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떤 의사결정을 내려야 할 때마다 그 일을 조금씩 뒤로 미루곤 했다. 물론 일상적인 일에 관해서라면 누구보다 더 계획적으로 잘해왔다고 말할 수 있긴 하다.
요새 젊은 친구들이 좋아하는 MBTI로 번역해 보자면, P와 J가 섞여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P와 J의 형질은 의사결정에 관한 사항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의사결정을 하는 방식으로드러난 특성이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평소의 자질구레한 일들은 계획적으로 처리하는 것을 즐기는 반면에 커다란 질문지 앞에서는 조금씩 뒤로 미루고 발뺌을 하다가 어느 순간불현듯 찾아오는 직관적인 판단력을 갖게 된 뒤에야 비로소 선택하는 소심하기도 하면서 늑장을 부릴 줄도 아는 성향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거창한 얘기일까?
아무튼 최근에도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변동금리와 고정금리 사이에서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순간이 갑자기 찾아온 적이 있었다.
지금 바로 이 순간에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는 요청이 들어왔던 것인데, 나는 대답을 주저하면서 음 이건 내일 오전에 결정해도 괜찮을까요라고 물어보면서 뒤꽁무니를 뺐다. 그 순간 나는 어떤 마음이었던 것인지에 관해서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
만일 내가 어떤 직업군에 있는지와 내가 가진 자격요건을 아는 사람이있다면 여기까지 읽고 약간 어리둥절해할 수 있다.
사실 나는 경제적 전망에 관해서 어느 정도 신뢰할 만한 의견을 내놓을 줄 안다.리만형제가 무너지기 전과 무너진 다음에 발생했던 일들 그리고 코로나가 한반도를 잠식하기 시작하면서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일들에 관해서 말했던 일들이 현실에서 그대로 벌어졌었다.
물론 나 자신조차도 실제로 그러한 일이 벌어졌던 당시의 상황을 목격하면서 내심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지만 동시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나는 말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리만 형제가 무너지기 전이었건 2007년 6월에 채권형 펀드를 들고 창구에 앉아 수익률이 기껏해야 4%를 넘긴 수준인데 남들처럼 주식형 펀드의 수익률인 20%를 받고 싶다던 대표에게 "지금은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만, 1년만 기다려 보시죠. 내년 이맘때쯤 무슨 일이 미국에서 벌어질 텐데 그때가 되면 이 펀드의 상대적 수익률이 2배 가까이 벌어질 것입니다. 어차피 손실을 보지 않는 펀드라면 일단은 기다려 보시고 제 말이 맞는지 확인해 보셔도 될 만큼 여유가 있지 않으십니까?"라고 주저 없이 얘기했었다. 그 뒤로 어떻게 되었던가?
그 사람은 내 의견이 현실로 그대로 이행된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 후였던 2008년 겨울에 전화를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저 누구예요. 기억하시죠? 그때 조언해 주신 덕분에 제가 이익을 많이 봤어요.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혹시 저의 개인적인 재무 자문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부탁드려요."라는 말이 수화기 건너편에서 들려왔다.
그러나 당시에 나는 아무에게도 돈과 관련된 자문을 해줄 수 없는, 해서는 안 되는 위치에 있었다. 심지어는 나의 신용을 활용해서 이윤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을 잘 아는데도 불구하고 직업윤리상 그럴 순 없다는 사실을 명명백백 알고있었을 정도로 향후 전망에 대해서도 마치 오늘일처럼 보였을 정도였다.(물론 이건 거의 우연의 일치에 불과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사장님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죄송하지만 대표님 저는 지금 자문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없습니다. 대신에 제가 잠시 있었던 그 회사에도 저보다 더 분명히 앞날을 내다볼 줄 아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분에게서 자문을 구하시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이는 매우 당연한 처사였으며 순리를 따른 것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이러한 일이 있었다.
취업 준비를 하다가 만난 친구와 이러한 대화를 나누었었다. 당시에 이 친구는 사귀던 여자친구와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었지만 여자친구가 생각한 결혼의 조건이 자신의 몸뚱이 하나만 믿고 있었던 자신의 생각과 무척 달랐다는 점을 깨달은 뒤 통장의 잔고를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 미국에서 큼지막한 사건이 터졌었다. 한국 시중은행의 총자산을 더한 것보다 더 큰 금융기관이 하루아침에 파산을 선고해 버렸다.
이 사건은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굉장히 큰 충격을 주고 말았다. 미국 5대 IB은행으로 꼽힐 만큼 덩치가 큰 기관이 하루아침에 무너졌으니충격이 없을 리가 없다.
이는 모든 사람의 기대를 훌쩍 뛰어넘은, 그야말로 대사건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후로 벌어질 상황은 기존의 사고방식에 의해 예측할 수 없다는 경종을 울릴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그 거인의 몰락이 가져올 파급효과는 그 누구도 단기적으로 예측할 수 없었으며, 예측이 안 되는 상황에서는 그 누구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는 국면에 이르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을 간파한 나로서는 상황의 심각성을 누구보다도 절실하게 느꼈을 뿐만 아니라 실제 금융시장이 돌아가는 실황에 따라시뮬레이션 자료를 경영진 앞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실시간으로 보고하고 있었을 정도로 당시의 급박했던 시장의 흐름을 실시간으로 함께하고 있었다. 이때 나에게 그 친구가 주가지수의 향방에 대해 자문을 구해 왔었다.
자문을 하기 위해 먼저 필요한 것은 자문을 구한 사람이 처한 사정에 대한 철저한 이해였다. 그래서 나는 친구의 사정을 파악하기 위해서 그에게 발언권을 양보한 채 경청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친구의 문제의식을 포착했을 때 비로소 나는 의견을 말해주었다. 지금 남아 있는 돈이라도 얻고 싶다면 지금 당장 모든 포지션을 현금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사실 투자자의 필요를 가장 잘 이해하려면 투자자의 요구수익률이 아니라 투자자가 얼마 만큼의 리스크를 감내할 수 있는지, 다시 말해 리스크에 대한 투자자의 태도를 우선적으로 파악해야만 한다. 이러한 관점을 견지한 채 친구의 사정을 들어보니 친구가 투자한 돈은 인생의 seed money라는 점을 짚어낼 수 있었다.
자신의 부를 축적하기 위한 기반을 잃게 된다면 이토록 혹독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그 즉시 모든 포지션을 정리해서 현금을 최대한 확보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 뒤로 약 7년쯤 흐르고 나서 그 친구가 미국 유학을 앞두고 나에게 고맙다고 말했었다. 그때 내가 그 말을 해주지 않았다면 자신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날 자금이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가 한반도를 습격했을 때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었다. 이미 글이 굉장히 길어졌기 때문에 자세한 내막을 여기서 주저리 말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비슷한 일이 벌어졌었다.
이러한 나의 어떤 직관적인 통찰을 몇 차례 경험했던 사람은 같은 조직에서 연구원이라는 직함을 가진 직원에게 자문을 구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자신에게 어떤 투자처가 생겨 투자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마다 나에게 연락을 해오곤 했었다. 그 결과 우연히 나는 여러 차례 그의 자산을 보호할 수 있었던 말들을 해줄 수 있었다.
그러했던 내가 변동금리냐 고정금리냐라는 갈림길 앞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주저하고 말았다. 중이 제 머리는 못 깎는다는 옛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게 딱 들어맞았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나는 그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 위한 정보가 부족했기 때문에 직관적인 판단을 할 수 없었음을 자각했었다. 그래서 다음 날 아침으로 결정을 미뤘던 것이다.
다음 날 아침이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판단을 미룬 채 멍한 눈빛으로 틀에 박힌 일만 처리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1시쯤 아주 우연히 어떤 문서를 꺼내보게 되었다.
평소와 같았다면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제목의 문서였는데 이상하게도 그날만큼은 오른손을 움직여 열어보게 만든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렸었다. 그래서 열어본 결과 아주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내가 그토록 찾고 있던 정보에 단서가 될일부의 자료가 바로 거기에 표로 그려져 있었던 것이었다. 그 표를 보자마자 단번에 현재 자금시장의 동향을 포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돌다리도 두드려 보라고 했듯이 나는 급히 전화기를 들어 현재 자금시장에서 실무자 역할을 담당하고 있던 직원에게의견을 구하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직원은 내가 직관적으로 파악했던 그 흐름 속에서 자산과 부채 구조에 따라 최적화를 도모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직원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신뢰할 만한 생생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고, 그덕분에 나는 오전 내에 결정하겠다는 말을 지킬 수 있었다.
결국 나는 이러한 사람이다. 어떤 거대한 질문 앞에 서게 될 때 최대한 결정을 늦추게 된다.
그와 관련된 직관적 판단이 가능할 만큼의정보라든지 통찰이라든지 어떤 패턴의 발견이라든지, 필요한 것들을 수집하기 전까지는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오늘의 의사결정이 어떤 결과를 내게 가져올지는 몇 년이 지난 뒤에야 드러나게 된다. 그때 나는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며 나의 한계를 스스로 인정하거나 아니면 내게 선물로 주어진 우연성에 대한 남다른 감각에 감사를 표하게 될 것이다.
만일 나의 진심을 이해할 수 있는 눈을 갖춘 사람이라면 지금의 나에게 해맑게 웃어줄 수 있으리라.
마치 모나리자의 미묘한 웃음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