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보그가 되다를 읽고, 김초엽, 김원영, 사계절, 2021
삼촌은 난청으로 보청기를 했는데 수백만 원 하는 그 보청기는 콩알 1/4 정도 크기의 건전지를 갈아 끼워야 했다. 60대인 나도 갈아 끼우기 어려웠다. 건전지 교체할 시점을 ‘삑’ 소리로 알려준다는데 보청기 착용하는 사람에게 소리로 알려준다는 말이 의아했다. 삼촌은 보청기를 잘 착용하지 않았다. 이물감이나 이음새가 매끄럽지 않은 건 내가 경험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래도 어찌어찌 보청기를 착용하면 잘 들린다고 했다. 혼자 사니 별로 착용할 필요가 없고, 짧은 시간이라도 대화할 상대가 있을 때 착용하면 좋은데 그건 또 짧은 시간이라 그냥 넘어갈 수 있었다. 기계의 도움을 얻는 일은 당사자가 아니고 옆에서 보기에도 정말 매끄럽지 않은 일이었다. 요양원 가기 얼마 전까지 삼촌은 80대 후반의 나이에 보청기 회사에도, 병원에도 혼자 독립적으로 다녔다. 내가 난청 때문에 병원에 모시고 다닌 건 2번, 보청기 회사도 2회 정도였다. 혼자 병원 출입이 정말어려워지기 전까지 삼촌은 내게 최대한 병원 동행을 요구하지 않았다. 병원에 모시고 다니며 깨달았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1시간 병원 방문이 거의 하루를 보내는이벤트였겠구나, 삼촌은 스스로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내게 짐이 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계속했구나.
얼마 전 2년여 만에 만난 친구는 다초점 인공수정체 백내장 수술을 했다고 한다. 천만 원 정도의 비용으로 평생 사용하던 안경을 마침내 벗을 수 있었다고, 너무 잘 보인다고 얘기한다. 나이 들면 백내장 수술은 대부분 한다던데 안경을 저렇게 쉽게 벗을 수 있는 거라고? 다초점 안경을 새로 쓴 사람도 세상이 무료 카지노 게임히 다르게 보인다고들 하던데 기술이 도구를 사용하지 않게도 하는구나.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노화가 돈으로 무화될 수 있는 사례였다. 아직은 아니지만 언젠가 나도 하게 될까?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노화를 늦추고, 고쳐가면서 살아가겠구나.
<사이보그가 되다에서 소설가 김초엽은후천적 청각장애인으로서 기술과 장애인이 이 사회에서 관계 맺는 맥락이 중요하다며, 신체의 고유한 경험에 기대어 장애 중심적 과학기술을 상상해 보기를 제안무료 카지노 게임. 그러면서사회가 인간들만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몸과 자연,건축환경과 인공물처럼 비인간 사물들을 포함무료 카지노 게임는,브뤼노 라투르의 행위자 연결망 이론을 소개무료 카지노 게임데인상적이었다.인간이 집 같은 공간, 건축환경에서 느끼는 온갖 희로애락들, 사람의 몸이 사물, 공간, 자연과 만나면서 일어나는 온갖 감각과 감정들이 무료 카지노 게임가 살아가는 사회를 구성한다는 의미였다. 그래서장애가 손상에 따르는 필연적인 결과가 아니라 공간에 따라 재규정될 수 있는 개념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우리나라에 사는 장애인과 외국에 사는 장애인의 경험에 차이가 있다면 그건 장애의 문제가 아니다. 제공되는 공간, 체험하는 경험의 문제이다. 삼촌이 자신의 집에서는 혼자 지내느라 보청기가 필요하지 않았는데 밖으로 나오면서 타인과 대화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난청인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나라에서 유아차를 몰고서는 울퉁불퉁한 길과 계단 때문에 산책하기도 어려워 이동 약자가 되는데 외국에서는 버스에도 유아차를 두는 곳이 있는 것처럼.
누군가에게 무료 카지노 게임하는 삶이 언제나 비극은 아니며,누군가를 돌보는 삶도 그저 동정의 대상이나 숭고한 예찬의 조건으로만 이해될 수 없다.돌봄은 관계의 문제이므로 휠체어를 탄 남자가 벌떡 일어난다고 해서 그에게 돌봄 노동을 제공하던 여성이 반드시‘해방’되는 것도 아니고,휠체어를 타는 사람이 언제나 돌봄을 받기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인 것도 아니다. (29쪽, 사이보그가 되다(2021), 김초엽, 김원영, 사계절
우리는 얼마나 서로의 불완전함, 연약함, 의존성을 드러내기 두려워하는지, 늙으면 죽어야지, 장애인이 되느니 죽겠다는 말을 쉽게 하는지, 삶의 질 운운하며 나이 든 사람과 장애인의 지금의 삶을 함부로 폄하하는지, 아직 오지 않은 나이 든 삶을 두려워하는지 이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내 불완전함과 연약함, 의존성을 드러내면 안 된다는 사회적 압력에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스스로의 압박이 누군가에게 돌봄을 부탁하는 일조차 저어하게 만든 것 아니었을까. 내 불완전함과 연약함, 의존성을 기꺼이 받아들이는구체적 연습에 게으르지 말자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