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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루츠캔디 Apr 28. 2025

85점 이상은 벽보가 붙는 카지노 게임

캐나다 위니펙의 사립 고등카지노 게임, 사립 고등카지노 게임 선택을 과감히 접은 이유

내가 살고 있는 캐나다의 소도시 위니펙에도 사립 남자 고등카지노 게임가 존재한다. 대부분이 국곰립학교인 한국의 남자고등카지노 게임와 마찬가지로, 위니펙 시의 고등카지노 게임도 혼성 일반 고등카지노 게임가 주를 이루고 있다. 아주 직설적으로 말하면, 오래되고 좋은 동네의국공립학교는 그만큼 유명인사, 뛰어난 인재를 배출해낸 기간의 학교의 연혁만큼 깊은 반면, 신식 학교는 새로운 이민자의 유입에 의해 지어진 학교들이 많아, 현재는 안정된 상태가 아니나, 이민자 부모 특유의 높은 교육열 덕분에 머지않아 명문학교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인구의 유입과 유출이 잦아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도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불안이 높거나, 각 모국에서의 교육열을 그대로 캐나다에서의 삶에도 이어 적용하는 분들, 또는 비자문제로 공립카지노 게임 등록에 예상치 못한 차질이 생기는 경우, 한국 부모들은 사립카지노 게임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누구나 자식에게 좋은 환경과 좋은 교육을 제공하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또한, 사립카지노 게임는 비슷한 교육관을 가진 가정의아이들이 모여 있어 특유의 안정감을 제공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있다. 선생님과 학생간의 끈끈한 관계 역시, 긴장도가 높은 아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있다.


입학할 때에는 시험을 보는데, 이는성적순으로 합격자를 가리기 위함이 아니라, 카지노 게임 입학후에 추가 지원이 필요한지를 판단하기 위한 절차다. 등록금은 미국 사립 카지노 게임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여, 특별한 부자가 아니더라도 캐나다라는 외국생활에 따르는 막대한 변수를 줄일 환경을 원한다면 고려할만한 옵션이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도 고등카지노 게임 입학에 사립학교를 선택했을까?


아니오


여기서 잠깐, 어떤 선택이든 완벽한 정답은 없으며, 최종 결정권자인 부모에게 칼자루는 쥐어져있다.



1. 세상은 원래 흙탕물이다.


만약 세상을 내 맘대로 필터링할 수 있다면, 나는내 아이를 위해사립카지노 게임를 선택했겠지만, 세상은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흙탕물임을 인정해야한다고 본다. 흙탕물에서 견디는 나름대로의 전법을 어릴때부터 갈고 닦은 사람이 사회생활안에서도 나름대로 닦아놓은 길 위에 자신의 색깔대로의 삶을 자신의 주관을 갖고 꾸려나갈 수 있다. 내 삶의 방향, 나를 지탱하는 주춧돌이 되는 것은나와 관계없이뛰어난자의 사고방식이나 생활습관이 아니라, 결국 내가 가장 오랜시간동안 함께하고, 내면에 내재화하는 부모의 생활습관과 사고방식이다. 내 아이의 부모인 나부터 제대로 살면, 제 아무리 세상이 혼탁해도 결국 사람은 부모를 닮아 바르게 큰다는 것을 내 스스로의 삶, 내 부모님의 삶을 통해 획득했기에, 내 자식도 꼭 외부의 도움없이 깊이있는 사고를 가진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2. 강력한 성적 컨트롤은 한편으로 독이 된다.


물론, 아닌 카지노 게임도존재하지만, 내가 속한 지역의 사립카지노 게임는 매 학기 약 2번의 시험을 보고 난 후, 85점이상을 금은동메달로 나누어 공개한다. 85 미만은 인간이 아니기때문에 혹은 아이가 창피할까봐 벽보를 붙이지 않는다. 이것만으로도 해당카지노 게임에 입학시킬 충분한 이유라며 마음모아 찬성하는 부모들이 있지만, 이는 자연스럽게 성적지상주의를 심어주는 것도 사실이다.누구나 알다시피 행복은 성적 순위가 아닐 뿐더러, 성적도 행복순위가 아니다.수치심이나 우월감은 양면 얼굴을 갖고 있지만 결국 한 인간에게 같은 의미를 갖는다. 벽보에 내 이름이 붙어 우월감을 느끼나 아무리 찾아도 이름이 없어 오늘도 또 창피하다면 내적 동기가 아닌 외부에 기인한 조종이 장기적으로 무슨 효용과 삶의 가치를 제공할까. 매번 1등을 해 이름이 붙어도 그 아이가 평생 짊어지고 살아야할 마음의 판도라가 열리면 그것이 의미없는 자신을 향한 조종이었음을 반드시 깨닫는 시기가 온다. 정보의 홍수속에 사는 요즘 시대에게, 여전히 이런 방식으로 경쟁을 부추기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며 융통성이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3. 그들만의 리그에서 내 아이가 소외감을 느낄 가능성이 많다.


가서 직접 보면 알 수 있는 점이다.미국도 그렇고 캐나다도 그렇고, 부모나 조부모가 해당학교 출신이며, 그러므로 자신의 아들도 입학시킨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런 학생이 한 반에 5명이상 존재하고, 할아버지때부터 미리 알던 집 아이들이 서로의 필요에 의해 인맥을 맺고, 서로의 이익보장을 위해 똘똘 뭉쳐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선생님또한 누구집의 어디 아들이라는 것을 공유한 이상, 영리목적의 사립학교 안에서 해당 정보를 무시할 리 없다. 결국 강력한 인맥들 안에서 이민자 1세 부모를 둔 아이가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들기는 쉽지 않다.어떤부모들은 이런 인맥을 기회로 삼으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순수함없이 세속적 목적으로 관계를 맺는 문화속에서 상처를 입기 쉽다. 그것은 철저하게 스스로를 과대평가한 일방적인 생각이다.


얻어 먹을 것이 없는 사람에게는풀 한포기 줘야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이 소위 개인주의자인 그들의 마인드 셋이다.시대가 변했다고는 하나, 두루두루 잘 지내자는한국적 정서와 매우 다르다. 애초에 인간관계를 순수함없이 세상적 목적에 의해 맺는 것이 기본값인 그들에게 줄 것없는 나의 접근은 그야말로 이기성의 극치이며,착취자의 행태로 읽힌다. 거기까지가지 않아도 그냥 나라는 인격체가 보이지 않는다.


이전 글에도 말씀드렸듯 이 나라 캐나다는 안된다고 명시된것 빼고는 다 되는, 열린 법적 테두리를 가졌기 때문에, 개인 간 방어 및 견제, 텃세는 우리가 한국에서만 산다면 생각하지 못할만큼 훨씬 더 벽이 높다. 한국사회는 법적으로 허용하는 것 빼고는 다 기본적으로 안됨을 기본으로 하기에 사람을 지나치게 쓸데없이 피곤하게 견제하지 않는다. 어차피 법의 테두리안에서 보호받고 있으니까...이곳에서 분명 인종차별은 아닌데 새로운 사람에 대해 벽치는것보면 당혹스럽고 소외감 들게 십상이다.


눈치빠른 아이들은 그 매커니즘을 이미 읽으며, 내 아이를 거부하거나,혹여 이민자의 다급한 마음을되려자신의목적에 맞게 이용할 수 있다. 엄마가 아빠가 친구들과 잘 지내라고 해서 비싼돈주고 보낸 학교에서 상처를 입을 수록 아이는 인간관계에 마음을 닫고 점점 자신 안으로 파고드는 경우를 주변에서 보며 마음이 아프다.


내가 줄 것이 있을 때, 상대도 자신의 것을 내어 놓는다는 합리적인 생각으로 어떤 상황에서든 사람을 대해야 당당하지, 자꾸 얻어먹으려고하면 반대로 얻어 먹히고 버려진다.찬성하는 바가 아니라, 그들의 입장에서는 일방적으로 얻으려하는영악한동양인을 보는것이 한 둘이 아니기때문에 주변궤도에서 걷어내기 바쁘다. 이들도 이들 나름대로 상처가 있다. 종교단체에서 내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해서, 종교적 세뇌에 의해 어느나라에서 왔든 널리 사랑해주었는데, 크리스찬 사립이라고 들어와서는 개인주의적 한계를 가진 캐나다의 회색지대를 맘껏 이용이나 하는듯 알맹이만 빼먹고 가는 서운함에서 얻는 상처가 과연 없을까?


내 아이가 인간관계에 마음을 닫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을 원치 않기에, 신중히 고려할 문제이다.



4. 밀도 높은 불공평함


불공평한 세상의 축소판( 밀도높은 불공평함)을 체험하게 하는 건, 아직 어려 사회적 면역력이 없는 아이에게 잔혹한 행위일 수 있다. 사립카지노 게임에서는 극명하게 삶의 불공평함이 드러난다.경제적, 사회적 배경이 다른 아이들이 같은 교실에 모여 있지만, 권력과 인맥을 가진 아이들은 자신들의 우위를 시험하고 남용하기 쉽다. 고등카지노 게임 학생들은 이제 더 이상 킨더가든의 순수한 아이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어린이성을 벗고 어른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자신이 속한 사회 안에서 하나 둘 시험해보며 크는 시기 때문에, 30명 남짓한 한 학급에는 아직 캐나다에 남아있는 귀족 막내아들도 존재하며, 장차관 아들들, 사업가와 대부호의 아들들과한편 사회적 약자, 유색인종, 부모가 자신들의 나라에서 무슨일을 하고, 어떻게 살았던 상관없이 이 나라에서는 말 한마디 의사소통도 원활하지 못한 이민자의 아이들도 모두 한 학급안에 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선하고 현명하지 않다면, 반드시 권력을 남용하게 되어있다. 특히인생실패와 깨달음을 기반으로 다시 태어난4050이 아니라, 10대 후반 아이들은 맘껏 자신의 권리와 재량을 세상에 던져보고 실험해보며 현실을 배워가는 기간이기때문에, 꼭 자신의 힘을 시험해볼 상대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으로 찾아 해맨다. 꼭 지대한 권력을 가진 사람만의 일이 아니다. 권력에 의해 밟혀본 사람은 또 자신의 피해의식을 더 약한 사람에게 풀고 싶어한다. 물론 일반학교에도 인간의 본성이 존재하지만, 캐치먼트(주소 기반의 카지노 게임배정)를 따지지 않고, 자유입학 하는 사립카지노 게임 교실안에는 정치,사회, 경제적 그라데이션이 더욱 확연하게 드러난다.


축소판은 아이에게 잔혹하다. 문제가 생겨도 각종 인맥을 동원해 충분히 내 아이를 마크해줄 사람으로 가득한 아이는 그것을 이미 알기에 권력을 남용하는 한편, 이 사회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나를 충분히 마크해줄 수 없는 내 부모의 현실을 누구보다 솔직하게 이미 알고 있는 아이는 시작부터 기가죽는다. 싸울수가 없다. 싸움은 서로의 관계가 비등비등함을 알려주는 최고의 지표이다. 바깥 친구들과 싸우지 말라는 말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말인지, 얼마나 인격을 때려눕히는 행위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이 때 좌절된 인격이 후의 성격형성, 사회적 관계맺음에 어떠한 영향을 줄 지, 반드시 심각하게 고민해보아야한다고 생각한다.


특별한 사건 사고를 당하지 않아도, 사춘기가 지나고 막 어른이 되기 시작한 때에 당한 인간관계안에서의 좌절은 성격적으로 만성화되어 삶의 전반을 좀 먹기 쉽기 때문이다.

어떤 혜택이 있나가 아닌,
적어도 내 아이가 맘놓고 다른 아이들과 싸워볼만한 곳인지가
이민자인 내가 내 아이 카지노 게임와 사는 동네를 선택하는 기준이다.



5. 과외의 남용과 본질의 훼손


사립 카지노 게임에서 높은 성적을 유지하기 위해 과외가 만연해 있다. 그 외에도 학업 성취도를 높이기 위한 각종 수법이 만연하다. 이미 공정함을 넘어선 곳이 사립카지노 게임라는 말은 위에서 충분히 밝혔다.


권력을 가진 자의 아이들은 사립학교에서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아이들은 학교를 통해 어떠한 종류의 기회를 제공받기 위해 그곳에 속해있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우리또한 그곳에 속해있다는, 또는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떨어지는 이익이 하나도 없다.


이미 아이가 학교를 졸업하면, 꾸려나가게 될 무언가가 예비되어 진 마당에 쓸데없는 학교생활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받는 것이 과외인데,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준비된 것이 없어 그저 사고력을 바탕으로 사회에 나서 승부를 봐야하는 일반 아이가 그저 사립학교 또는 일반학교에서 점수를 잘 받겠다는 이유로 과외를 남용하는 것은 사실 생각보다 큰 부작용이 있다.


과외를 통해 억제로 얻은 점수는 본질적인 사고력과 학습능력을 기르지 못하게 한다.이 부작용은 인터넷을 비롯한 인공지능등의 발달로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어 부모된 우리가 방향을 잘 잡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우여곡절을 거쳐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깨닫지 못한 채, 대학까지 입학한 아이들은, 대학에 와서도 성적을 잘 받기 위해 과외를 받는데, 여간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대체 무엇이 먼저인가. 컴퓨터와 과외선생님이 내 공부를 대신해주고, 학생과 학부모는 돈을 transaction하여 그들로부터 점수를 사니, 누가 기계이고, 누가 사람인지 알수가 없다. 공부를 하겠다고 온 곳이 대학인데, 대학에서도 과외를 받아야만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무슨 헛소리이고 헛짓인가.


막대한 공부량을 바탕으로 공부법을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부딫혀 싸워보는 것, 그리고 스스로의 약점을 딛고 일어나는 경험을 단 1번이라도 해 보고, 세상에 나가는 것이 고등카지노 게임에서의 과업인데, 이 면역력을 배우지 못한 채 대학이 무슨말인가. 그런사람은 굳이 대학에 올 필요가 있는가? 쳇 지피티에게 물어물어 살면 되는 세상에서 과외까지 받아가면서 대학생활을 해 나가야할만큼 대학교육에서의 점수 그자체가 그리 중요하지가 않다. 몇마디 해보면 인지사고력이 상대에 의해 금방 간파당하는 마당에 대학교육을 받았고 그렇지 않고 그 자체는 별로 경쟁력이 없는, 소위 말해서 돈만주면 내가 원하는 모든 학위를 가질수있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북미사회에서는 더 이상 높은 점수만으로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 차라리 스스로 공부하는 힘을 키우는 것이 진정한 경쟁력이 된다.


6. 다음 기회에

이는 물론 미치도록 충격적인 공립카지노 게임의 진실또한 발설할 계획이니 스테이 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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