고 싶지 않다. 전혀 기분 좋지 않다.


지난 1년, 발전지향적으로 살아왔던 내게 객관적으로 보면 가장 많은 발전을 한 1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발전은 긍정적인 에너지로 인한 발전이 아닌, 바닥에서 기어올라가려는 처절한 몸부림의 연속이었다. 할 수 있는 모든 건 다 했다.


내가 살려고 한 것들

카지노 게임가 죽고 나서 바로 사랑하는 이를 잃고 상실 속에 살아가는 법에 대한 정신과 책을 읽었다.전혀 가슴으로 다가오지 않았다.의무적으로 활자를 읽어 내려갔던 중 이런 대목이 있었다."지금은 와닿지 않더라도, 지금 이 상실이 큰 충격인 상태가 아니라, 이 상실이 온전히 나의 자연스러운 일부가 되어 있을 미래의 나 자신은 어떤 모습이었으면 좋을지 상상해 보고, 그 상상을 목표로 나아가라."


이 상실이 온전히 나의 일부가 된 후, 나는 어떤 모습이고 싶나? 온화한 모습. 카지노 게임가 내게 사랑을 줬던 것처럼, 세상에 사랑을 주는 모습. 다른 상실을 겪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무언갈 하고 있으면 좋겠다. 그들의 목소리를 내고,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내는 일을 하고 있으면 좋겠다. 일상의 즐거움을 온전히 느끼고 삶을 기적으로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상태였으면 좋겠다. 카지노 게임들에게 온전한 사랑을 주고받는 상태였으면 좋겠다. 내 카지노 게임가 있었으므로 인해 더 좋은 사람, 더 세상에 이로운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목표를 세운게 조금은, 아니 확실히 도움이 된 것 같긴 하다. 괴롭고 죽고싶을 때 이 모든걸 초월한 나의 모습을 떠올리고, 그 미래의 나에게 위로받았다.


현실적으로 도움 되는 모든 것들을 했다.

운동밤에 잠이 오지 않고 매일 악몽을 꿨다. 무언갈 간절하게 원해서 미친듯이 노력하는데그걸 빼앗기는 꿈을 매일 꿨다. (꿈이 내 정신상태를 반영한다는 걸 받아들이고 나서는 그 꿈을 꾸지 않았다.)숙면하기 위해 매일 운동을 했다. 괴로울수록 더 아무 생각이 나지 않고 싶어서 극한으로 끌어올려 운동을 했더니이미 우울증으로 인해 생긴 관절염, 어지럼증, 신경통 등이 더 악화되고 오히려 몸이 망가졌다. 코르티솔로 인해 몸의 대사가 망가져서 살이 빠지지 않는 몸이 되었다. 그러던 중 운동에 일가견이 있는 친구의 도움으로 운동 방법을 바꿨다. 주 3회 30~50분씩 무거운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단백질 섭취를 했다. 관절염과 어지럼증, 신경통이 전부 사라졌다. 또 아주 도움 된 운동은 테니스이다. 유일하게 테니스를 칠 때는 정말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정신과 상담곧바로 정신 상담을 시작했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상담사를 몇 번 바꾸고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서 상담을 중단했다. 상담사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런 상태인데 상담을 해야 하는지' 조언을 구했다. 친구는 이렇게 조언했다. "아직은 너무 아픈 상태라 상담사의 말이 들어오지도 않고 상담사가 꼴 보기 싫은 상태라, 조금 시간을 두고 그 아픔이 지금처럼 너무나 날카롭지 않을 때 다시 상담으로 돌아와도 늦지 않다." 그래서 중단했었는데, 6개월 전, 달라진 나 때문에 힘들어하던 남편이 부부상담을 권유했고 5~6명의 상담사를 면접 보고 한 명을 골라서 6개월째 하고 있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상담으로 인해 남편과 서로의 생각과 상태를 공유하고 갈라지고만 있었던 부부사이가 돈독해졌다.


일 중독자아가 마비된 내가 할 수 있는 눈앞의 일이 내 직장이었다. 일 초도 쉬지 않고 눈앞의 문제들을 해치웠다. 해결 할 문제가 없는 가만히 있는 상태의 나 자신을 마주하기 싫었다. 미팅에서 할 말이 있으면 더 이상 참지 않았다. 살고 싶지도 않은 사람이 뭐 두려울 게 있겠는가. 회사에서 빠르게 인정받고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그런데 일에 파묻히는 게 갈수록 싫어졌다. 일 중독은 그저 회피이고,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서지금은 일을 조금씩 놓고 있는 중이다.


일기가장 힘들 때 그 마음을 글자로 적는 행위는 반드시 도움이 된다. '이렇게 느끼는게 맞나?' 하는 데서 확실한 감정으로 자리잡게 된다. 그 감정은 비로소 타당해 지고 내 것이 된다. 예전 같으면 브런치에 적었겠지만, 카지노 게임를 잃기 전의 나의 기록이 많이 있는 브런치를 다시 보고 싶지 않은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씩 적을 수 있을 것 같다.


여행여행을 많이 다녔다. 남편이 끌고 다녀서 갔고 별로 도움 되지는 않았다. 아름다운 풍경이나 그런 걸 보면서 나는 아름다운 세상에 살면서도 지옥에 있구나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상실 모임미국엔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사람들의 모임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모임들이 가장 도움 된다고 한다. 처음에 한 번인가 두 번인가 나갔는데 조금 도움 되긴 했는데, 몇 년이 지나고도 너무나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보고 희망적이지 않아서 다시 나가지 않았다. 이제는 도움이 될 것 같다. 다시 나갈 것이다.


시간을 두고 슬퍼하기30년 전 누군가를 잃고 그 슬픔을묻어두고, 감정을 직면하지 않은 상태로 30년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슬픔의 무게와 고통이 30년이 지나도 그대로라고 한다. 마음껏 슬퍼하고 마음껏 괴로워해야 비로소 그 감정이 내 안에 녹아들어 새로운 내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매일 내 딸을 그리워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바탕 울고 나면 조금 후련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새로운 취미테니스와 스탠드업 코미디를 시작했다. 특히 스탠드업 코미디는 이제 업으로 삼고 싶을 만큼 내 삶에 어떤 에너지를 주었다. 고통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희화하는 과정은 치유의 시간이기도 했다. 언젠간 내 딸을 잃은 내 경험을 스탠드업으로 풀어내고 싶다.


종교새로운 종교를 가지려고 공부했지만 결국엔 마음의 울림을 얻지 못하고 포기했다.


재단죽은 카지노 게임의 이름으로 재단을 만들어서 카지노 게임가 앓던 유전병 연구를 선두하고 있는 펜실베니아 대학에 기부를 시작했다. 정말 대단한 연구들이 진행중이어서 앞으로 우리 딸 같은 카지노 게임들을 살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시험관카지노 게임를 하나 더 낳기 위해서 시험관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인생은 고통의 연속

불교에서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고 그걸 온전히 받아들이면 평화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나는 불교인이었던 적은 없다.) 죽음은 완전한 평화이며 우리의 삶이 마치 파도에서 튀어나온 물방울이었다면 그 물방울이 바다로 다시 돌아가는 게 죽음이라고 한다. 드라마 White Lotus에서 그 말을 들었을 때, 빨리 바다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자살은 바다로 돌아가는 방법이 아니다. 자살은 고통의 회피여서 더 큰 고통이 되어 다음 생에 해결해야 하는 업보로 남는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현생의 문제를 현생에서 마주하고 해결해야 한다.


다른 책에서는우리는 천 번, 만 번 태어났었고, 남자도, 여자도 되어보고 성소수자도 되어보고, 어릴 때 죽어도 보고, 억울해도 보고, 사람을 죽여도 보았기 때문에 현생의 모든 문제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내가 생에서 카지노 게임를 낳는다고 해도, 나는 천, 만 명의 카지노 게임들을 낳았었고 그들을 사랑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상관없다고한다. 불교 사상에서도 '나'라는것은 존재하지 않고 '나'는 세계이며 세계가 나이기 때문에 나에 대한 디테일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한다. 카지노 게임는 짧게 내 세상이 되었다 사라진 사람이 아니라,내가 전생들에서 천 번 낳았던 자식이었고, 나의 친구였으며, 나의 부모였고, 나의 연인으로 수천수만 년사랑했던 사람인 거다.


지금까지는 너무 아파하느라 이렇게 아픈데도 계속 숨 쉬며 살아가는데 몸의 모든 힘을 썼다. 이제는 카지노 게임를 잃은 슬픔이 내 모든 세포에 녹아든 듯하다. 나는 이제 카지노 게임와 하나가 되어서 전과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사상을 가진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이제는 내 고통을 마주할 준비가 된 것 같다. 앞으로는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는데 힘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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