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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회철학에서 묻다 Apr 21. 2025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길, 왜 ‘노예의 길’이 되었는가

하이에크 "노예의 길"

세상을 사는 사람들은 모두 한번쯤은 모두가 다 같이 잘 사는 사회를 생각해 봤을 것이다. 뉴스에서는 연일 불평등이 커지고 있다는 뉴스가 쏟아져 나오고, 토마스 피케트의 21세기 자본론처럼 사회 불평등을 다룬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의 소망에 큰 철퇴를 내린다. 지상최대의 사회주의 실험실 이었던 소련은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사회주의는 성공할 수 없다는 교훈을 남긴 체 멸망했다. 중국의 부상은 또 다른 교훈을 남겨주는 것 갔지만, 오히려 중국은 사회주의보다는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고 승승장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사회주의의 달콤한 약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회주의가 실패한 것은 사회주의 사상 때문이 아니라 사회주의를 잘못된 길로 이끈 정치인 때문이야”라고 주장하면서 제대로 된 사회주의를 꿈꾸고 있다.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은 이러한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단언적으로 말하고 있다. 하이에크에 따르면 사회주의는 필연적으로 독재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사회주의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사회주의 지도자들은 전체주의 혹은 공산주의로 키를 돌리고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한다는 것이 노예의 길의 주된 내용이다.


내가 생각하는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은 2가지 큰 범주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첫째, 자유가 인간에게 중요한 이유.

둘째, 자유를 포기하고 자유보다 더욱 큰 이상향을 추구하는 사회주의가 전체주의로 돌아설 수밖에 없는 이유다.


첫째, 하이에크의 자유에 대한 믿음은 매우 확고하다. 자유만이 개인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 수 있고, 자유는 우리 인류가 이제까지 꾸준하게 추구했던 이상향이라는 것이다. 하이에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세상은 개인이 각자가 가지고 있는 사상과 믿음 그리고 아이덴티티에 따라 평가받고 행동하는 세상. 또한, 자유로 인한 발생한 문제는 개인이 책임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세상인 거 같다.


모든 인간은 자기의 삶을 계획하고 자기가 추구하는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능력과 책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개인의 자유를 보장해 줄 때 가장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사회는 도덕적이라는 이유로 개인의 삶을 제한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어떠한 조건이 그리고 어떠한 이상향이 나의 삶에 가장 큰 행복을 줄지는 나만 알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사회를 도덕적으로 만들려든가 혹은 더욱 생산적으로 만들려는 행동은 계획자의 주관적인 가치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고 이는 필연적으로 자유를 억압하고 개인의 삶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바꾸게 된다.


따라서, 법은 최소한의 가이드라인만 제공해 어떤 상황에서든지 개인이 예측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왜냐하면 법과 정부 정책의 예측 불가능성은 개인이 자기의 계획을 세울 능력을 빼앗아 가기 때문이다. 이를 그는 법의 일반성의 원리라고 한다.


또한, 개인을 사회와 권위로부터 해방시켰을 때만 지금 우리가 누리는 경제적 번영을 누릴 수 있다.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에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고 또한, 현재 사회가 생각하지 않는 새로운 방법으로 과학을 적용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았을 때, 새로운 시도를 통해 사회는 발전할 수 있다.


AI가 위험하다는 사회적 생각이 팽배하다면 우리가 보는 Generative ai는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계획경제는 경제를 계획한 주체가 자신의 실패를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계속해서 실패한 정책을 추구할 가능성이 많고 이는 필연적으로 경제 실패를 가져올 수 있다. 한두 번의 성공은 가능하겠지만 이러한 경직된 시스템은 지속적인 성공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하이에크의 입장에 많은 비판이 있다.

첫째, 소득 불평등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둘째, 미국의 Inflation reduct act 혹은 대한민국의 국가 주도 경제 정책처럼 가끔은 정부 주도의 경제발전 계획이 경제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 이러한 경제발전을 포기해야 하는가?


하이에크의 대답은 단호하다.

첫째, 지금 우리가 걱정하는 소득 불평등은 우리 인류가 자유를 얻기 전에 느꼈던 수많은 사회적 부정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를 당연시 받아들이면서 자유도 지키고 소득 불평등도 해결할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을 하고 있다.


둘째, 국가가 개인의 기본적인 소득을 보장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국가가 주도적으로 특정 그룹의 자산을 빼앗아 다른 그룹으로 재분배하는 것은 더 큰 문제를 야기한다. 인간은 시장이라는 비인적인 요소가 주는 장점과 단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비인적인 요소를 이해하고 분석하고 해결하는 것은 인간의 오만이다. 마치 칸트가 자신의 저서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는 인간의 직권남용이다.


셋째, 돈이라는 것은 시장의 우연 즉 지금 시기의 수요와 공급의 결과이지 그 사람에 대한 평가는 아니다. 따라서, 돈을 벌지 못하고 가난하다고 위축될 필요 없다.


넷째, 국가의 개입은 필연적으로 전체주의로 귀결되기 때문에 이는 더 큰 피해를 만든다.


두 번째 범주: 사회주의는 왜 필연적으로 전체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가?

하이에크는 사회주의를 부르짖던 (결과의 평동) 사회주의자들은 그들의 목적이 달성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사회주의를 포기하던지 전체주의로 돌아선다고 말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사회주의는 특정한 그룹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의가 다른 사회적 가치보다 더욱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둘째, 사회주의는 자신들이 목표에서는 동의하지만 자신들의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회적 정책은 다양한 사람들의 이권이 얽혀 있기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러한 제도적 한계에 화가 난 대중들은 민주적인 절차를 무시해서라도 자신들의 절대적 대의를 추구하려고 한다.


셋째, 자유를 중요시하는 최소한의 법과 다르게 사회주의의 법은 특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조항이들이 삽입될 수 있다. 이러한 태도는 사회주의의 시민들이 민주적인 절차를 무시하는 분위기를 형성하고 나치처럼 시민들의 생각을 이용해 사회의 자유를 억업하는 정부를 만들 수 있다.


노예의 길은 사람들에게 경고한다. 악의 기원은 특정한 조건에서 발현되거나 외부의 침입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한 잘못된 선택들이 쌓이고 쌓이면서 악이 발현될 수 있는 세상을 우리가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자유의 소중함을 이해하고 겉으로 보기에는 매력적인 사회주의 정부를 경계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우리는 우리가 제일 경계하고 증오하던 전체주의로 가게 될 것이다.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은 매우 흥미로운 책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회주의에 대한 고민하고 생각하던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내려준다.


“다 같이 잘 사는 것이 왜 나쁘지??”

“공산주의는 실패한 적 없어, 정치의 실패지

사상이나 국가의 실패는 아니지 않아??”


하이에크의 대답은 “아니올시다”이다. 라이프니츠의 신 존재에 대한 대답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부정적이고 지옥처럼 보이지만, 이는 우리가 창조할 수 있는 최고의 세상이다”라고 대답한다. 하이에크는 오스트리아 학파로서 좌파 경제학자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나는 하이에크와 현세대의

좌파 경제학자들은 많은 것을 공유한다고 생각한다.


하이에크가 꿈꾸는 사회는 사람이 부나, 사회적 지위와 관계없이 희생되지 않는 사회다. 가난하더라도, 자유라는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다. 지금 세상은 좌파 경제학자의 눈에는 rent seeking, 정치적 영향력, 약한 반독점법등 정부가 부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이 이득을 대변해 주는 세상이다. 조지프 스티브글리츠의 “불평등의 대가”가 설명하는 것처럼 정부는 자유의 편이 아니라 부자들 특히 “Banker”들의 편이다. 하이에크 또한, 지금의 세상을 조지프 스티브글리츠가 바라보는 것처럼 바라볼 것이다.


또한, 지금의 자본주의는 하이에크가 원하는 개인이 개인의 역량과 주관에 따라 평가받는 세상이 아니다.

지금의 세상은 “돈을 버는 능력”이 개인을 평가하는 세상이다. 지금 세상에서 자유를 주장할 수 있을까??

돈에 의해 평가받지 않고 자신의 고유 능력에 따라 평가받지 않는 이상 하이에크의 이상향은 올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은 하이에크가 생각하는 것만큼 강력하지 않다. 인간은 다양한 기준과 사회적 억압에 휘둘리면서

살 수밖에 없다. 돈 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지만, 내 앞에서 내 친구가 벤츠 G-class를 타고 다닌다면

흔들리지 않을까?? 내가 생각하는 가치가 나에게 내면의 행복을 준다고 하더라도 모든 사람들이

나의 삶이 별로라고 한다면?? 우리는 유전적 영향으로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쓸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해결책은 있다고 생각한다. 해결책은

첫째, 교육이다. 시민들이 다양한 인문학적 교육을 받고 인문학적 소양으로 내면의 평화를 추구할 수 있다면

타인의 시선보다는 나의 행복을 추구하기 더욱 쉬울 것이다.


둘째, 몰입하는 삶이다. 내가 원하는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중요한 일에 몰입하고 성취할 수 있다면 돈이 줄 수 없는

행복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셋째, 가족과의 행복한 삶이다. 물론 가족의 범위를 community로 넓힐 수도 있겠지만, 가족과의 행복한 삶이

사람들에게 유니크하고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의 조건이 될 수 있다.


사회주의는 실패했다. 아니 사회주의는 시장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실패할 수밖에 없다. 자유주의 정책을 펼치면서 미국을 위협하던 중국은 시진핑의 중앙집권적인 정책을 통해 생산성을 곤두박이칠 치고 정치는 더욱 폐쇄적으로 되고 있다. 이는 하이에크의 사회의 길이 예견했던 길을 가는 것이다.


하지만, 불평등을 무조건 적으로 수용할 수는 없다. 우리 사회는 구성원들이 다양한 삶의 가치를 수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노예가 되지 않고 주최적인 삶을 사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정리하자면, 하이에크는 (1) 인간의 자유야말로 진정한 번영의 조건이며, (2) 사회주의는 그 자유를 억압하고 결국 전체주의로 향할 수밖에 없으며, (3) 자유주의 역시 정교한 제도적 설계를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그가 던진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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