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어머니는 내가 아는 외삼촌 외에도 오빠가 한 명 더 있었다. 큰오빠는 성격이 괄괄하고 드셌다. 퇴근하면 으레 여고생 시절의 어머니가 문을 열어줬다. 인사도 건너뛰고 배고파 죽겠으니 밥부터 내오라고 했다. 어머니가 입술을 비죽이며 오빠는 내가 밥으로 보여? 빈정거렸다. 삼촌은 저걸 때려죽이겠다고 난리를 피우다 큰이모에게 혼이 났다. 삼촌은 아우, 누난 알지도 못하면서! 아우, 누난 진짜 알지도 못하면서! 했다.
성인이 되고 채 몇 년도 지나지 않아 삼촌은 크게 앓았다. 의사들도 병명을 알지 못했다. 오빠, 나 보여? 내가 누구야? 어머니가 수시로 물었지만, 괄괄하고 드셌던 삼촌은 그저 텅 빈 눈으로 인자하게 웃어보일 뿐이었다.
이대로 죽으면 몽달귀신이 된다고, 죽더라도 장가를 보내고 죽어야 한다고 누군가 말했다. 마침 동네에 비슷한 처지의 처녀가 있어 결혼했다. 삼촌과 마찬가지로 원래는 멀쩡했는데 외간남자와 데이트를 했다고 오빠들에게 몰매를 맞은 뒤 백치가 됐다.
가족도 못알아보던 카지노 게임 사이트과 새숙모는 그러나 서로만은 알아봤다. 서로가 시야에서 벗어나면 울상을 지으며 괴로워했고 눈에 들어오면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어린애 같은 옹알이를 했다. 희한하게도 누구도 해석할 수 없는 그 옹알이를 서로는 잘 알아듣는 듯 했다.
여고를 졸업한 어머니는 매일 삼촌의 신혼집에 가서 집안일을 했다. 숫제 식모나 다름 없었다. 쉴 새 없이 투덜거렸으나 아직은 큰이모의 위엄이 두려워 별 수 없었다.
어느 날 삼촌의 집에 가니 늘 그랬듯 대낮에도 이불을 뒤집어 쓴 삼촌과 숙모가 서로 끌어안고 있었다. 어머니는 못 본 척하고 집안을 청소하고 밥을 차렸다. 오빠, 새언니, 밥 먹게 이제 일어나. 그리고 뒤늦게 삼촌이 죽은 걸 알았다. 숙모는 그 차가운 몸을 데워주려는 것처럼 죽은 삼촌을 가만히 끌어안고 있었다.
멀리 시간이 흘렀다. 아버지의 패악을 피해 작은이모네로 대피한 어머니의 꿈에 삼촌이 나왔다. 어머니는 아직도 내가 밥으로 보이냐고 웃었다. 그 때 이후 고된 일을 마치고 돌아온 오빠가 오죽 배고팠을까, 때때로 생각하며 안쓰러웠다고 에둘러 사과했다. 삼촌은 가만히 웃어보일 뿐이었다. 한참을 재잘재잘 홀로 떠들던 어머니가 문득 깜짝 놀라 말했다. 오빠, 왜 아직도 여기 있어? 오빠 죽었잖아. 삼촌은 한참 더 웃다가 말했다. 크게 앓아누웠던 그 때 이후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이제 가려고. 잘 살아라.
잠에서 깬 어머니는 오래 전 큰오빠와 함께 했던 새언니가 이제 죽었구나, 생각했다. 조금 울었는데 오빠가 불쌍해서는 아니었다. 함께 있던 작은이모가 괜찮냐고 했다. 넌 아무 꿈도 안 꿨니? 이모는 언니의 엉뚱한 질문에 대답이 난감했다. 어머니는 여지껏 젊어서 죽은 큰오빠가 불쌍했는데, 이제보니 불쌍한 건 자기 자신이었음을 알았다. 얼마 후 어머니는 아버지와 이혼 소송에 들어갔다.
몇 달 후, 마침내 어머니의 이혼 소송이 마무리 됐다. 어머니는 30여년 간 이어진 불행한 결혼생활을 결국 자기 손으로 끝장냈다. 이왕이면 10년이나 20년으로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40년이나 50년이 아니었던 것을 다행이라고 금방 고쳐 생각하게 되었다.
맥주에 치킨을 먹으며 조촐한 축하 파티를 했다. 이모들과 내가 그토록 닦달했을 때는 고개를 가로젓기만 하던 어머니는, 정작 다들 반쯤 포기하고나니 이혼을 결행했다. 혹 특별한 계기가 있었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느이 삼촌 덕이라고 했다.
삼촌? 외삼촌? 가끔 명절에나 보는 외삼촌? 의아해하는 내게 어머니는 그 삼촌 말고 다른 삼촌이라고 했다. 그리고 전혀 모르고 있던, 바로 위의 옛이야기를 전해줬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나는 한참을 침묵했다. 얼굴도 모르는, 방금 전까진 존재도 몰랐던 큰삼촌의 미소가 선명히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빈 잔에 맥주를 가득 부어 큰삼촌을 위해 건배했다. 언니도 동생도 아들도 못 해줬던 걸 해줬네. 참 고맙네, 우리 삼촌. 어머니는 삼촌을 닮은 미소만 지어보일 뿐 굳이 답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