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리뷰
언젠가는 한 번은 해소해야 하는 것. 그걸 해결하지 않는다고 내 삶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끝끝내 마음에 남아있을 감정과 기억을 인생의 어떤 국면에서는 꼭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금 끄집어 내 마주해야 하는 것. 트라우마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도저히 잊혀지지거나 회피할 수는 없는 과거의 어떤 사건. 누구나 그런 일이 하나쯤을 있을 것이다. 나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 수리 보고서는 누구나 갖고 있는, 언젠가는 마주하고 해결해야 할 해묵은 기억과 감정에 대한 이야기로 읽었다.
주인공 영두는 창경궁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수리 보고서 집필 업무를 맡게 된다. 창경궁이 있는 원서동은 그가 어린 시절 잠시 머물렀던 낙원하숙이 있는 동네였다. 그리고 그 시절 영두로서는 억울하고 분하고 그러면서 수치스러웠을 것만 같은 사건이 바로 영두가 인생에서 한 번은 마주하고 해소해야 하는 그런 일을 겪었다. 소설은 온라인 카지노 게임수리보고서 집필 작업을 맡으면서 영두가 원서동에서 자신의 과거와 대면하고, 동시에 그와 연관된 낙원하숙의 비밀(?)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일제강점기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지어진 과정에서부터, 영두를 유난히 아꼈던 낙원하숙 주인 할머니가 해방직후부터 한국전쟁 시기에 겪었던 일, 그리고 2000년대 초반 강화 섬 소녀였던 영두가 서울로 전학 와 낙원하숙에서 머물며 겪었던 일과 수리가 진행되는 현재시점의 이야기까지, 과거의 역사가 등장인물들의 관계망 속에서 현재의 사건으로 연결된다. 역사유적에 얽힌 이야기를 다루는 역사물 같기도 하고, 청소년 시기 상처를 대면하는 성장소설 같기도 하다.
한편으로 나는 이 소설을 '양심'에 대한 소설로 읽기도 했다. 주인공 영두가 겪은 억울한 일이란 자신이 하지 않은 일에 대해 누명을 뒤집어 쓰고도 권력관계 때문에 당할 수밖에 없던 일이었는데, 그때의 억울함이란 양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대온실수리 과정에서 지하에 묻힌 뼈를 발견하고 이를 모른 척 지나가고 싶은 공무원에 대항해 영두와 건축사무소 직원들은 자신들이 감당 가능한 범위를 넘어서는 큰일을 저질러버리는데, 이 또한 양심의 문제와 연결된다. 평생에 한 번은 마주하고 해소해야 할 기억과 감정이 양심의 목소리를 외면한 결과였다면, 양심에 따라 행동한 일은 비록 굉장히 일이 커지고 말지만 그래도 영두와 은세창과 제갈도희에게 그리 나쁘지 않은 기억으로 남게 될 듯하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이 소설을 오래 기억하고 싶은 이유는 '양심'에 대한 소설이라는 점이 아니다. 언젠가는 마주하고 해소해야 하는 기억과 감정에 대한 이야기이고, 그 과정을 섬세하게 그렸다는 점이 이 소설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누구에게나 필요한 순간에 대한 이야기고, 내가 아주 오랫동안 갈망해왔던 경험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이 이 책 리뷰를 써야겠다고 마음 먹게 했다.
"아주 오랜만에 다른 일을 하지 않고 내가 겪은 시간들에 대해 글을 써본 내가 내일 결론이었다. 나는 그 글에 어떤 제목을 붙일까 며칠을 고민하다가 결국 '온라인 카지노 게임 수리 보고서'라는 아주 건조하고 사무적인 제목을 달았다. 일단은 아무에게도 보내지 않고 혼자만 가지고 있었다. 언제 보고가 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름 한 단계를 마무리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394쪽)
여기서 말하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 수리 보고서'는 영두가 일로 맡은 그 보고서가 아니라,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고 그때 매듭짓지 못한 감정과 생각을 진척시켜 쓴 글의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누굴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무리되지 않은 기억과 감정을 마무리하기 위해 써야만 했던 글. 사람들은 저마다 인생에서 마무리되지 못한 감정과 기억들로 괴로워한다. 병역거부자들만 보더라도 자신의 감옥 경험에 대해서 책을 쓰거나( 감옥의 몽상, 현민, 돌베개, 2018) 미술작품(QUARANTINE: 독방의 시간, 김경묵, 2021)을 통해서 마무리되지 못한 감정과 기억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내 경우는 감옥 생활은 그런 경험이 아니었고 첫 출판사에서 노동조합 활동 경험이 그렇다. 당시 나는 퇴사하고 나서도 해소되지 못한 감정 때문에 허구한 날 페이스북에 전 회사 이야기, 더 정확히는 그 회사의 제왕적 대표이사 이야기를 쓰곤 했다. 글을 쓰면서 감정이 해소되었냐 하면, 오히려 반대였다. 말하지 않으면 답답해 미칠 것 같았지만 말할수록 미움과 증오에 잠식당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배설하듯 내가 겪은 일에 대해 쓰면서도 한편으로는 증오와 미움에 먹히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쓰기 뿐만 아니라 읽기에도 집중했다. 당시 읽은 책 중엔 프리모 레비의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내 세계관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고 싶지 않은 이들에 대해, 다시 말해 인간이라는 복잡하고 비겁한 종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프리모 레비의 글쓰기 태도를 보면서 미움과 증오에 사로 집힌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그 시절을 내가 어떻게 통과했는지 잘 모르겠다. 다행히 나는 이제 더 이상 그 과거에 발목 잡혀있지 않는다. 나도 모르는 어느 순간 나만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 수리 보고서를 완성했나 보다. 시간이 약이었고, 나는 혼자가 아니었으며, 운이 좋게도 건강한 친구들이 많아서 그들에게 좋은 영향을 받은 덕분이라고 생각해 본다.
마주해야 할 일, 겪어야 할 감정, 해결해야 할 사건을 남겨둔 친구들이 있다면 온라인 카지노 게임 수리 보고서를 권하고 싶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선가 미뤄둔 일을 마주하게 될 때면 모두들 영두처럼, 자신만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 수리 보고서를 쓸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