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부터 러닝을 시작했다. 시작했다,라고 말하기엔 좀 애매한 구석이 있긴 하다. 지인에게 추천받은 러닝앱을 깔고 시키는 대로 달렸더니 첫날에는 10분을 뛰었고 둘째 날에는 12분을 뛰었다. 내가 선택한 초심자 프로그램의 목표는 한 달 코스를 마치고 나면 30분을 달릴 수 있게 된다는 거였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나는 한 번에 40분 정도를 뛸 수 있었다. 러닝을 하지 않은지 오래되긴 했지만 몇 년 전에 가끔 건대 운동장을 뛸 때는 7km를 뛰는데 40분 정도 걸렸다. 무리는 하지 않고 싶었지만 옷 챙겨 입는 시간이나 러닝시간이나 비슷한 건 좀 아닌 것 같아서 한 번에 30분씩 뛰는 걸로 프로그램을 바꿨다.
뛰다 보니까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어떤 느낌이 순간 되살아났는데, 그 느낌과 함께 여름밤 운동장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가로등 아래를 지날 때 맞은편에서 날파리떼가 날아와 얼굴에 닿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마 내가 초등학생 때였을까. 시원하고 청량한 밤이었는데. 또 다른 기억도 떠올랐다. 어느 여름날 카지노 쿠폰랑 불국사를 갔다가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아주 시원하게 쭉 뻗은 길이 눈앞에 펼쳐져 있어서 빨라지는 다리를 어쩌지 못하고 자꾸만 내달렸던 기억이다. 뒤에서 카지노 쿠폰가 넘어진다고 소리쳤는데도 너무 신이 나서 멈출 수가 없었다. 다행히 넘어지지도 않았고. 어제 핸드폰으로 봄옷 구경을 하다가 본 빨간색 점퍼도 떠올랐다. 카지노 쿠폰에게 너무 잘 어울릴 것 같아서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카지노 쿠폰에게 입혀보았다. 뛰는 내내 빨간색 점퍼를 입고 웃는 카지노 쿠폰가 떠올랐다. 그 옷을 입은 카지노 쿠폰와 올해 필 벚꽃 구경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얼마나 좋았겠나. 2년 전인가,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팔공산에 올랐을 때 카지노 쿠폰가 "아이고, 꽃 좀 봐라. 이걸 언제 또 보겠노"하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오늘은 4Km를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