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카지노 게임와의 조우
한 카지노 게임와의 조우
지인을 찾아가서 만나는 카지노 게임는 그 지인과의 관계에 영향을 받는다. 그 지인이 보여주는 카지노 게임가
내 첫인상일 수 있고 또 마지막 인상이기 쉽다. 나에게 함부르크는 홀로 있더라도 왠지 외로울 것 같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은 짐작을 심어주었다. 혼자라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인정하고 골몰하던 퍼즐을 다시 맞춰보는 기분이랄까.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했으므로 도중에 길을 잃고 방향을 잃고 갈피를 잃고 그저 멈춰서 오지도 가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우리는 어떤 시작을 생각하지 못한다. 그런데 시간이나 공간을 달리하면 같은 사물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시야가 생겨난다. 마치 숲 속에서, 산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이 새가 되어 건너편 산에서 길 잃은 이쪽 산을 조망하면 목적지에 이르는 루트를 찾아낼 수 있는 것과도 비슷한다. 조망이든, 관망이든, 현미경 안을 바라보는 미세한 관찰이 아니라 시간을 내다보고 뭔가 합리적인 계획을 세워서 차근차근 실행해 볼 수 있는 전망 섞인 견해를 도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심리적인 여유나 정신적인 여백 안에서 우리는 일부러 멀리 돌아가 길을 잃어보는 수고도 재미 삼아해 볼 수 있는 셈이다.
긴 겨울을 지나서 맞이한 이 봄에 나는 아들과 길을 나섰다. 내가 기차표를 예매하고 일정을 고민한 나름 주체적인 여행이다. 어느 순간부터 남편에게 의지해서 그가 계획하는 여정에 익숙해졌다가 이젠 그럴 수 없어서 물리적으로 내가 해나가야만 하는 상황에서야 결혼 전의 했던 것처럼 다시 나는 스스로 내 여행을 그려나갔다. 낯설고 익숙했고 혼자해야 한다는 것에 슬프고 부담스러웠다가 예전에 해냈던 기억에 기뻤다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마음도 고쳐 먹었다가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다고 스스로를 납득시키고 "그냥 했다". 기차표를 검색하고 검색하다가 적당한 가격을 고르고 선택하고 클릭하고 결제하고 티켓을 손에 쥐었다. "카지노 게임 시작하는 것이다." 어제 전혜린의 책에서 이 글귀를 읽고 마음을 쓸었다. 목적이 수단이 되는 것. 나는 여행하려고 여행하는 것이다. 떠나고 싶어서 떠나는 것이고 돌아올 시간이 되면 마음을 돌려 다시 갔던 길을 거슬러 집으로 올 것이다. 일단 떠나면 이 과정이 어떻게든 진행된다는 것을 나는 안다.
출발역을 벗어나 익숙한, 살고 있는 카지노 게임가 멀어지자 한동안 푸릇한, 동 터오는 들판이 눈에 들어왔다. 나를 감싸는 카지노 게임의 외겹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끝없이 달려도 끝없이 펼쳐지는 초록의 물결, 가물었음에도 물결이 흐르는 Saale의 물줄기. 나는 얼마나 복 받은 사람인가.
베를린을 벗어나자 햇살이 비췄다. 함부르크가 가까워올수록 가로수, 간의역사 그림자의 빛깔이 짙어졌다. 한없이 환해진 도시가 우리를 맞이했고 오래 달려온 기차가 멈춰섰다. 함부르크 중앙역 Hamburg Hbf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