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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학엄마 Apr 30. 2025

카지노 게임, 장소, 환대

김현경 지음/ 문학과 지성사, 2025년 4월 읽음

화요 독서 모임에서 함께 2025년 4월에 읽었다. 단어들이 어렵지 않은데 읽으면 어려웠다.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글이 1장 카지노 게임의 개념, 2장 성원권과 인정투쟁, 3장 카지노 게임의 연기/ 수행, 4장 모욕의 의미를 읽는 동안 계속되었다. 화요 독서 모임 첫 주에 1,2장을 읽고 이야기 나누고 둘째 주에 3,4장을 읽고 마지막 주에 5,6,7장과 장소에 대한 두 개의 메모 부록을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눴다. 셋째 주에 읽은 5,6,7장이 앞에 장들보다 좀 더 잘 읽혔다고 말씀드리니 선생님께서 러시아 꽈배기 효과 이야기를 해 주셨다. 러시아의 성실하지만 가난한 농부가 시장에 가서 배가 고파 요기할 거리를 찾다가 꽈배기 장수에게 "이보시오, 이 꽈배기 먹으면 배가 부르오?"라고 물어보자 꽈배기 장수가 "그렇고 말고요, 맛도 좋고 배부르면 기분도 좋아질 것이오."라고 해서 농부가 천 원어치 꽈배기를 먹었다. 하지만 농부는 배가 여전히 고팠다. 농부는 장사꾼한테 속았다는 생각이 들어 속상했지만 길을 걷다가 보이는 찐빵가게에서 한 번 더 물어본다. "이보시오, 이 찐빵 먹으면 배가 부르오?" 찐빵 장수도 "그렇고 말고요. 이 찐빵 먹으면 맛도 좋고 배도 부를 것이오."라고 말했다. 농부가 천 원어치 찐빵을 먹는데 찐빵을 다 먹기도 전에 배가 불렀다. 농부는 찐빵 장수는 정말 정직한 카지노 게임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농부는 그전에 꽈배기를 이미 먹었던 것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가 1장부터 4장까지 어렵지만 생각을 함께 나누면서 읽어나가다 보니 뒷 장 내용이 조금은 수월하게 읽혔던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며 끝까지 읽어나갈 수 있었다.


책 속에서 밑줄 그은 부분 몇 군데 발췌해 본다.

p.31 카지노 게임이라는 것은 어떤 보이지 않는 공동체 - 도덕적 공동체- 안에서 성원권을 갖는다는 뜻이다. 즉 카지노 게임임은 일종의 자격이며,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한다. 이것이 카지노 게임과 인간의 다른 점이다.

어떤 개체가 카지노 게임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사회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하며, 그에게 자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p.57 물리적으로 말해서 사회는 하나의 장소이기 때문에, 카지노 게임의 개념은 또한 장소의존적이다. 우리를 카지노 게임으로 인정하는 카지노 게임들이 있는 공간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더 이상 카지노 게임이 아니게 된다. 사회란 다름 아닌 이 공간을 가리키는 말이다.


p.58 사회는 각자의 앞에 펼쳐져 있는 잠재적인 상호작용의 지평이다. 우리는 이 지평 안에서 타인들과 조우하며, 서로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신호를 주고받는다. 타인이 내게 '현상한다'는 말은 그가 나의 '상호작용의 지평 안에 있다'는 말과 같다. 따라서 타인의 존재를 알아보고, 그가 나의 알아봄을 알아볼 수 있도록 내 쪽에서 존재의 신호를 보내는 것은 그의 사회적 성원권을 인정하는 의미를 띤다. 동시에 나는 이러한 행위를 통해 나 역시 그에게 현상하고 있다는 믿음을 표현하며, 상대방이 나의 믿음을 확인해 주기를 기대한다.


p.64 카지노 게임이라는 말은 사회 안에 자기 자리가 있다는 말과 같다.


p.65 사실상 우리는 타인의 환대 속에서만 자신의 사회적 성원권을 확인할 수 있다.


p.73 더럽다는 것은 제자리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신발은 그 자체로는 더럽지 않지만 식탁 위에 두기에는 더럽다. 음식이 그 자체로 더러운 건 아니지만, 밥그릇을 침실에 두거나 음식을 옷에 흘리면 더럽다. 마찬가지로 목욕 도구를 옷장에 두거나 옷을 의자에 걸어두는 것, 집 밖에서 쓰는 물건을 실내에 두는 것, 위층의 물건을 아래층에 두는 것, 겉옷이 있어야 할 자리에 속옷이 나와 있는 것 등은 더럽다."


p.83 카지노 게임의 수행은 카지노 게임을 연기한다는 의미와 카지노 게임을 존재하게 한다는 의미를 둘 다 갖는다. 카지노 게임이 수행적이라는 것은 카지노 게임다움이 우리 안에 있지 않다는 뜻이다. 카지노 게임다움은 우리가 원래 가지고 태어났거나 사회화를 통해 획득해야 하는 본질이 아니다. 그보다 카지노 게임다움은 우리에게 있다고 여겨지며, 우리 스스로 가지고 있는 체하는 어떤 것, 서로가 서로의 연극을 믿어줌으로써 비로소 존재하게 되는 어떤 것이다.


p.103 민권운동에서 게이-레즈비언 운동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체성 투쟁의 핵심에는 모욕에 대한 저항이 있었다.


p.109 상호작용 질서는 인정투쟁 속에서 불안정하게 재생산되는 역사적 구성물이며, 무시와 모욕은 이 구성물에 내재한 균열을, 그것의 현재 안에 있는 다른 시간들을 드러낸다.


p.112 고프먼의 정의에 따르면, 의례란 "한 개인이 절대적 가치를 지니는 대상에 대한 자신의 존경과 경의를 그것 자체 혹은 그것의 대표자에게 표현하는, 형식적이고 관례화된 행위"이다.


p.171 모욕이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우리가 기억해야 할 한 가지 사실은 인격에 대한 노골적인 공격이 아닌, 온화한 경멸 역시 상처를 준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에서 현대 사회는 동정과 자선을 경계하며, 베푸는 카지노 게임과 받는 카지노 게임의 인격적인 접촉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한다.


p. 177 우정을 지탱하는 것은 당사자들의 기억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우정을 순수한 시간으로 환원할 수 있다. 이는 우정이 그만큼 많은 결별의 계기들을 품고 있다는 말도 된다.


p.200 독서와 대화 사이에는 아무런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독서는 또 다른 대화 - 비동시적으로 이루어지는 대화-이기 때문이다.


p.204 환대는 공공성을 창출하는 것이다. 아동학대방지법을 만드는 일, 거리를 떠도는 청소년들을 위해 쉼터를 마련하는 일, 집 없는 카지노 게임에게 주거수당을 주고 일자리가 없는 카지노 게임에게 실업수당을 주는 일은 모두 환대의 다양한 형식이다. 자유로운 인간들의 공동체라는 현대적 이상은, 생산력이든 자본주의의 모순이든 역사의 수레바퀴가 어떤 자동적인 힘에 의해 앞으로 굴러감에 따라서가 아니라, 이러한 공공의 노력을 통해 실현된다.


p.205 환대란 타자에게 자리를 주는 행위, 혹은 사회 안에 있는 그의 자리를 인정하는 행위이다. 자리를 준다/인정한다는 것은 그 자리에 딸린 권리들을 준다/ 인정한다는 뜻이다. 또는 권리들을 주장할 권리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환대받음에 의해 우리는 사회의 구성원이 되고, 권리들에 대한 권리를 갖게 된다.


p. 209~ 신원을 묻지 않는 환대

모든 인간 생명은 출생과 더불어 카지노 게임이 된다.

공적 공간에서 모든 카지노 게임은 의례적으로 평등하다.

자기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카지노 게임은 자기뿐이다.


어려운 책이었지만 화요독서 선생님들과 같이 읽으니 조금이나마 정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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