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완벽한 카지노 게임…는 무슨
1.
“톡톡톡…”
한 주간 쌓인 피로를 씻어내려 단잠을 몰아자고 있는데, 자꾸 누가 옆에서 툭툭 친다. 누구냐 넌.
게슴츠레 눈을 뜨는데 앗 차가워라… 네모난 물체가 맨살에 닿는다. 아이패드다. 뭐지 이 상황은? 위를 올려다보니 잠옷입은 단발머리 꼬마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딸이다. 아, 얼마 전에 커트하셨지 이분.
주말이니 아이패드 스크린타임 비밀번호를 풀어달라는 요청이었다. 비밀번호를 풀어주고 나니 쌩 하니 사라진다. 아빠보다 아빠의 손가락이 필요했구나 넌.
거실에 있는 TV는 없앴지만, 집에 있는 모든 스크린을 없애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집에 있던 아이패드는 어느 순간 아이들의 전용 스크린이 되었다. 옆에서 보면 그 작은 화면 속으로 아주 쑥 들어가 버릴 것만 같은 기세다. 가만히 두면 몇 시간이고 홀린 듯 빠져 들어간다. 대체 그런 집중력은 어디서 나오는 건가.
가족회의를 했다. 주말 동안에는 하루에 한 시간씩만 아이패드를 사용하기로 했다. 지켜보니 첫째와 둘째가 한 시간을 즐기는 방식은 사뭇 다르다. 첫째는 친구들과 로블록스 게임을 하고, 둘째는 주로 카지노 게임 키즈를 본다.
정해진 시간이 다 끝나면 아이들의 두뇌가 재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한다. (회전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카지노 게임, ‘놀면 뭐하니’ 최근에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지 않아?” (아니, 안 궁금해)
“카지노 게임, 요즘에 넷플릭스에서 하는 ‘나완비’ 재밌다던데?” (아니, 너희들 보는 드라마 아냐)
“카지노 게임, K-Pop 아이돌 하려면 장원영 나오는 예능 꼭 봐야 하는데?” (아니, 장원영은 안 보고도 잘 데뷔했어)
조금이라도 더 놀고 싶은 아이들은 제 딴에 이리저리 아빠를 회유하기도 하고, 하다 하다 안되면 시간차 전략(?)도 쓴다. 마치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한 척 엄마에게 가서 아이패드를 풀어달라고 얘기하는 것이다. 처음 한두 번은 모르고 속아 넘어갔는데 요즘에는 잘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둘째의 고민.
오빠와 네 살 터울인 둘째는 이미 자기 또래보다 서너 살 높은 연령대의 콘텐츠를 본다. 손위 형제와 같이 지내다 보면 따로따로 부모의 시청지도가 쉽지 않기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뽀로로와 아기상어에서 시작해서 로보카 폴리와 헬로카봇, 미라큘러스와 사랑의 하츄핑 순서로 가는 테크트리(!)를 타는 게 정석일 텐데, 둘째의 콘텐츠 흡수 속도는 첫째가 그 나이였을 무렵보다 몇 년은 빠르다.
적정한 미디어 노출 시간은 대체 얼마쯤인가. 묻는 사람마다 백인백색 답이 다르다. 사실 정해진 답이 있을까도 싶다.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어떤 습관을 형성하게 하는가 하는, 어쩌면 원칙의 문제일 수도 있다.
아이들이 좋은 것 예쁜 것만 보며 자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은 여전히 크다. 몸과 마음이 커가는 단계에 맞춰, 그 수준에 맞는 양질의 콘텐츠들을 접하고 소화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수많은 정보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2025년의 대한민국에서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임을 알지만, 그럼에도.
2.
“형님, 저 잠시 나갔다 올게요~ 결이가 캐치볼 해달라고 하네요.”
돌아가신 아버지 기일에 맞춰 동생네가 집에 왔다. 할아버지 제사고 뭐고 아이들은 오랜만에 만난 사촌들과 놀기 바쁘다. 까르르까르르 우당탕탕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매부가 선뜻 남자아이들을 데리고 나선다. 오호 이런 훌륭한 카지노 게임가 있나.
같이 저녁을 먹으며 자연스레 캐치볼 이야기가 나왔다. 전에는 아이들이 보챌 때 솔직히 귀찮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요즘에는 해달라는 게 있으면 최대한 같이 해주려고 노력한단다. 이것도 다 한 때 아니겠느냐며. 더 크면 카지노 게임랑 놀아달라고 안 할 테니, 지금은 놀아달라고 하는 걸 그저 감사하게 생각하고 한 번이라도 더 나가려고 한다고.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 (자네 혹시 썬데이파더스클럽 책을 정독한 겐가?)
“카지노 게임… 쇼츠에 뜨던데요?”
“오빠, 이 사람 쉴 때 쇼츠만 봐.”
“...”
하루에도 수많은 콘텐츠들이 카지노 게임에 올라온다. 소소한 생활 노하우에서부터 무거운 경제 및 시사 이슈까지. 적시에 원하는 정보와 재미, 안식을 준다는 점에서 카지노 게임가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은 결코 적지 않다. 매부가 그러했듯 나 역시 카지노 게임를 통해 세상 속 다양한 지식과 이야기들을 접하며, 실질적인 도움을 받은 지 꽤 되었다.
그건 아이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카지노 게임에 올라오는 콘텐츠들을 어른은 정제해서 볼 수 있고, 어린이는 그렇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도 어쩌면 편견에 가까운 게 아닐까. 물론 처음엔 미숙할 수 있지만, 시행착오를 거치며 점점 성숙해갈 것이라는 믿음이 먼저 내 안에 존재해야 했던 것은 아닐까.
육아를 하며, 계속 실패할 것이다. 완벽한 양육자가 아니므로. 그러므로, 키우면서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겠다고 마음먹기보단 아이들과 같이 실패의 경험을 계속 쌓아나가려고 한다.
지금까지도 그래왔지만, 앞으로도 내가 바라는 대로 아이들은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인생이 드라마라면 ‘나의 완벽한 아빠’가 될 수도 있겠지만, 현생을 살고 있는 나는 내일도 아이들과 쪼잔하게 티격태격할 것이다. 보나 마나 다음 주말에도 카지노 게임 한 시간을 보니 두 시간을 보니 하고 아웅다웅하고 있겠지.
그러나 아이들과 함께 부대끼는 와중에, 최소한 이 친구들이 어느 정도까지 성장하고 있는지는 가늠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아 이제 이 정도 콘텐츠는 봐도 되겠구나. 아 이제 이 정도면 친구랑 집 밖 어디까지 나갔다 온다고 해도 괜찮겠구나.
생각해 보면 우린 아이들을 키워오며 지금까지 계속 그런 짓(!)들을 해 왔던 게 아닌가. 아 이제 분유 말고 이유식 먹여도 되겠구나. 아 이제 유모차 말고 자전거 태워도 되겠구나 같은. 남들은 신경 쓰건 말건 그 한 단계 한 단계의 작은 변화에 집중하며, 함께 흐뭇하고 손뼉 치고 그랬던 것이니까. 지나고 보니 그때 이걸 과연 할 수 있을까…? 해가 되진 않을까? 하고 속으로 하던 걱정이 괜히 멋쩍을 만큼 아이들은 잘 보답해 주었다.
아이들의 미세한 성장을 제때 느낄 수 있도록 양육자로서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싶다. 다만, 커가며 점점 난이도도 높아지니 지금까지 보다 좀 더 마음을 대범하게 먹어야 할 수도 있겠다 싶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여전히 믿진 못하겠지만) 이들도 결국, 어느 순간 청소년기를 지나 훌쩍 어른이 되어있을 테니까. 카지노 게임는 물론, 꿈도 사랑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다음 책이 언제 나올지 모르는 에세이스트. 윈스턴 처칠의 '절대,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마라'라는 말을 좋아한다. 죽기 전에 아이들과 함께 고향 야구팀 '한화 이글스'의 우승을 보는 것이 꿈이다. 《썬데이 파더스 클럽》, 《아들로 산다는 건 카지노 게임로 산다는 건》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