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쉽지 않다
카지노 쿠폰국에 밥 말아줄게
중3 딸아이가머리만 쏙 내놓은 채 이불 안에 돌돌 감겨있었다. 나는 보았다. 정수리가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을.한번 더 물어보았다. "먹을 거지?"정수리는 또다시 응답했다. 긍정의 끄덕임으로 굳게 믿었다.
거실 식탁 위에 카지노 쿠폰국에 밥 말아놓은 그릇을 올려두고 큰방으로 들어갔다. 5분 10분 지났나. 조용하다. 안 나왔다. 국물이 다 불어서 밥알들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그제야 방에서 나온 큰아이는밥그릇은 거들떠보지도않고 "뭐먹지"라며 냉장고 문을 연다.
"나 카지노 쿠폰국 안 먹어"
"어제저녁에 안 카지노 쿠폰서오늘 아침에 먹는다 했잖아. 그리고 아까 먹는다고 고개 끄덕였잖아"
"내가 언제?"라고하더니시리얼에 우유를 붓는다.
말문이 막혔다.바로 싱크대에 밥그릇을 날려버리고 싶었다. 이럴 때일수록침착하려고 사춘기에 대한 책도 보고 글도 쓰는것이 아닌가.자리를 피하는 게 상책이다. 아이가 등교할 때까지 큰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엎드려서 책을 읽었다.
문이 열리더니 등교하기 전 인사를 한다.
"갔다 올게요"
"어"
마음속화구에 불덩이가 한 줌 식었다.거실로 나와 퉁퉁 불은 밥을 냄비에 부어 팔팔 끓였다. 국물은 없지만 덕분에(?) 든든히 먹고 출근하였다.
어제 아침에도 카지노 쿠폰국을 먹었다. 저녁에도 학원에서 오면 주려던 소고기 국이었다. 저녁 담당인 남편도 늦게 퇴근해서 내가 저녁을 준비했다. 목살 세 덩이가 있었다. 나와 딸 둘이 먹으려니 좀 모자랐다. 나는 적게 먹고 딸 주려고 몇 점 더 남겨두었다. 국도 있고 시금치나물도 무치고 다른 반찬도 있으니 이대로 먹으면 충분하다 싶었다.
집에 오자마자 큰딸은 "고기 이거밖에 없어?" 하더니 국은 안 먹는단다. 라면 안 주려고 저녁 준비해 놨더니고기 있으니 비빔면을 먹는단다.(맛있는 건 알아가지고) 대신 소고기 국은 내일 아침에 먹는다고 했다. 아침 줄게 있어서 다행이었다.
내일 아침 뭐 먹냐는 질문에 카지노 쿠폰국에 밥말아준 다니"싫어"(그새 마음이 바뀐다), 삶은 달걀 줄게. "싫어" 과일 준다 해도 "싫어"
그냥 주면 주는 대로 먹으면 안 되겠니? 이럴 때마다 진짜 굶기고 싶다. 쫄쫄 굶어봐야 감사한 줄 알고 먹을 것인데 상황은 그렇지가 않다.아침메뉴로 제일 만만한 달걀밥도 싫단다.난감하다. 줄 수 있는 게 없다. 안 그래도 음식에 자신 없는데 더 잘해줄 생각은 않고 기운만 빠진다.
매일 아침에 뭘 먹을지 물어보고 대답해 주면 한번 만에 승낙을 받은 적이 거의 없다. 초등학생 때는 밥이랑 김만 줘도 좋다고 먹던 아이들인데 쉽게 키웠다. 중학생 쉽지 않다.
아침에뜨끈한 국물에 밥 먹고 등교하면 얼마나 좋아. (둘째는 아침과일을 좋아한다) 밥도 안 먹고 갑자기 시리얼을 먹는다니 뒷골이 당겼다. 시리얼은 내가 못 일어났을 때 최후의 수단인 것을. 아침 주려고 일찍 일어났더니 평온한 마음에 불씨가 화르륵 붙었다.
소고기 국을 좋아한다. 주말에 친정엄마가 끓여주었다. 나는 왜 딸에게 소고기 국을 먹이고 싶어 했을까? 내가 좋아하는 국이라서 딸이 같이 좋아해 줬으면 했나 보다.나는 아침을 안 먹어도 딸은 밥을 먹이고 싶었다. 참 모른다 몰라. 중학생은. 아니 내 딸은. 나중에 결혼해서 너랑 똑같은 딸 낳아라! 그때 돼야 내 마음 조금이라도 알라나.
적다 보니 우리 엄마 심정인가. 지난달 친정 가서 밥 먹으라는 소리에 라면 끓여 먹은 게 생각났다. 그렇네. 나도 똑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