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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dbury Jan 14. 2025

싼 맛에 저승행

그 한마디가 불러일으킬 결과를 엄마는 예상했어야 했다.

집과 가까운 곳에 새 카지노 쿠폰 농장이 생겼다. 그곳 배춧값이 워낙 싸다 보니 광고한 것도 아닌데 주변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요즘 한국 사람이 모이는 곳엔 이 농장 이야기가 단연 화제다. 맥도날드엘 가도 그 이야기가 들릴 정도니 사람 입이 참 무섭다. 공중을 날아 독감처럼 순식간에 이 지역에 퍼져나간다. 속도가 거의 전염병 수준이다.

어느 날 차고 앞에서 엄마가 배추를 다듬고 있었다. 웬 배추냐 물었더니 싼값에 잘 샀다고 엉뚱한 답을 내어놓았다. 그래도 그렇지. 김장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왜 또 배추를 두 상자나 사 왔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돌아온 엄마의 한 마디. 배춧값이 싸길래.

아주 오래전 일이다. 초등학생 때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해에도 정부의 수입 농산물 정책으로 인해 채솟값이 심하게 폭락했다. 제철을 맞아 속살을 꽉 채운 카지노 쿠폰들은 푸른 잎 코트까지 다 챙겨 입고 나가다 약속 취소 연락을 받은 것처럼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렇다고 다음을 기약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취소된 약속에 풀이 죽듯 금세 시들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학교에선 안타까운 농민들을 돕고자 작은 운동이 일어났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배추 사기 운동’ 정도가 되겠다. 한 포기에 오백 원. 엄마에게 배춧값을 달라고 했더니 잔돈이 없다며 오천 원짜리 한 장을 줬다. 엄마, 몇 포기 사 와? 그러자 출근 준비로 바쁜 엄마의 한 마디. 네가 들고 올 수 있는 만큼. 딸을 잘 몰라서였을까? 그 한마디가 불러일으킬 결과를 엄마는 예상했어야 했다.

운동장엔 농장에서 온 배추 트럭이 세워져 있었다. 작은 키로 올려다보니 몇 층으로 겹겹이 누워 있는 배추들이 보였다. 그건 마치 초록색 동산 같았다. 손에 오천 원짜리 한 장을 들고 친구들과 함께 줄을 섰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농부 아저씨가 물었다. 몇 포기 줄까? 다시 고개를 들어 배추를 올려다봤다. 배추는 마트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더 커 보였다. 어른들이 하시는 말을 빌리자면 ‘매우 실한’ 배추였다. 그때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네가 들고 올 수 있는 만큼. 난 당당하게 말했다. 다섯 포기요.

집으로 가는 길은 내 보폭으로 이십 분가량을 걸어야 했다. 등에 가방을 메고 한쪽 손엔 카지노 쿠폰 두 포기와 신발주머니를, 다른 쪽 손엔 카지노 쿠폰 세 포기를 비닐봉지에 넣어 들었다. 카지노 쿠폰 무게 때문에 비닐봉지 손잡이가 칼날처럼 내 손을 베어버릴 것만 같았다. 쌀쌀한 날씨에 입에선 하얀 입김이 나왔지만, 몸에선 열이 올랐다. 입술을 깨물었다. 대단한 임무라도 맡은 듯 깨문 입술에서 피가 날 지경이었다.

그제야 함께 길을 걷던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처럼 다섯 포기를 든 아이는 없었다. 그들의 손엔 고작 한 포기, 두 포기의 카지노 쿠폰가 들려있을 뿐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난 참 미련스럽다. 아차 싶었다. 집에 돌아와 카지노 쿠폰 다섯 포기를 부엌에 던져 놓고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네 손가락을 가로질러 빨간 줄이 선명하게 나 있었다. 나름 영광의 상처였다.

엄마는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퇴근해 들어왔다. 그리고 잠시 후 부엌에서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들렸다. 이게 다 뭐야? 엄마가 들고 올 수 있는 만큼 사 오라며. 엄마가 기가 막힌다는 듯 내 얼굴과 배추 다섯 포기를 번갈아 쳐다봤다. 그 후 배추들이 어찌 됐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김치는 모두 친가에서 올려 보내주기에 김치를 담그진 않았을 텐데.

시간이 흘러 이젠 엄마가 아닌 내가 퇴근해 들어온다. 차고 앞에 밤새 절인 배추를 보고 출근했는데 엄마가 홀로 김장을 다 마치고 집기들을 씻고 있었다. 미국 사는 딸 김치 담가주다가 전문가가 다 됐다. 혼자서 배추 두 상자 정도는 거뜬하다. 몸은 힘들어 보였지만 배추를 싸게 산 게 그렇게나 좋은지 얼굴은 환하게 피어있었다. 그날 식탁 위엔 온갖 배추 요리가 가득했다.

또 하나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 해엔 늦은 태풍 때문에 배춧값이 폭등했다. 김장철은 다가오는데 배춧값이 너무 올라 김치가 아닌 ‘금치’라는 말이 처음 생겨나기도 했다. 식당에 가도 배추김치 대신 장아찌나 양배추김치가 나왔다. 그러던 중 백화점 마트에서 파격적인 광고를 냈다. 한 포기에 오백 원. 단 하루의 기회. 엄마는 이 기회를 절대 놓칠 수 없다며 전단을 잘 챙겨뒀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다. 온종일 궁금했다. 엄마는 배추를 몇 포기나 사 올까? 다섯 포기는 들고 올 수 있을까? 그런데 돌아온 엄마의 손은 비어 있었다. 배추는? 엄마는 소파에 쓰러지듯 누웠다. 못 샀어. 사람이 너무 많아서.

김장도 안 하는 엄마가 왜 그렇게 배추에 목숨을 거는지 늘 궁금했다. 그저 싸다면 달려들어 손에 움켜쥐고 보는 게 인간의 본성일지도. 그건 엄마의 경우만은 아니다. 그날 밤 아홉 시 뉴스에 배추 이야기가 나왔다. 백화점 마트에서 진행한 배추 한 포기 오백 원 행사에서 한 명이 압사하고, 여러 명이 크게 다쳤다는 소식이었다. 고작 오백 원짜리 배추 몇 포기에 목숨을 잃은 여자의 장례식에서 어쩌다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누군가 물었다면 유가족들은 뭐라 대답했을까.

오늘도 퇴근하여 집에 돌아왔다. 엄마가 차고 앞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비도 오는데 밖에서 뭐 하냐고 물었더니 친구 따라 농장엘 다녀왔단다. 자연스레 눈이 휘둥그레졌다. 또 배추 사 왔어? 그러자 엄마가 다급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내 입을 막았다. 아니, 오늘은 고추만 사 왔어. 장아찌 더 만들어 놓으려고. 그날 식탁 위엔 온갖 고추 요리가 가득했다.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고추와 함께 씹어 삼켰다. 대신 속으로 외쳤다. 비싸면 안 먹어도 되고, 꼭 먹어야 한다면 까짓거 돈 더 주고 사면 되지. 우리 싼 맛에 목숨 걸진 맙시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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