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헌 수상록 <카지노 쿠폰
오래된 책에는 시간의 향기가 스며든다, 종이마다 스며든 시간의 향기는 세월의 냄새가 되어 코끝을 스친다. 오래된 책을 읽을 때면, 낡은 활자 속에 깃든 시대의 숨결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납처럼 무겁고 조용한 글자들에는 수많은 문장과 이야기들이 꾹꾹 눌려 있다. 내가 생각하는 오랜 책이란, 손으로 조심스럽게 배열하던 납 활자로 만들어진 책이다.
누렇게 바랜 종이와 손때 묻은 책등과 낡은 표지, 카지노 쿠폰 열면 조용히 침묵하던 문장들이 오랜 세월의 강을 지나 말을 걸어온다. 고단했던 삶의 흔적, 진실한 고민과 고백들이 책장 사이를 흐르고, 당시 읽으면 밑줄을 긋고, 빈 공간에 생각의 단편을 적어놓은 글들은 오늘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그 속에서 나는 새롭게 교훈을 얻고, 잊고 살았던 삶의 본질을 조금씩 되찾는다.
올 봄에는 오래된 카지노 쿠폰 두 권 읽었다.
하나는 G.V. 픽슬레이의 <하느님 나라라는 책이고, 다른 하나는 오늘 소개하는 함석헌 수상집 <바보새라는 책이다. 내가 소장하고 있는 책은 1982년 3월 1일자 4판 발행본이다. 그해 1월 5일 초판이 나왔는데 두 달 만에 4판을 발행했으니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모양이다. 허긴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내가 그 카지노 쿠폰 거금 2,800원을 들여서 샀으니 말이다. 그때, 나는 무엇을 읽었을까? 그냥, 멋 낼 요량으로 샀던 책인지도 모르겠다.
1980년대 대학생들은 카지노 쿠폰 서너 권씩 손에 들고 다녔다. 그가 읽는 책이 바로 그였으므로 아무 책이나 들고 다니지 않았다. 전두환 군부독재시절 검문검색을 피하려고 일부러 ‘선데이 서울’같은 주간지를 다른 책들 앞에 두어 눈에 띄게 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손에 들고 다니던 책들이 배낭으로 들어갔다. 시위를 하려면 기동성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추억들은 각설한다.
이렇게 오래된 책에는 온갖 추억들까지 들어있다.
<카지노 쿠폰의 서문은 법정 스님이 쓰셨는데 이런 문장이 있다.
“카지노 쿠폰를 좋아한다는 선생님, 아니 카지노 쿠폰처럼 살아가시는 선생님! 이 수상록은 카지노 쿠폰처럼 살아가려는 많은 씨알들에게 보내는 글들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읽겠습니다(p.12).”
함석헌 선생은 남강() 이승훈 선생님의 영 앞에 드리는 글에 ‘카지노 쿠폰’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 저는 이 새가 좋습니다. 신천옹이라 이름한 이유는 이놈이 날기를 잘해서 태평양의 제왕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고기를 잡을 줄은 몰라 갈매기란 놈이 잡아다가 이따금 흘리는 것을 얻어먹고 살기 때문이랍니다. 그래서 일본 사람은 그 새를 아호도리, 곧 카지노 쿠폰라고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이유는 이 카지노 쿠폰란 이름 때문입니다....마음은 푸른 하늘에 가 있으면서도 밥벌이를 할 줄 몰라 여든이 다 되어 오늘날까지 친구들의 호의로 살아가니 그 아니 카지노 쿠폰입니까?(p.24)
카지노 쿠폰(신천옹信天翁)는 알바토로스라는 해양조류다. 그는 바다 위를 오랜 시간 날아다니는 대형 해양조류로 날개를 펼치면 3.5M에 육박하지만, 바람을 타고 나는 비행 능력으로 장시간 비행을 하는 새다. 문제는 걸음걸이도 서툴러 뒤뚱뒤뚱 걷고, 헤엄도 서툴러 물고기도 잘 잡지 못하니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카지노 쿠폰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이다. 하지만, 비행에는 일가견이라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새다. 그래서 문학과 예술에서 종종 인내, 고독, 순례, 영적 여정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오래 전에 책이라 시대에 맞지 않는 글도 있다.
예를 들면, 반려동물이나 여성에 대한 생각들은 시대상과 맞물려있다. 그러나 시대적인 한계성을 받아들이고 함석헌 선생의 글을 읽다보면 2025년 탄핵이후의 정국에 수많은 교훈들을 그득하다.
씨알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며 탄핵정국의 소위 ‘태극기부대’와 내란수괴 윤석열과 내란동조세력들을 떠올렸다.
”씨알이란 어리석은 것입니다. 착하기 때문에 어리석습니다. 어리석기 때문에 속습니다. 속기 때문에 가르칠 수 있습니다. 가르칠 수 없는 것은 약아빠져서 누구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 변질된 씨알입니다. 그런 것은 이미 제 바탈(바탕)을 잃고 악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그런 위인들을 가지고는 나라를 다스릴 수 없습니다(p.34).
함석헌 선생은 1923년 관동대진재(간토대지진 또는 간토대진재(關東大震災))를 일본에서 직접 겪었다. 그 이야기도 이 산문집에 포함되어 있다. 1980년 군부독재 하에서 함석헌 선생은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껴안고, 속으로 이를 갈며 묵묵히 견뎌내는 절치부심의 날들이었을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타계할 수 있을까? 그는 군부독재정권에 맞서는 이들에게 <바보새를 통하여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비폭력 혁명’, 그래서 산문집에는 ‘예수의 비폭력투쟁’,‘비폭력혁명’, ‘간디의 참모습’ 등 비폭력투쟁에 관한 글들이 많다. 그런 제목이 아니더라도 곳곳에 ‘비폭력투쟁’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나아갈 길은 오직 한 길밖에 없습니다. 비폭력혁명의 길입니다. 그것은 참입니다. 누구나 어떤 일에서나 지켜야할 진리입니다. 이 시대의 나아갈 길로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 비폭력의 길입니다. 곧 영원한 진리입니다. 이 날까지 우리의 역사를 이끌어 온 것은 폭력주의였습니다. 그 결과, 세계는 오늘날과 같이 이토록 어지럽고 참혹하게 되었습니다(P.175).”
함석헌 선생은 올림픽 개막 직전인 1988년 9월 12일, '서울 올림픽 평화대회'에서 위원장으로서 활동하며, 평화와 인류 화합의 메시지를 담은 <서울 평화 선언을 세계에 선포한다. 그러나 1988년은 전두환 정권의 뒤를 이어 최초의 대통령 직선제(1987년 6월 항쟁 이후 개헌)에 의해 선출된 노태우 대통령의 임기 첫 해였다. 노태우는 직선제 첫 번째 대통령이긴 했지만, 전두환과 육사 11기 동기로, 신군부 핵심 인물이자 가까운 정치적 동지였고, 제5공화국 전두환 정권에서 요직을 거친 인물이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인생의 말년에 평생 지녀왔던 소신을 포기한 것은 아닌지 의아해 했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필자도 아쉬운 부분이기는 하다. 하지만, 당시 서울올림픽은 단순한 스포츠 행사를 넘어, 분단국가인 한국에서 열린 세계적 축제였고, <서울평화선언에는 평화와 인권, 화해의 메시지가 들어있었기에 마다하지 않고 위원장직을 승낙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시대를 이끌어갈 어른이 부재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함석헌 선생 같은 분이 더 그리운지도 모르겠다. 함석헌의 수상집 <바보새는 절판되었지만, 한길사에서는 40주년 기념계획으로 <함석헌 선집 3권- 한길그레이트북스148-150)을 시리즈로 출간했다. <바보새에 실렸던 몇몇 글들은 여기서도 찾아볼 수 있다.
1982년,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읽었던 카지노 쿠폰 60 중반에 다시 읽었다.
고전은 시대를 초월한 지혜와 통찰을 품고 있다. <바보새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깊은 울림을 준다. 오랜만에 눈과 마음뿐 아니라 오감으로 독서하는 기쁨을 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