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계동 아이들 (편집분)
너무도 먼 기억을 소환해 봤다. 어린 시절 그 추억은 아직도 가슴 언저리에 맴도는데, 정작 그 어디에서도 자취는 남아있지 않았다. 추억은 흩어지는 바람처럼 내 곁을 스치고 지나갔다. 서울 변두리 지역인 그곳은 나의 유년시절의 자취가 곳곳에 숨을 쉬고 있었다. 지금은 찾을 수도 없는 골목길과 과수원길, 그리고 나의 친구 '호야'를 불러와 어린 시절 일화를 옴니버스식으로 써봤다.
나는 가끔씩 어쩌다 눈을 감고 그 시절을 떠올려 본다. 바람에 실려 온 흙냄새, 골목길을 가득 메우던 아이들의 함성, 그리고 해 질 녘이면 들려오던 엄마가 부르는 소리까지. 지금은 모두 아스라이 희미해졌지만,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다. 어린 시절나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하루하루를 보냈다. 손바닥만 한 공터에서도, 좁은 골목에서도 우리는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비가 오면 빗물을 모아 작은 댐을 만들고, 가을이면 낙엽을 모아 불을 피우며 하루가 영원한 줄 알았다.
그 시절 호야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어디서든 가장 먼저 달려 나왔고, 언제나 가장 신나게 뛰어놀았다. 호야와 나는 과수원길을 따라 학교에 가고, 골목길을 누비며 비밀 아지트를 만들었다. 어쩌면 나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할 때 호야를 빼놓는 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우리는 어느새 어른이 되었다.낡은 골목길은 사라졌고, 과수원길은 아파트 단지로 변해 버렸다. 그리고 카지노 쿠폰… 그는 어디에 있을까? 여전히 그때처럼 환하게 웃고 있을까?
나는 잊히고 사라진 기억들을 하나둘 꺼내어 다시 엮어보려 한다. 바람처럼 흩어져 버린 그날들의 조각을 모아, 어린 시절의 우리를 다시 불러내려 한다. 이제, 그 이야기들을 시작해보려 한다
"오빠! 저거 맛있겠다!"
여동생이 손가락을 가리킨다. 여름 끝 무렵, 포도가 주렁거리며 밭 전체에 여물어가고 있었다.
"떼숙이하고 가서 따와! 내가 망볼게!"
"오빠…. 어디 가면 안 돼!"
"걱정하지 마! 가서 따와 봐."
동생과 그 친구 태숙이를 보내고, 나는 킬킬거렸다. 태양이 작열하는 여름철 오후 두 시, 포도밭에는 아무도 없었다. 둘이 가서 따오면 내가 받아 들고 냅다 뛰어가면 끝이다. 그런데…. 포도밭에 들어간 두 아이가 한참이 지났는데, 나오질 않는다. 뭔가 잘못되어 간다는 의심이 들었다. 망…. 태 할아범이 나오는 게 보인다.
'아뿔싸! 망태 할아범 밭이었구나!!!'
큰일이었다. 우리 가게에 오는 거 보면 성깔이 보통이 아니던데…. 술 먹는 아저씨들과 싸움이 한판 있었다. 노인분인데도 완력이 보통이 아니다. 술주정하는 장정 둘을 멱살을 잡고 내동댕이치는 걸 봤다. 나는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동생이 있었다. 나보고 어디 가지 말라던 내 동생….
'욱…! 이제 나는 죽었다!'
망태 할아범은 안쪽 깊은 곳에서 피를 뽑고 있었다. 그 잡초가 수북한 망태를 옆에 걸치고 두 손은 계집아이들 어깨를 하나씩 붙잡고, 두리번거리며 나오고 있었다.
"어느 놈이 오라비냐?"
"저…. 전…. 데요."
나는 이실직고할 수밖에 없었다. 목소리는 개미처럼 굴속을 파고들었다.
"아니 너는! 요 앞 새로 난 점방의 아들놈 아니냐…? 고이 헌.... 쯧쯧! 포도가 먹고프더냐?"
"사내놈이 어린 동생 년을 시켜 포도 서리를 시키는 게야?"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초등학교 3학년치고는 덩치보다 키가 껑충한 나를, 할아범은 혀를 차며 나무랐다. 보나 마나 우리 가게로 가서 엄마에게 따질 듯싶었다. 동생은 친구와 울고 있었다.
"너희는 포도 가져가 먹거라…! 시끄럽게 여기서 울지 말고…! 뚝!!!"
속으로 잘됐다 싶었다. 엄마한테 혼나지 않겠다고 생각하니 긴장이 풀렸다. 동생들은 울음을 멈추고 나를 빤히 쳐다본다. 갑자기 내 왼쪽 귀가 뭔가에 잡혔다. 할아범은 내 귀를 틀어쥐고 말했다.
"네 놈은 일 좀 해야지!"
포도밭으로 끌려 들어가며 나도 울고 싶어졌다.
"할아버지! 귀…. 귀 좀 놔주세요…. 아파요."
망태 할아범은 귀를 놔주고 어깨를 움켜쥐었다. 한참을 포도송이 사이를 지나서 움막 비슷한 곳에서 나를 놔준다. 아마 일하다가 쉬는 장소 같았다.
"네 놈은 지금부터 여기 주변의 잡초를 다 뽑고, 나한테 검사를 받아야 해! 알아들어!!"
"그리하면 네가 시킨 일 함구하마, 아까 그 포도값 대신이여…. 시작해!!"
팔월 땡볕에 잡초를 뽑았다. 어떤 잡초는 너무 뿌리가 깊어 잘 나오질 않는다. 동생을 시켜 남의 과실을 훔쳤으니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한참을 풀을 뽑는 동안, 할아범은 움막에 누워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키만 멀대같이 큰 나는, 뜨거운 햇볕 아래 너무 많이 노출돼 땀이 비 오듯 했다. 그러나 지은 죄가 있기에 무어라 할 말도 없고, 그냥 빨리 이곳에서 나가고 싶었다.
"아니! 남의 집 아이라고 아주 중노동을 시키고 있네! 이 노친네가!!"
엄마가 왔다. 눈에는 쌍심지가 켜져 있었다. 동생이 집에 가서 자초지종을 일러바친 모양이다. 순간 망태할배는 소스라치게 놀라 일어섰다. 엄마는 덩치가 크다. 까무잡잡하고 호리호리한 할배보다 키도 더 크고, 풍채가 있었다. 목소리 또한 우렁차, 여느 아줌마들과는 달랐다. 갑자기 내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할배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엄마에게 말했다.
"아이고 아줌씨…. 이놈이 아를 시켜서 포도 서리를 하길래, 김 좀 매라고 내 시켰소."
"그렇다고 이 땡볕에 애를 이 지경을 만들어요! 포도값이 얼마길래…. 너무 심하잖아욧!!"
나는 그때까지 참고 있던 울음이 터졌다. 엄마는 내 등짝을 후려쳤다.
"뭘 잘했다고 울고 자빠졌어, “으이그!” 학교 숙제나 하라니까 포도나 훔치게 하고. 엉!!!"
엄마에게 맞은 등이 후끈거렸다. 그래도 엄마가 있으니 좋았다. 망태할배는 갑자기 주섬거리며 봉투 하나 가득 포도를 넣어 엄마에게 건넨다.
"내가 손주놈 같아서 일 좀 시켰소! 사내놈이 이 정도 일은 해봐야 하지 않겠소!"
엄마도 누그러져 다소 공손한 말투로 대답했다.
"애가 키만 크지, 비실대요…. 땀을 비 오듯 흘리길래 탈이 날 것 같아서…. 제가 좀 흥분했네요."
다시는 포도밭 근처도 오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엄마와 집으로 간다. 가게 아이스박스에서 엄마는 막걸리 주전자를 꺼내어 나에게 준다. 망태할배에게 주고 오란다. 부리나케 주전자를 들고 할배에게 가서 드리니, 얼굴 한가득 미소를 머금고 엄마에게 고맙단 인사를 드리라고 또 심부름을 시킨다.
오는 길, 카지노 쿠폰가 궁금해진다. 카지노 쿠폰는 이름이 외자다. 성은 김 씨에 이름이 '호'니까, 우리 또래들은 카지노 쿠폰라고 불렀다. 큰 느티나무 길가 아래쪽에 카지노 쿠폰네 집이 있다. 흙과 벽돌로 지은 집인데 지붕은 짚으로 이어 초가집이었다. 나하고 동갑인데도 카지노 쿠폰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내가 벌써 3학년인데 카지노 쿠폰는 한글도 몰랐다. 집안은 다른 집과 다르게 멍석이 깔려 있었다. 창문은 작아서 집안이 어두컴컴했다. 창문을 두들겨 카지노 쿠폰를 부른다.
"카지노 쿠폰! 뭐 하고 있어. 놀자!!!"
카지노 쿠폰가 나왔다. 눈가에 눈물 흔적이 보인다. 순간, 이 녀석도 엄마한테 혼났나 보다 하고 생각한다. 카지노 쿠폰 엄마는 벽돌 공장에서 일하신다. 남자들도 하기 힘든 일을 카지노 쿠폰 엄마는 한다고 엄마가 말했었다. 그리고 좀 모자란 사람 같다고 말했었다. 우리 가게에 와서는 이런저런 물건을 고르고는 돈을 손에 꼬깃꼬깃하게 쥐고 엄마에게 건넨다.
엄마는 물건을 합산하고 돈을 일일이 퍼서 계산을 맞추고, 남는 돈은 돌려주곤 하였다. 그리고 딴 데 가서는 그런 식으로 돈 내밀지 말라고 아이 타이르듯 하셨다. 카지노 쿠폰 아버지는 무슨 사고로 돌아가셨다고 어른들께 들었다.
"미꾸리 잡으러 가자!"
카지노 쿠폰는 대뜸 논으로 미꾸라지 잡으러 가잔다. 나도 카지노 쿠폰하고 노는 게 좋았다. 공부니, 숙제니 하는 것에서 벗어나 산에 가서 가두리 물에서 수영도 하고, 미꾸라지 잡는 것도 좋았다. 대신 엄마한테 혼날 것은 각오해야 한다.
카지노 쿠폰와 가게로 가서 엄마에게 좀 놀다 오겠다고 말하니, 엄마는 하드 통에서 아이스 케키 두 개를 꺼내어 나와 카지노 쿠폰에게 준다. 카지노 쿠폰와 나는 신이 나서 소주병 하나를 들고, 입에 문 케키를 연신 빨며 논으로 내달렸다.
"거기서부터 몰아!"
카지노 쿠폰가 말하자, 나는 발로 물탕을 튀기며 이리저리 미꾸리가 있을 논둑 배기 풀숲을 신나게 휘젓는다. 망태 할아범한테 혼난 일도, 엄마에게 등짝을 맞은 일도 다 잊혔다. 지금은 카지노 쿠폰와 미꾸라지 잡는 순간이 너무 즐겁다.
뚜그락거리는 소리가 아스라이 들린다. 말을 타고 오는 소리다. 눈을 들어 큰길을 보니, 매일 말을 타는 근처 중학교 주인이라는 사람이다. 나도 말을 타고 싶었다. 흙바람을 일으키며 신나게 달리다, 말 위에서 머리카락을 연신 쓸어 올리는 모습이 너무 멋있다.
"뭐 하냐? 몰아 오라니까!"
카지노 쿠폰가 연신 보챈다. 알았다는 신호를 보내고 다시 발을 휘저었다. 플라스틱 채 바구니를 든 카지노 쿠폰는 능숙하게 풀숲을 휘젓더니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바구니를 들어 올린다. 궁금해 달려가니 시커먼 미꾸리가 한가득하다.
"그만 가자! 이 정도면 울 엄마가 맛나게 해 줄 거다."
카지노 쿠폰네 집으로 신이 나서 갔다. 카지노 쿠폰 엄마가 와서 우물물을 길어 무언가를 씻고 있었다. 벌써 저녁때가 되었나 보다. 집에 가야 한다. 늦으면 또 혼난다. 불암산을 넘어온 태양은 이미 서쪽으로 지고 있었다.
겨울이라 바람이 매섭게 분다. 우리 가게를 찾는 사람들이 연신 문을 열어대는 바람에 찬바람이 자꾸 들어온다. 방 안에서 동생과 나는 빼꼼히 열린 여닫이문으로 가게 안 사람들을 본다. 어제 자기 전에 엄마는 큰 들통 하나를 연탄난로 위에 얹어놨다. 그리고 달걀 여러 꾸러미를 넣어 놓으셨다. 우리 동네 아저씨들의 발걸음이 잦아졌다. 막걸리에 그 달걀을 먹으러 오는 것이다. 달걀이 좋아 보이지 않던데? 아저씨들은 연신 껍질을 까고 잘도 먹어댄다. 모처럼 엄마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방학이라 학교 갈 일도 없어진 우린 방안에 책을 늘어놓고, 배를 깔고 방학 숙제를 했다. 얼마 후, 웅성거리던 가게 안이 조용하다. 엄마가 방문을 열고 옆집에 다녀올 테니 가게 좀 보라고 하신다.
동생과 나는 무슨 약속이라도 한 듯이 벌떡 일어나 달걀 들통 앞으로 간다.
"한 개씩만 먹어볼까? 엄마가 많이 넣어놨다!"
동생이 제안한다. 하긴 이렇게 큰 들통에서 한두 개쯤은 표도 안 날 것이다. 뚜껑을 열고 안을 들여다본다.
"우웩! 이런 걸 어떻게 먹지?"
우리가 보기엔 도저히 엄두가 안 나는 달걀이 들어 있었다. 냄새도 찐 달걀과는 다르다. 동생은 코를 쥐고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는다. 자세히 보니 병아리가 되다만 달걀이었다. 껍질 속에 있으니 달걀은 맞다. 근데…. 시커먼 병아리 털도 보이고…. 노른자도 뭉개져 보인다.
"그새를 못 참고 가게 보라니까!, 들통은 왜 열어…!, 어른들이 먹는 거야…! 자꾸 열면 안 돼!!"
가게 문이 열리더니 엄마가 말했다.
'어…. 아버지도 오시네'
아버지는 가게 수입으로만 살기 힘드니 취직하시겠다고 하셨다. 나는 얼른 방으로 들어가 책을 들고 공부하는 척하였다. 아버지와 엄마는 가게에서 두런두런 무슨 말씀을 하신다. 가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문틈으로 보니 뽀빠이 아저씨가 왔다. 나이는 아버지보다 많은가 보다. 아버지는 형님이라고 부른다. 다리를 절고 다녀 그렇지, 상체는 어깨가 떡 벌어지고, 머리를 짧게 깎아 영락없는 뽀빠이를 닮았다.
"아이고! 형님 오세요!"
아버지 얼굴에 희색이 돈다. 엄마는 뭔가 마뜩잖은 표정으로 부엌으로 들어간다.
그 들통의 뚜껑을 뽀빠이 아저씨가 연다.
"이야! 맛나겠다."
"한잔해야겠죠. 형님!"
"좋…. 치, 안주가 아주 그만인데."
저런 경우는 계산이 헷갈린다. 아버지도 드시니 계산은 누가 하나? 엄마가 표정이 안 좋은 이유를 알겠다. 뽀빠이 아저씨는 능숙하게 곤달걀 껍질을 까고, 입안에 털어 넣었다.
몇 번의 우물거림과 목 넘김이 다른 아저씨들과는 다르다. 병아리 깃털 따위는 우물거려 뱉는다. '저렇게 잘 먹으니 뽀빠인가?'문틈이 너무 벌어져서인지 아저씨가 나를 보고 나와서 하나 맛보란다.
몇 잔의 술이 오고 갔는지, 아버지는 벌써 얼굴이 불콰하시다. 주섬거리다 가까이 가니 아버진 나에게 까놓은 곤달걀을 주신다. 징그럽기도 하고 내키지 않아 바라만 보고 있으니 한 말씀 하신다.
"사내놈이 뭘 그리 사리냐? 그냥 닭고기라 생각하고 먹어봐!"
유난히 병아리 깃털이 많이 보인다. 깃털을 떼어내고, 안쪽의 모가지 같은 것도 떼어내고…. 도저히 못 먹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못 먹겠어요!"
아버지와 뽀빠이 아저씨는 웃어댔다. 가게 문이 열리더니, 옆집 요꼬공장의 뇌신할머니가 얼굴을 찌푸리며 들어오신다. 보나 마나 두통약 '뇌신'을 사러 오신 것이다.
"어휴! 이게 무슨 냄새야?"
뽀빠이가 곤달걀을 보여주니, 손사래를 치신다. 나에게 두통약을 받아 들고 엄마한테 외상 달아 놓으란다.
엄마가 부엌에서 나와 옳다구나 싶었다. 저녁도 먹었겠다 카지노 쿠폰나 보러 가고 싶었다.
슬그머니 밖으로 나오니, 그놈의 냄새에서 해방되었다. '엄마는 왜 그런 걸 삶아서 팔까?'그런 생각을 하다 카지노 쿠폰네 집 앞에 섰다. 희부연 창가에 서서, 안을 들여다보니, 카지노 쿠폰가 혼자 밥을 먹고 있었다.
"카지노 쿠폰! 나왔어! 밥 먹는 거야!"
카지노 쿠폰가 손짓한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라면 냄새가 진동한다. 라면은 우리 가게에서도 비싼 건데…. 무려 30원짜리 라면을 많이도 끓였다. 배가 부른 지 나에게도 젓가락을 권한다.
"라면 어디서 났어! 엄마는 어디 가고?"
"엄마 공장 아저씨가 와서 한 상자나 주고 갔다!"
일하시다 다쳐서 병원에 가셨단다. 한동안 병원에 있어야 하니 밥 대신 라면으로 주고 간 모양이다.
카지노 쿠폰엄마가 벽돌 공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학교에서 오다가 본 적이 있다. 너른 들판 한낮의 햇볕이 내리쬐는 곳에서 일하고 계셨다.
나무로 만든 큰 탁자 위, 힘겹게 쇠붙이로 만든 틀 위에 삽으로 모래 시멘트를 부어주고, 좌, 우로 탁탁 소리가 나게 흔들면 신기하게 벽돌 모양이 나오는 모습을 봤다. 재밌게 생각되어 한참을 봤던 기억이 있다.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엄마가 왔다.
"요 녀석! 어디 갔나 했더니…. 카지노 쿠폰! 이거 받아라!"
엄마는 팥죽과 김치를 카지노 쿠폰에게 주었다. 카지노 쿠폰는 눈이 휘둥그레져 좋아하는 눈치다.
"네 엄마가 한동안 집에 못 오니까 아줌마네 와서 밥 먹어라!"
그렁그렁한 눈으로 카지노 쿠폰는 그러겠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낮에 병원에 가서 자기 엄마를 보고 왔단다.
"너는 라면 그만 뺏어 먹고 집에 가 숙제해!!"
카지노 쿠폰 엄마는 겨울이라 일거리가 없어, 낡은 집을 부수는 곳에서 일하다 무너지는 담벼락에 깔렸다고 한다. 우리 엄마에게 연락이 와서 한동안 돌봐야 한다고 엄마는 말했다. 라면을 절대 뺏어 먹지 말라고 하신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지팥죽을 하셨다고 했다. 크리스마스가 코앞이라 양말 선물만 생각했는데 동지는 또 뭔지, 팥죽은 맛있었다.
내일은 눈치 봐서 카지노 쿠폰와 썰매를 타야겠다. 산자락을 끼고 내려오는 시냇물이 꽝꽝 얼었다. 낮에 보니 동네 형들이 외발 썰매를 신나게 타는 걸 봤다. 바로 윗동네 당고개에서 울 동네까지 쭉 썰매로 내려올 수 있다.
생각만 했는데 벌써 흥분이 된다. 방학 숙제는 눈에 안 들어오고, 잠도 안 올 것 같다.
"거기 보따리 가벼우니까 엄마한테 줘봐!"
또 이사를 한다. 아버지 취직이 안 됐다고 한다. 가게에서 번 것으로는 생활이 안 된다고 하신다. 가게를 넘기고 근처의 할아버지 댁으로 간다. 엄마는 할머니를 불편해하셨다. 할머니도 뭐가 맘에 안 드는지 엄마를 싫어하는 것 같다. 작은엄마가 오면 그렇게 살갑게 구시면서, 울 엄마는 같이 살면서도 눈치를 준다. 이 전에 같이 살아봐서 안다. 그래도 같이 가니까 좋다. 나 혼자 할머니 댁에 있으면 좀 쓸쓸하다. 가게를 하고 한참 있다가 여기 와서 학교에 다녔다. 엄마는 만삭의 몸이다. 또 동생이 생기나 보다.
"엄마! 오빠가 항아리 깼어!"
"으이그! 그럼 그렇지!!"
저것이 또 일러바친다. 별로 쓰지도 않는 항아린데…. 살짝 치우면 됐는데….
"너 나가서 놀아! 훼방 놓지 말고!"
차라리 잘됐다. 사촌 동생 주선이와 바로 앞산에 오른다. 고모 아들 주선이와 나는 한 살 터울이다. 거의 동갑이라 싸울 때가 많다. 고집이 황소 같다. 구슬치기를 하다가 자기가 졌어도 끝까지 우긴다. 그래도 둘이 놀 때가 재미있다. 주선이와 집 바로 뒤 불암산에 오른다.
산자락이 온통 분홍빛이 감돈다. 진달래가 산을 뒤덮었다. 가는 길에 나무작대기 하나씩 꺾어, 칼싸움도 하고 시냇가에 돌도 들춰 가재를 찾는데, 낯익은 아이가 내려온다. 카지노 쿠폰가…. 맞다.
"카지노 쿠폰!! 여기까지 어떻게 왔어."
카지노 쿠폰도 반가운지 씩 웃는다. 엄마가 퇴원하고 식당 일하신단다. 내년엔 학교도 보내준다고 했단다. 나에게 한글 좀 가르쳐 달라고 한다.
"너…! 그럼 나한테 선생님이라고 해야 해!"
나는 으쓱거리며 말했다. 카지노 쿠폰도 대뜸, 나를 선생 놈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그 말이 우스워 깔깔거렸다.
카지노 쿠폰를 데리고 이사한 할머니 집으로 갔다. 아직 짐 정리가 안 된 우리 방은 엄마가 장롱의 모퉁이를 맞추고 있었다. 카지노 쿠폰가 성큼 올라가 엄마를 돕는다.
"아이고! 카지노 쿠폰 왔구나…!, 저 녀석은 노는 데만 정신이 팔려서…. 쯧"
엄마는 카지노 쿠폰의 손을 잡고, 나를 노려보신다. 하긴, 내가 봐도 카지노 쿠폰는 그런 일을 기가 막히게 잘했다. 우리 집에서 밥 먹을 때도 설거지를 돕겠다고 엄마 손의 그릇들을 가지런히 씻어놓곤 했다. 나는 그런 일에는 관심도, 일머리도 없다.
안방으로 들어가니 할머니가 아버지와 무슨 말씀을 하고 계셨다. 나를 보시더니 우리 장손 왔냐고 반겨주신다. 할머니하고는 두 번째 같이 살게 된다. 이문동에서 살 때 할머닌 싸늘하면서 속이 깊으신 분이란 걸 알게 되었다. 유난히 나에겐 잘해주셨다.
둘째 삼촌 예비군복에서 천 원짜리가 떨어져 있었다. 동네 친구들을 끌어모아 [월하의 공동묘지]를 보러 갔다. 그래도 돈이 남아 극장 안에서 뻥튀기를 잔뜩 사줬다. 집에 가니 할머닌 내 운동화를 사다 놓으셨다. 나에게 신겨보시더니…."손버릇 나쁜 놈 신발까지 신겨주네"…. 나는 머리카락이 쮸뼜 올랐다.
"할머니…. 잘못했어요!"
"담부터는 그럼 안된다. 그 돈은 삼촌 거야"
할머닌 말없이 신발이 맞으니 함박 웃으셨다. 이런저런 하루가 지나고, 다음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 왔다. 엄마가 아기를 낳았다고 한다. 여동생이 또 생겼다. 포대기에 싼 아기를 보니 왠지 심드렁하다.
나도 웬만한 것은 안다. 아버진 술에 취해 들어오는 날이 많았다. 그때마다 할아버진 아버지를 나무랐다.
"네가 지금 술추렴하고 다닐 때냐! 애들 추스를 생각 해야지!! "
"아버지! 못난 아들이라 죄송합니다!!"
"어미야! 들여다 재워라!"
두 분이 그런 식의 대화가 하루가 멀다고 계속되니, 나는 속으로 불안하였다. 가게를 할 때가 좋았다.
'우리 가족은 왜 툭하면 할머니 댁에서 살게 될까?'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방과 후 집에 들어섰는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엄마가 방에서 울고 계셨다. 아버지도 침울히 앉아계셨다. 아기가 죽었다고 한다. 어쩐지 재작년에 태어난 둘째 여동생하고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잘 울지도 않고, 유난히 얼굴이 빨개서 엄마도 걱정하는 눈치셨다. 아기들이 걸리는 간기라고 했다. 이름도 채 못 지었는데…. 밖으로 나가 동네 어귀에 서 있자니 카지노 쿠폰가 오고 있었다.
'오늘은 공부하기 힘들 거 같은데'라고 생각했다.
마루에 카지노 쿠폰와 앉아 있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아기 문제로 말씀하고 계셨다. 산자락 어딘가에 아기 무덤이 많은 곳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나, 거기 알아요!!" 카지노 쿠폰가 말했다.
난 화들짝 놀랐다. 어른들도 놀란 눈치다. 아버지는 호에야게 자세히 묻더니, 저녁에 같이 가자고 하신다. 카지노 쿠폰는 엄마에게 말하고 오겠다고 했다.
해가 지고, 사방이 깜깜한데, 할아버지와 아버진 죽은 아기를 사과 궤짝에 포대기째 넣고, 카지노 쿠폰가 앞장서는 산길을 나섰다. 나도 따라나서려 했지만, 엄마가 붙잡고 가지 말라고 하신다.
'카지노 쿠폰가 가는데, 난 왜 못 가게 하실까?'
엄마는 어른들 하는 일에 사람이 많으면 안 되니 집에 있으라고 하셨다. 딱 일주일 살아있을 때, 두 번인가 아기 얼굴을 봤다. 엄마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한숨만 쉬셨다. 아기 얼굴도 이젠 생각이 안 난다.
다음날 학교가 끝나고 카지노 쿠폰네 집으로 갔다. 카지노 쿠폰 엄마도 계셨다. 나를 보더니 밥 먹고 가란다. 불고기 반찬이 맛있었다. 식당을 다니신다더니 반찬이 좋다고 생각했다. 카지노 쿠폰는 말없이 밥만 먹었다.
호에야게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를 펴놓고 쓰는 법을 가르친다. 기역, 니은, 디귿은 쓸 줄 아니 읽거나 쓰는 걸 가르친다. 호에야게 묻고 싶으나 꾹 참았다. 갑자기 카지노 쿠폰가 나에게 말한다.
"너희 아버지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랬다!"
"우리 아기는 어디에…. 있어?"
"불암산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다! 하늘나라로 갔을 거야!"
하늘…?, 아기는.... 하늘로 돌아갔다.
아기도 자기가 있을 데가 아니라고 생각했나 보다. 다시 하늘로 간 걸 보니…. 돌아오는 길에 산자락이 유난히 붉어 보인다. 아기 얼굴처럼….
"머리 깎고 거스름돈으로 공책 사 써!"
엄마가 백 원짜리 지폐를 주시면서 말씀하신다. 속으로는 이미 남길 돈을 셈하고 있다. 이발소 가봐야 뻔하다. 바리깡도 잘 안 드는 걸로 깎으면서, 내 머리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짱구라고 놀릴 것이….
개천 건너가는 다리 위에 길거리 할아버지 이발사가 잘 깎는다. 돈도 이발소 반밖에 안 받으니…. '우히히히'…. 다 남기자고 하는 짓이다.
시장 넘어가는 다리 위…. 역시나 이발사 할아버지가 계신다. 나무 궤짝 의자 위에 나를 앉히고 이리저리 능숙하게 내 머리를 깎는다. "짜식 머리통이 나중에 한자리하겠다!" 기분 좋은 말씀도 하신다. 그것보다 남길 돈을 생각하니 벌써 기분이 좋다. 만홧가게에 가서 2권 보고…. TV도 한 시간 보니까…. 황금박쥐…? 요괴 인간을 하나?
"오빠! 여기서 머리 깎아!"
또 저것이 왜…? 산통을 깬다. 초등학교 1학년 내 여동생은 입이 싼 계집애다. 친구 태숙이와 어디서 놀다 온다고 했다.
분명히 엄마한테 말할 텐데, '흐이그'하는 수 없다. 잠깐 있으라고 하고 셈을 치른 후, 바로 옆의 빙수 가게로 데리고 간다. 문방구점에서 하는 빙수인데 빙수가 더 많이 팔린다. '우리 집도 저런 거 하면 돈 벌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우리 차례가 오길 기다린다. 빙수 기계에 덩어리 얼음을 하나 끼워 손으로 돌리는 대로 사각사각 소리가 벌써 시원해진다.
"오빠! 돈 어디서 났어?"
"머리 깎으라고 엄마가 줬다!"
"근데 빙수도 사 먹어? 나머진 엄마 도로 줘야지!"
"공책 사서 쓰든지…. 하라고 하셨거든!"
"그럼 우리 만화책 보러 가도 되겠다…! 그치 오빠?"
이것들이 사람 환장하게 만든다. 자기에게 들켰으니 나머지 돈을 같이 쓰자는 거 아닌가? 그러고 보니 빙수는 왜 사주는지 모르겠다. 두 녀석이 벌써 반이나 퍼먹고 있다. "나도 좀 먹어보자!" 숟가락을 들고 나도 먹었다. 왠지 시원하지 않다.
만화방으로 갔다. 세 명이나 되니 만화책 두 권씩만 보라고 한다. 근데 조금 있다가 '요괴 인간'하는 날인가 보다. TV 옆에 그렇게 써놨다. 한 권씩만 보고 TV를 보겠다고 했다. 요괴 인간 만화가 재밌게 흐른다. 베라와 꼬마 베로가 위기에 처했다. 막강한 벰이 나타나 구해줄 것…. 나무작대기가 내 머리를 쿡 찌른다.
"30분 지났다. 넌 동생들 데리고 나가!"
중요한 장면이었는데, 나가란다. '혼자 왔어야 하는데'…. 저것들이 늘 말썽이다. 지난번 포도 서리할 때도 꼭 나를 물고 들어가 나만 혼났다. 만홧가게를 나와 집으로 간다. 나머지 줄거리가 오는 내내 궁금해 죽겠다.
"어휴! 누나 닮아서 키가 많이 컸구나…! 동생 데리고 어디 갔다 오냐?"
"안녕하세요! 삼촌!"
작은외삼촌이 오셨다. 외삼촌은 특유의 냄새가 난다. 어렸을 때 외갓집에서 살 때도 특유의 그 냄새가 났었다. 성격이 조용하시고 다정다감해서 성남에 살 때, 나를 데리고 낚시터에 가곤 했었다. 엄마는 눈가를 훔치고 계셨다.
"그래…. 가면 몇 년이나 거기서 일하니!"
"3년을 계약했으니 버텨봐야지!"
"그 더운 데 가서 밥이나 제대로…. 졸업했으면 지금쯤 은행에서 편하게 일할 텐데…."
"다 지난 얘기를 해…! 누나는 참!"
작은외삼촌이 사우디 다란 인가 어딘가로 일하러 가신단다. 원래 상고를 다녔는데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1년 사이로 돌아가셨다. 황달이 와서 학교에 못 가고 집에만 있는 통에 졸업을 못 했다고 한다. 같은 학교에 동급생이던 친 막냇삼촌은 근사한 양복에 은행원으로 일하는데…. 작은 외삼촌의 미소가 유난히 좋았다. 빙그레 웃을 때마다 하회탈의 주름이 생각난다.
"우리 뒷산에 올라가 볼까? 여기 산이 도봉산 다음으로 멋있다던데 정말 그러냐?"
외삼촌은 불암산에 올라가 보고 싶어 했다. 내가 앞장을 서고 산으로 간다. 가는 길에 카지노 쿠폰를 불러 같이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삼촌에게 친구를 불러 같이 가자고 하니 데려오라고 하신다. 카지노 쿠폰를 불렀는데 집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다. 며칠 못 봤는데 좀 궁금했다.
"히야! 바위산이 근사하구나! 오르려면 힘깨나 들겠는데!"
아직 한참을 가야 하는데 삼촌은 감탄부터 한다. 산초입 들녘 가로수길에서 카지노 쿠폰를 만났다. 나 혼자가 아닌 삼촌이 옆에 있어선지 좀 머뭇거린다.
"네가 카지노 쿠폰구나! 너희 집에 들렀다 오는 거란다!" 삼촌이 말했다.
"어디 갔었어! 우리 외삼촌하고 산에 가는 길이다!"
카지노 쿠폰 엄마가 어제 집에 안 들어오셨단다. 그래서 엄마를 찾는다고 식당에도 가봤는데 거기도 안 왔었다고 한다. 갑자기 나도 심각해졌다. 삼촌이 백 원짜리를 주시며 같이 놀라고 하신다. 조금 둘러보다 내려간다고 하셨다. 삼촌에게 밥 먹을 때까지는 집에 간다고 말하고 카지노 쿠폰와 내려왔다.
또 백 원이 생겼다. 갑자기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고 생각했다. 카지노 쿠폰는 나에게 당고개 쪽으로 가자고 한다. '거긴…. 좀…. 먼데? 참! 카지노 쿠폰가 엄마 찾는다고 했었지….' 카지노 쿠폰와 당고개 쪽으로 걸었다. 일부러 개천 길로 간다. 깊지 않으니 신발을 벗고, 물살이 발목에 가르는 개천 길이 시원하니 좋았다.
"하이고! 이놈들아 그 지저분한 물에서 발 담그고 싶냐!"
지나가던 어떤 아저씨가 우릴 보고는 혀를 차며 말씀하셨다. 시장 옆을 지날 때쯤 개천물이 우리가 봐도 더러웠다. 신발을 주섬거리고 신었다. 시장을 가로질러 가면 바로 당고개가 나온다. 근데 거기 어딜 가는지 카지노 쿠폰는 말이 없다. 그냥 거기 어디쯤 엄마가 있을 거 같다고 한다.
시장에 들어서니 부침개나 튀김을 파는 가게에 눈길이 머문다. 갓 튀겨낸 튀김이 먹음직스럽다. 그러고 보니 집에서 점심도 안 먹고 밖으로만 돌고 있다.
"카지노 쿠폰! 저거 먹을래? 아까 울 삼촌이 준 백 원 있다!" 카지노 쿠폰가 고개를 끄덕인다.
"갈게요! 지금 짐 싸고 있잖아요!"
시장 단속 아저씨들이 옷 장사 아줌마를 채근하고 있었다. 허겁지겁 옷 보따리를 싸는데, 작은 보따리 하나를 뺏으려고 한다. 근…. 데, 우리 고모다!! 반사적으로 그 보따리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낚아채려는 그 보따리에 나와 카지노 쿠폰의 손목이 보태졌다.
"아줌마! 애들이우? 허! 그놈들 참!! 하여간 이 자리 얼씬도 말아요!!"
고모는 시장에서 보따리 옷 장사를 하셨다. 가게도 없이 하니까 자주 이런 일을 당한다고 생각했다. 고모는 우리를 데리고 아까 그 튀김집으로 데려가셨다. 카지노 쿠폰는 배가 고팠는지 부침개 한 장을 게 눈 감추듯 했다. 그러다 밖으로 소리쳤다.
"엄…. 마!!!"
카지노 쿠폰 엄마가 건너편 국밥집에 있었다. 카지노 쿠폰는 튀듯이 그리로 갔다. 나도 가본다. 고모도 얼결에 국밥집으로 오셨다.
"집에 식당 아저씨 안 왔었어?"
"아무도 안 왔다! 그래서 나 혼자 잤어."
카지노 쿠폰 엄마는 카지노 쿠폰를 끌어안았다. 고모와 카지노 쿠폰 엄마가 얘기하고 있었다.
"저런! 저런…! 나쁜 사람들이네!"
이번엔 고모가 혀를 찼다. 고깃집 식당에서 카지노 쿠폰 엄마를 부려만 먹고 봉급을 안 줬단다. 카지노 쿠폰 엄마는 가끔 들르던 이곳 할머니식당으로 와서 일하기로 했다고 한다. 고깃집 식당 아저씨가 집으로 찾아올까 봐 무서워 집엔 못 오셨다고 한다.
봉급은 안 주고 팔고 남은 고기만 가끔 주니, 견디기 힘들어 도망치셨다고 한다.
어쩐지 카지노 쿠폰네 집에서 먹은 불고기가 맛은 있었는데, 카지노 쿠폰 엄마는 우울해 보였다.
"고모는 짐도 있어 집에 갈 테니, 네 엄마에게 말씀드려 도와드리라고 해라!"
고모는 나한테 엄마에게 말해 카지노 쿠폰네를 도와달라고 말하라 하셨다. 그 와중에 나는 국밥을 실컷 먹었다.
카지노 쿠폰 엄마와 카지노 쿠폰 그리고 나는 우리 집으로 왔다. 엄마가 찐 감자를 주신다. 나는 배가 불러 더 먹을 수가 없었다.
"넌 뭘 먹었기에 손도 안 대는 거야!"
나는 쭈뼛거릴 뿐, 별 대답을 못 한다.
"그래서…? 거 희한한 사람들일세…! 카지노 쿠폰 엄마! 앞장서요…! 내가 가서 받아주리다!!"
엄마가 얼굴을 붉히고 카지노 쿠폰 엄마를 채근해 나가신다. 가게 할 때, 외상값 안 주면 울 엄마가 큰소리로 호통을 치면, 어지간한 아저씨도 군말 없이 갚곤 하였다. 카지노 쿠폰가 아까보다는 표정이 밝아졌다.
주머니에 백 원짜리가 아직 있었다. 외삼촌은 가신 것 같다.
사우디가 어딘지? 한동안 못 뵐 거 같았는데…. 카지노 쿠폰와 밖으로 나왔다.
만홧가게에서 '황금박쥐'할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우린 신나게 만홧가게로 달려갔다.
우리 집이 가게를 또 시작한다. 이번엔 만홧가게다. TV도 들여놓는다고 한다. 맨날 돈 좀 생기면 만홧가게 가기 바빴는데, 안 그래도 된다. 근…. 데 아버지는 왜? 취직은 안 하고 가게만 하시는지 모르겠다. 대학교도 좋은데 다니셨는데…. 어른들 하는 일은 잘 모르겠다.
아버지와 버스를 타고 시내로 간다. 창신동 어디에 만화책 도매상이 있다고 하셨다. 청량리시장 어딘가에서 버스가 무지하게 큰 대학교 앞을 지나간다. 지난번 가게 할 때 아버지와 청량리 경동시장을 와봐서 조금 안다.
아버진 물끄러미 그 대학교를 살피신다. 아마도 여기를 다니셨나 보다. 창신동 만화 도매상은 어마어마하게 만화책이 많았다. 아버지와 나는 책방 주인이 싸준 책 꾸러미를 들고 새로 여는 만화방으로 왔다.
근데…. 우리 집이 만홧가게를 하는 것이 썩 즐겁진 않다. 우리 반 녀석들이 혹시 오면…? 가능하면 아버지 도시락만 건네고 가지 않아야지…. 생각한다.
카지노 쿠폰가 1학년으로 입학했다. 내가 4학년이 됐는데, 이제 1학년이다. 그래도 내가 챙겨주겠다고 생각했다. 수업 시간이 오전밖에 안 되는 카지노 쿠폰는 내가 점심 도시락을 먹고 오후 수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그동안에 교실 창 너머 카지노 쿠폰가 철봉에 매달려 있는 모습이 보인다. 아무래도 같은 1학년은 조무래기들이어서 그런 것 같다. 끝나면 호에야게 달려가 이런저런 얘기를 듣는다. 모르는 것은 가르쳐 주기도 하고…. 그런 내가 우리 반 아이들에겐 놀림감이 되었다.
"1학년하고 노니, 선생님 된 거냐?"
"그리고 걔 냄새도 나던데, 친구냐?"
이것들이 약을 바짝 올린다. 키도 쪼끄만 것들이…. 둘이 나를 '멀때'라고 놀린 것도 한몫했다. 방과 후, 그 한 놈에게 신발주머니를 던졌다. 머리통에 정확히 맞았다. 같이 놀리던 놈이 나에게 먼저 덤빈다.
카지노 쿠폰가 어느새 따라와 말린다. 학교 앞 다리 밑으로 내려갔다. 그동안 태권도장을 다녔던 실력 발휘해 볼 참이다. 둘이 와락 나를 껴안듯이 덤볐다. '어! 이게 아닌데? 그럼 발차기를 할 수 없는데…. ' 순식간에 내가 밑에 깔렸다.
한 놈이 나를 타고 주먹을 날린다. 코피가 났다. 그러다 카지노 쿠폰가 그놈을 발길질로 치니 옆으로 쓰러졌다. 나는 벌떡 일어나 한 놈은 코피를 나게 해 줬다. '멀때'가 아닌 것을 확실히 보여줬다.
지나던 6학년 형이 우리를 말리고 집에 빨리 가라고 호통을 친다. 나는 손바닥으로 코피를 쓱 닦고 카지노 쿠폰와 갔다. 역시 카지노 쿠폰는 내 편이다. 집에 오니 엄마가 옷이 흙 깡 태기가 된 나를 멈칫 세운다.
"뭐 하고 놀았길래 옷이 이 모양이냐?"
"얼레! 너 코피도…?, 누구와 싸웠어?"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다. 내 말을 듣고 엄마는 말씀하셨다.
"같은 반 애들하고 싸우면 안 돼…!, 그리고 카지노 쿠폰하고 그만 놀아…!, 걔는 1학년이야 너는 4학년이고 동네에서만 가끔 만나고 학교에서는 모른 체 해!"
다음날 점심시간에 선생님이 교무실로 오라고 하신다. 무엇 때문인지 짐작이 간다.
"너 이 녀석! 학교 앞 다리 밑에서 결투하셨다며! 그리고 너보다 조그만 애들을 그렇게 때리면 어쩌냐?"
이것들이 선생님께 고자질한 거 같다.
"선생님! 걔들이 먼저 저를 코피 나도록 때려서…. 그랬어요."
"너! 그 두 녀석 머리를 지나가며 계속 툭툭 건드렸다며…!,걔들도 네가 그러니 놀리는 거야! 서로 사이좋게 지내야지. 알아들어!"….
"네…."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시비는 내가 먼저 걸었던 것이다. 선생님 말씀대로 그 애들에게 가서 손을 내밀고 사과했다. 짜식들도 사이좋게 지내자고 했다. 운동장 철봉대를 보니 또 카지노 쿠폰가 있다. 달려가 기다리지 말고 집에 가라고 했다. 나중에 동네에서 보자고 했다.
"우리 집에 와서 숙제 좀 도와줘!"
"내 숙제도 해야 한단 말이야!…!, 네가 알아서 해!!"
카지노 쿠폰가 좀 놀란 눈치다. 근데 어쩔 수 없었다. 언제까지 1학년 숙제를 내가 해줄 순 없었다. 축 처진 어깨를 하고 카지노 쿠폰는 집으로 갔다. 방과 후, 집으로 오는 길에 발걸음이 무겁다. 집에 오니 엄마는 아버지 만홧가게에 도시락 좀 드리고 오라신다. 가보니, 여느 만홧가게처럼 진열이 근사했다.
"밥 먹을 동안 만화책 꺼내서 봐!!"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드시는 아버지가 괜히 싫었다. 만홧가게도 싫고, 그냥 다 싫었다. 혹시 모를 우리 반 애들이 여기 올까 봐 싫었다. 건성으로 만화책을 뒤적이다가 빈 통의 도시락을 들고 후다닥 뛰었다.
오는 길에 카지노 쿠폰가 궁금해졌다. 암만해도 내가 너무했다 싶었다. 느티나무 아래 카지노 쿠폰네 집으로 간다. 낯선 아저씨와 카지노 쿠폰가 같이 있었다. 카지노 쿠폰는 근사한 방패연과 플라스틱으로 만든 멋진 실패를 옆에 두고 있었다.
"네가 카지노 쿠폰 친구로구나…!, 아저씬 앞으로 카지노 쿠폰와 같이 살 거다!!"
뜬금없이 카지노 쿠폰와 산단다. 내 머리통을 쓰다듬다 호에야게 뭔가를 주고는 가셨다.
"왜 왔어! 혼자 하라며"
"아깐…. 미안했어! 그럴 일이 있었어!"
카지노 쿠폰는 아무 말도 안 하고 내 손을 잡아끈다. 헉헉대며 산 중턱에 오를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굳이 묻지 않았다. 그냥 산에 오르는 동안 진달래며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좋았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자 우린 너른 바위 하나를 찾아 걸터앉았다. 카지노 쿠폰가 입을 열었다.
"우린 양주로 이사 간다…!, 엄마가 아까 그 아저씨한테 시집가나 봐…!, 난 가고 싶지 않은데, 엄…. 마가 가…. 재"
"양…. 주가 어디쯤이야?"
"여기서 한참 위로 올라간대! 거긴 서울도 아닌 시골이래! 학교도 그리 전학 가야 한다는 걸…."
"이젠 못…. 보겠다!"
"우리 내려가서 연 날리자! 아까 그 아저씨가 연 사주고, 이백 원이나 줬다!"
카지노 쿠폰와 나는 내려와 연을 들고 들녘을 뛰어다녔다. 바람이 없는 들녘을 내가 연을 띄우면 카지노 쿠폰가 부리나케 달려, 연을 하늘로 올리려 했지만 바람이 없었다. 몇 번을 해봤지만 똑같았다. 거친 숨만 올라왔다.
"너네 만홧가게 한다며, 거기 가자!!"
"안돼!!…! 싫어!! 갔던 데로 가자!!"
카지노 쿠폰의 돈을 받는 아버지를 생각하기 싫었다. 그냥 다리 윗동네 만화방을 갔다. 떡볶이도 사주는데 맛이 없었다. 집으로 오는데, 날이 저물어 갔다. 엄마와 할머니가 말씀하고 계셨다.
"아들내미 하나 있어도 다행이지 뭐니…! 맹해도 참해 보이니 사내 복이 있나 보다!!"
"그러게요! 양주에서 건재상 한대요! 그렇게 고생만 하더니 뭔 복인지 몰라!!"
카지노 쿠폰 엄마 얘기 같았다. 국밥집 할머니가 중매를 서 아까 그 아저씨한테 시집을 간다고 한다. 카지노 쿠폰는 새아버지가 생기나 보다. 근데 표정이 썩 좋아 보이지 않던데 괜찮은지 모르겠다.
"칡소 조카님은 뭐가 그리 바쁘셔…. 이제야 얼굴 좀 보네…. 들어가서 센베과자 먹어!!"
막내 고모가 일찍 들어오셨다. 늘 느지막이 들어왔는데 오늘은 이르게도 퇴근하셨다. 방으로 들어가니 동생이 막냇동생을 어르며 센베를 먹고 있었다.
"오빠! 숙제는 했어?"
"이제 할 거다 뭐!"
"작작 좀 돌아다니고 숙제부터 해! 4학년이나 돼서 그래야 쓰겠어!!"
이것이 할머니 흉내를 내면서 놀린다. 그리고는 혀를 내밀어 메롱 거리 고는 밖으로 나간다. 막내는 아직 버둥거리는 돌배기다. 버버거리기는 하지만 눈매가 똘망똘망하다. 일주일 후,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모퉁이에 카지노 쿠폰가 있었다. 오늘 이사를 한단다. 말없이 카지노 쿠폰네 집으로 갔다. 트럭이 한 대 서있고 짐을 거의 다 실은 모양이다.
"카지노 쿠폰! 빨리 타라! 친구 보고 오느라 늦었구나!"
지난번 그 아저씨다. 카지노 쿠폰 엄마는 먼저 가서 짐 정리한다고 했다. 카지노 쿠폰가 트럭 앞자리 가운데 앉고 시동이 걸린다. 집안을 마지막으로 보겠다고 카지노 쿠폰가 다시 내렸다. 그러더니 지난번 그 연과 실패를 나에게 준다. 그리고 다시 오른다. 흙먼지가 뿌옇게 오르더니 트럭이 멀어져 간다.
나는 카지노 쿠폰가 준 연을 날리고 싶어졌다. 모처럼 바람도 분다. 짧게 쥔 연실을 조금씩 풀어 봤다. 두둥실 연이 올라간다. 비가 오려는지 바람이 제법이다. 카지노 쿠폰가 탄 트럭까지 닿을 듯이 연실을 풀었다. 네모난 방패연이 아득히 보일 정도로 띄웠다. 멀리 트럭에서 카지노 쿠폰가 손을 흔든다. 연을 본 모양이다. 연이 높이 오른다.
거…. 기에 호…. 야의 얼굴이 보였다.
이 글을 통해 나는 나의 본모습을 찾고자 한다. 수많은 시간 동안 나는 그때그때 어울리는 페르소나(사회적 가면)로 나의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감추고자 해도 감출 수 없는 나의 원래 모습을 통해 다시 한번 세상에 나서려 한다. 그 얼굴은 영원히 나의 어린 시절에 투영되어 있다는 생각이 이 글을 쓰게 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