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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만 Jan 02. 2025

반박할 수 없는 폭력 앞에 선 불완전한 저항자

인상적인 OTT리뷰 2025 - <오징어 카지노 게임 시즌 2

카지노 게임
카지노 게임<오징어 카지노 게임 시즌 2(Squid Game 2, 2024)


명실상부 전세계에서 가장 히트한 시리즈가 되어 다음 시즌의 등장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카지노 게임 시즌 2(이하 <오징어 카지노 게임 2)가 드디어 공개되었고, 전편을 모두 시청했습니다. 빚에 허덕여 속절없이 죽음의 카지노 게임에 참여게 되어 우승을 거머쥔 주인공이 각성하면서 끝났던 전 시즌에 이어서, 이번 두번째 시즌에서는 그렇게 각성한 주인공이 제 발로 카지노 게임에 다시 뛰어들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습니다. 이쯤 되면 시청자가 기대하게 되는 게 있는데, 카지노 게임을 한번 겪어본 만큼 주인공이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상황을 주도면밀하게 이끌어가는 히어로로 거듭나는 게 그 중 하나일 겁니다. 그러나 <오징어 카지노 게임 2는 그 기대를 배반합니다. 그것이 이번 시즌 2로 하여금 호불호를 타게 하는 원인 중 하나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론 그래서인지 오히려 전 시즌보다 이번 시즌을 더 흥미롭게 보았습니다.


전 시즌에서 카지노 게임의 최종 우승자가 된 기훈(이정재)은 약속된 상금 456억원을 획득했지만, 해외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라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대신 여기에 머물러 카지노 게임의 배후세력을 추적하는 데에 이후의 삶을 쓰기로 결심합니다. 폐호텔에 은신하여 상금을 쏟아부어 가면서 수소문을 거듭하던 그는 자신을 카지노 게임으로 초대한 리크루터(공유)와 재회하고, 다시 카지노 게임에 참가할 기회를 얻습니다. 한편 전 시즌에서 카지노 게임의 배후를 쫓다 자신의 형 인호(이병헌)를 만난 형사 준호(위하준)는 형을 찾기 위해 다시 위험한 미션에 뛰어들고, 기훈과 협력하여 카지노 게임이 벌어지고 있는 미지의 섬을 추적하기로 합니다. 다시 초대된 카지노 게임자에서 기훈은 가상화폐 유튜버 명기(임시완), 해병대 출신의 대호(강하늘), 자신의 옛 친구 정배(이서환), 싱글 대디 경석(이진욱), 여자가 되길 희망하는 전직 특전사 현주(박성훈), 곧 싱글맘이 될 예정인 준희(조유리), 아들의 빚을 갚기 위해 참가한 엄마 금자(강애심)와 문제의 아들 용식(양동근), 그리고 '영일'이라는 이름으로 카지노 게임에 위장잠입한 프론트맨 인호 등 새로운 참가자들과 관계를 쌓아갑니다. 기훈이 이미 겪어봤기에 아는 카지노 게임과 그 역시 처음 만나는 카지노 게임이 번갈아 펼쳐지는 가운데, 매 카지노 게임이 끝날 때마다 카지노 게임의 속행과 중단을 결정할 수 있는 투표가 진행되는 등 새로운 룰까지 만나면서 기훈은 점점 자신이 계획했던 것과 다르게 위험한 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카지노 게임<오징어 카지노 게임 시즌 2(Squid Game 2, 2024)


개인적으로 <오징어 카지노 게임 시즌 1을 인상깊게 본 건 아니었습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어린시절 놀이가 목숨을 건 위험한 카지노 게임으로 돌변한다는 설정에 혹해서인지 흥미진진한 카지노 게임 레이스를 기대했으나 기대보다 느긋한 스토리 전개와 너무 또렷한 감정선이 다소 심드렁하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오징어 카지노 게임 2는 감정선이 여전히 존재하긴 하면서도 한결 옅어지고 불필요한 자극 또한 줄이면서 블랙 코미디와 스릴러의 색깔을 더 짙게 가져간 덕에 더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물론 대다수가 기대할 본 카지노 게임 진입까지 예열 시간이 좀 걸린다는 점은 유념해야 할 부분입니다.) 전 시즌에서 그야말로 '얼레벌레' 카지노 게임에서 우승한 기훈이 결말에 각성하면서, 이번 시즌에서는 그가 완전히 새롭게 탈바꿈한 모습으로 극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갈 거라는 기대를 많은 분들이 품으셨겠습니다만, <오징어 카지노 게임 2는 그 기대를 적잖이 배반합니다. 기훈은 각성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역량까지 갈고 닦아 '프로페셔널'이 된 것은 아닙니다. 이전엔 자기 앞가림하느라 바빴으나 지금은 돈이 까마득하게 많아지면서 그런 점에서는 좀 여유가 있어진, 그 여유 덕분에 자기뿐 아니라 세상의 정의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게 된 기훈은 그럼에도 여전히 불완전한 인간입니다. 그가 야심차게 세운 계획이 매 스텝마다 틀어진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훈은 대쪽같이 자신의 지향점을 추구하려고 한다는 점, 그래서 제발로 파국을 맞아들인다는 점은 시청자 입장에서 분통 터지는 요소일 수 있겠으나, 어쩌면 기훈의 저항이 지니는 한계를 예고하는 부분들이기도 할 것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기훈이 맞서는 자들, 즉 카지노 게임 운영진의 논리를 반박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카지노 게임 운영진은 시작부터 '원치 않으면 나가도 좋다'면서 여지를 두고, 전 시즌에서는 초반에 1회 진행되었던 카지노 게임 속행 여부 투표를 아예 매 카지노 게임 종료 후에 진행하면서 이 카지노 게임이 주최측의 강압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참가자들의 선택에 의해 진행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결정 방식이 '다수결 투표'라는 점을 들어 그 선택의 과정 또한 지극히 민주적이라 주장하고요. 따지고 보면 이는 부자가 되든 빈자가 되든, 세상의 주인이 되든 재난에 휩쓸리든 그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너의 선택에 의한 것'이라 규정하는 자본주의의 냉혹하고 무책임한 면모와도 상통하는 부분일 것입니다. 또 다른 문제는 이런 카지노 게임 운영진의 논리에 빚이라는 족쇄에 붙들린 참가자들 다수가 꼼짝없이 복종한다는 것입니다. 카지노 게임을 중단하고 미련없이 떠날 것인지 카지노 게임을 속행할 것인지 사이에서, 당장 직면한 죽음의 위협과 이대로 나가면 마주하게 될 기약없는 생계의 위협 사이에서, 더 위험한 만큼 더 매혹적인 미래와 안전한 만큼 덜 매혹적인 현재 사이에서 참가자들은 O를 누르든 X를 누르든 그 결과를 오롯이 감내해야만 합니다. 불과 몇년 전 자신 또한 그런 범인들 중 한 사람이었던 기훈이 불과 몇년 후에 저항자로 나선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소시민의 시야를 벗어나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자기 선택의 결과를 감내할 만큼 충분히 강하지도 못하다는 것 또한 에피소드 후반으로 갈수록 더 또렷해집니다. 그렇게 <오징어 카지노 게임 2는 탐욕은 한없이 영악하고 치밀한 반면 정의는 서툴고 순진한 세상에서, 나는 나 또한 구성원 중 한 사람인 이 부조리한 세계를 진정 바꿀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다가갑니다. 더 선명해져가는 진영논리에 신음하는 이 세상에서 입장이 나뉜 채 서로의 목숨까지 노릴 정도의 카지노 게임을 벌이는 이들의 모습은 한없이 절망적이지만, 그만큼 더 분명하게 자신의 선의를 내비치는 인물들이 그 반대편에 존재하면서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제시하는 듯해 일말의 희망을 부여잡게 됩니다.


<오징어 카지노 게임 시즌 2(Squid Game 2, 2024)


전 시즌의 유례없는 인기 덕분인지, <오징어 카지노 게임 2는 메인 주인공 이정재 배우를 필두로 더욱 쟁쟁하고 풍성한 캐스팅 라인업을 제외합니다. 기훈 역의 이정재 배우는 전 시즌보다 한층 격렬해진 감정 연기를 선보이는 한편, 일면 <관상 속 수양대군이나 <암살 속 염석진을 연상시키는 이질감을 자아내는 등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한편 이번 시즌에서 단연 강력한 활약을 보여주는 배우는 프론트맨 역의 이병헌 배우입니다. 깜짝 특별출연 수준의 비중이었던 전 시즌에 이어 거의 투톱 주연 수준으로 존재감이 승격된 이번 시즌에서 그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혹함과 (위장된) 순진함, 그 사이 어딘가의 쎄함까지 인물의 다중적인 면모를 과장도 절제도 없이 예의 '그 인물로 호흡하는 듯한' 연기로 보여주며 극을 장악합니다. 이번 시즌 내내 긴장감을 팽팽하게 형성해야만 하는 중책을 띤 캐릭터로서, 그의 연기는 자칫 비슷한 리듬의 반복으로 여겨질 수 있는 본 카지노 게임 현장을 새로운 긴장감으로 채우는 데 크게 기여합니다. 이외에도 지극히 '하남자'스러우면서도 고집 하나만은 대단한 인물을 차지게 연기하는 명기 역의 임시완 배우, 정체성의 고민 속에서도 강인함을 잃지 않으려는 모습을 과장된 표현 없이 인간적으로 그려내는 현주 역의 박성훈 배우, 배우가 아니라 마치 실존하는 듯한 일반인을 연기하는 듯한 정배 역의 이서환 배우, 연기 경력이 짧음에도 극에 자연스레 스며들며 자기 색깔을 확실히 하는 준희 역의 조유리 배우 등이 눈여겨 볼 만한 활약을 펼칩니다. 다만 전 시즌에 비애 얼굴 알 만한 배우들이 워낙 많이 나오다 보니, 매 카지노 게임에서 참가자들의 생사 여부가 어느 정도 짐작된다는 건 다소 싱거운 점으로 다가옵니다.


<오징어 카지노 게임의 세계적인 대성공은 아마도 전혀 예상치 못했을 것이기에 그 성공에 힘입어 나온 후속 시즌은 몸집을 불리거나 자극을 키우는 식의 유혹에 쉽게 빠질 만 했지만, 다행히 황동혁 감독은 이번 시즌 2에서 보다 새로운 시야에서 한층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는 시도를 한 듯하고 그 점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오징어 카지노 게임 2는 그간 보이지 않았던 카지노 게임 시스템의 숨겨진 측면들을 더 면밀히 살펴 보는 한편, 극도의 폭력과 질서와 예의범절이 교차하는 이 현장이 자본주의의 지붕 아래에서 약자들을 어떤 식으로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유린하는지를 다층적으로 보여줍니다. 아직 시즌 3가 남아있기에 이번 시즌의 마지막은 무언가 확실히 해결되기보다 더 큰 물음표와 과제를 안기고 마무리되지만,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구성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시스템과 이에 맞선 저항자이자 동시에 구성원이기도 한 자들의 본격적인 대치는 다음 시즌을 더 적극적으로 기대하게 되는 동력으로 다가옵니다.


<오징어 카지노 게임 시즌 2(Squid Game 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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