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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리 Mar 24. 2025

20대 회고, (4)카지노 게임

비효율적이면서 심지어 불안정한 구두 계약 관계




카지노 게임



(1)

나는 유독 카지노 게임가 어려웠다. 노력해서 얻어내지 못한 것은 거의 없었는데 카지노 게임는 오히려 노력하면 할수록 엉망이 되어가는 영역이었다. 카지노 게임를 하는 나의 모습은 '평소의 나' 답지 않았다. 치졸했고 나약했고 감정적이었고 방어적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나와 다른 삶을 살아온 인간과 밀접한 교류를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인데! 그래서 지지고 볶고 싸우고 울고 불고 하는 것일 텐데!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일 텐데! 그렇게까지 많은 갈등 상황을 인간관계에서 경험해 본 적이 없다 보니 연인과 싸우는 것 자체에 대해서 굉장히 소극적이었다.


심지어 나는 평생 인정 욕구에 얽매여 살아왔기에 남자친구에게 마저 '좋은 여자친구'임을 인정받고 싶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여자친구는 요구하는 것이 많지 않은 카지노 게임이었고 그에 부합하는 연인이 되기 위해서, 싸우지 않기 위해서, 불편한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종종 내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다.


당연히 깊은 관계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내쪽에서 참다 참다 먼저 지치든 상대방이 내 가식을 먼저 알아차리든. 적당한 시간 동안 큰 감정 소모 없이 규칙적으로 만나고 재밌게 놀다가 남이 되었다.





(2)

언젠가 1년 반을 만난 남자친구한테 '벽이 느껴진다. 더 친해지는 것이 어렵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차인 적이 있다. 나는 그 당시 이별로부터 나 자신을 적절하게 보호하지 못했다. 이게 무슨 개소리이실까 싶었지만 결국 헤어짐의 이유를 나에게서 찾는 것이 가장 쉬웠기 때문에 나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무가치한 카지노 게임으로 평가절하했고, 나는 이런 일을 당하는 것이 당연한 카지노 게임인 것 마냥 스스로를 대우했다.


감정의 밑바닥을 찍고 나서 나를 찬찬히 되돌아보았다. 그러면서 내가 연인 관계를 다루는 방식의 문제점을 깨달았다. 어디에선가 '사랑이란 나의 개념을 상대방에게까지 확장시키는 것과 비슷하다'라는 글을 보았는데 나는 확장은커녕 일단 내가 누구인지조차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 한심하고 불쌍했다. 이 나이 먹도록 아직도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 카지노 게임인지 모른다니.그러니까 저런 소리를 듣지.


누굴 만나도 당연히 헤어질 수는 있겠지만 같은 문제로 헤어지게 되면 그때는 정말 나 자신이 싫어질 것 같았다. 그때부터 생각 없이 그러나 부지런히 매주 나가던 소개팅을 끊었고 나와의 시간을 충분히 가졌다. 새로운 취미도 가져보고 제주도에 가서 한 달 동안 살아보기도 하고 안 읽던 책도 무진장 읽었다.


박살 난 메타인지가 조금씩 정상화되면서 '나는 남자친구가 새벽까지 친구들이랑 술 먹는 것이 괜찮지 않고, 휴가 맞춰서 쓸 수 없는 그의 생활 패턴이 싫었고, 그때의 나는 생각보다 예뻤고(ㅋㅋ), 이따금씩 벽을 느끼게 하는 것은 오히려 그 카지노 게임이 더했다.'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 그 외 맘에 안 드는 것이 435개 정도 더 있었다.)


나의 20대에서 가장 찌질하고 고통스럽고 심심하고 우울하고 화가 많았던 시기 중 하나인데 역설적으로 가장 가치 있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스스로와 솔직한 대화를 많이 하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어떤 종류의 스트레스 취약한지, 내 장점은 무엇인지, 약점은 무엇인지, 또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은지도 구체화할 수 있었다. 이런 시간이 없었으면 아마 지금까지도 피상적인 카지노 게임 관계를 반복하고 있었을 수도.





(3)

우리 엄마를 포함해서 많은 카지노 게임들이 '남자 많이 만나 봐라.'라는 말을 하는데 저 문장에 동의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단어가 더 필요하다. '멀쩡한 카지노 게임'을 많이 만나 봐야 한다. 멀쩡한의 기준은 제법 객관적으로 정의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카지노 게임, 동물, 물건에 대한 폭력성이 없는 카지노 게임 (언어 포함)

본인의 경제적 문제의 해결을 나와 함께하려 하지 않는 카지노 게임

중독에 취약하지 않은 카지노 게임

거짓말을 하지 않는 카지노 게임

바람을 피우지 않은 카지노 게임

사회적 규범을 무시하지 않는 카지노 게임


기본적으로 멀쩡한 사람 안에서 다양한 직업, 가치관,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사람을 만나보는 것은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나도 내 이성 취향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만나 봐야 알게 되는 것들이 분명 존재한다. 내 마음에 찰떡같이 드는 사람을 처음부터 만날 수 있다면 너무나 행운이겠지만 사실 그런 일은 잘 없다. 다양한 사람을 경험해 보면서 카지노 게임에 대한 가치관, 이성에 대한 취향이 더 분명해진다.


아니 근데 카지노 게임는 왜 해야 되는데? 돈 들고 시간 들고 감정 소모도 심하고. 비효율적이면서 심지어 불안정한 구두 계약 관계를 미쳤다고 왜?


사실 나도 카지노 게임를 해야 하는 명확한 이유는 찾지 못했다. 그냥 이러나저러나 나는 이성애자이고 누군가에게 여자로 인식되고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기를 희망하기 때문에 카지노 게임가 하고 싶었다. 카지노 게임란 세상에서 딱 하나밖에 없는 19xx년산(産) 리미티드 에디션 생명체가 나와 배타적인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같은 경험, 기억, 추억을 공유하는 것인데 꽤 낭만적인 소유욕의 일환이라고 생각했고, 이런 낭만이 내 인생을 살아가는데 긍정적인 동기를 제공함을 느꼈다.





(4)

나는 아직 미혼이니 카지노 게임의 끝맺음을 본 상태가 아니고, 앞으로도 나에게 얼마나 더 많은 카지노 게임와 관련한 시련이 남았을지는 알 수 없다. 분명 겪어보지 못한 상처를 또 주고받겠지만(절망편) 경험해보지 못한 즐거움과 행복감도 마주할 수 있겠지(기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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