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보라의 겨울특훈을 끝내며
드디어 듣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3월에 성큼 가까워지고 있다.
이번 겨울은 여느 해보다 길고 추웠다고 하지만, 내 마음만은 아이들 덕분에 따뜻했던 것 같다.
겨울 방학 내내 <디보라의 겨울특훈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이 우리 집에서 두 달 동안 함께 했다.
격주에 2박 3일만 신경 쓰면 되었던 아이들의 식사와 빨래를 일주일 내내 감당해야 했다.
아이들의 의식주를 책임지는 것은 물론, 그동안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공부습관과 생활습관까지 관리하려고 하니 24시간이 모자랐다. 동시에 출근까지 정상적으로 해야 했기에 더욱 분주한 일상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브런치에 일상을 공유겠다는 글 욕심은 마음 한편으로 물러나있었고, 그 때문인지 구독자도 2명이나줄어들었다.
그래도 두 달간의 아이들과의 밀착 훈련을 해온덕분인지 아이들은 나의출근시간에 맞춰일어나 밥을 챙겨먹고, 방과후학교도 잘 다녀오고, 하루 동안 약속한 인강 공부도 나름 잘 지키고 있는 것 같다.
방학 전, 학원에서 아이가 오지 않는다고 몇 차례 전화가 걸려오자"제대로스케줄도 못 챙길 거면 학원에다니지 마!"라고 엄포를 놓고는 정말로 세 번의 경고를 끝으로 학원을 끊어버렸었다.
대신 두 자녀 모두가 할 수 있는 인터넷강의를 신청해서 스스로 공부할 수 있게 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인강으로 충분히 중학교 내신을 잘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이긴 하지만, 그래도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들여준다는 생각에 시간별로 챙기면서 독려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특훈 기간 동안 신경썼던 건 카지노 게임의 마음과 정신이었다. 방학 직전, 카지노 게임의 크고 작은 문제 행동을 가정에서 적극적으로 지도해 달라는 담임 선생님의 부탁에 따라 지역청소년상담복지센터를 찾아가게 되었다.
상담을 원하지 않던 카지노 게임을 겨우 설득한 끝에 여러 가지 심리검사도 하고, 나와 함께 몇 차례 전문가 상담도 진행했었다.
"처음엔 심리검사지에도 1차원적으로 답을 쓰고, 중2 아이가 '나는 XX를 하고 싶다'는 말을 이해하지도 못한 채 친구가 주는 옷을 입고 돌아다녔다고 하셔서요... 상담이 조심스러웠지만 인지적인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여러 가지 검사를 진행했었습니다. "
걱정이 가득한 눈을 한 채 나는 숨죽여 상담사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런데... 여러 가지 심리 검사 결과를 종합해 보니 이 아이는 상당히 낙천적인 아이로 보입니다. 스스로 이렇게 보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검사에 응한 게 아니라면 말입니다."
덧붙여 "혹시 아이가 자유로운 영혼으로 보일 때가 있으실까요?"라며 가정에서의 카지노 게임의 특이할만한 행동들을 물어왔다.
가정에서 카지노 게임은 여전히 3살 터울의 여동생과 몸싸움과 동물놀이를 정말 재밌게 하고, 때때로 어릴 적부터 갖고 놀던 조립식 장난감을 변형하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낸다는 이야기, 어린 시절 성장해 왔던 가정환경과 자유로운 일상을 보내는 아버지 등에 대한 에피소드들을 전해주었다.
"검사결과와 어머니의 이야기들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예준학생은 심리적이나 정신적으로 특별히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다만, 나이에 비해 굉장히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나머지... 의도치않은 행동들로 다른 이들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결론적으로는 카지노 게임의 자유로움이 치료의 대상은 아니지만 앞으로 학교나 사회 등의 공동체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는 예기치 못한 어려움을 줄 수도 있으니, 다른 사람의 생각과 입장을 이해하는 것을 통해 사회 구성원으로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알게 하자는 것이었다.
지난 두 달간 특훈이라는 미명하에 카지노 게임을 향해 내뱉었던 날카로운 말들이 불현듯 스쳐 지나갔다.
결정적으로 학원을 그만 다니게 했던"예준이가 오늘도 안 왔네요..."라는 원장님의 전화를 받고는 상담센터에 간 카지노 게임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야! 이 미친 카지노 게임야!! 바뀐 학원 스케줄도 못 챙기면서 상담 스케줄은 왜 잡았어! "
한참의 침묵뒤...카지노 게임은 겁을 잔뜩 먹은 듯한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엄마... 미안해"
평범하지 않은 가정 상황과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듯한 독특한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여전히 순수하고 맑은 존재로 성장하고 있는 카지노 게임이 오히려 고맙기까지 했다.
'그래... 이제라도 행동의 틀은 잡으면 되니까...' 담임 선생님이 해석한 것처럼 카지노 게임이 나쁜 의도로 그동안의 행동들을 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만도 좋았다.
집에 돌아와 카지노 게임과 저녁 밥상을 마주하고 오늘 들었던 상담사의 이야기들을 전하며, 계속 마음속에 짐처럼 남아 있던"야! 이 미친 카지노 게임야!!"라는 말에 대한 사과도 함께 전했다.
사과를 들은카지노 게임은 웃음을 띤 채 내가 했었던 "야! 이 미친 XX야"라는 말을 여러 차례 흉내 내었다.
그리고 다섯 번쯤 같은 말을 반복하더니 해맑은 웃음 한껏 머금은 채 이렇게 말했다.
“엄마... 근데 나 정말 그때 상처 많이 받았어~히히”
순간의 화를 이기지 못해 던졌던 엄마의 말에... 애교스럽게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는 카지노 게임이 한없이 사랑스러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날 밤, 내 꿈속에는 시체 조각들이 배달되었다. 끔찍한 악몽을 끝에 잠을 깬 나는 카지노 게임의 방으로 달려가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했다.
“예준아... 그때 엄마가 나쁜 말해서 정말 미안해...”
카지노 게임은 잠결에 듣는지 꿈꾸는지 알 수 없는 평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미안해”
두 번째 고개를 웃음 띤 얼굴로 크게 끄덕이자 나는 그제서야 안심하고 다시 방으로 건너갔다.
"이번 디보라의 겨울 특훈은 애들이 아니라 나를 위한 특훈이었네..."
비몽사몽 중에도 <디보라의 겨울 특훈 결론을 내리며 다시 꿈나라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