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저는 종종 세상의 부조리함에 갇혀 살았습니다. "저 사람만 없었다면...", "만약 누가 나를 도와줬더라면..." 하는 후회와 원망은 마치 습관처럼 제 안을 맴돌았습니다. 당연히, 그런 생각 속에서는 그 어떤 변화도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모든 문제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으니, 제 스스로 무언가를 바꿔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것이죠.
남들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만연했기 때문이다. <부자들의 서재, 리치파카(강연주)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부터 그랬습니다. 성적이 좋지 않았던 건 부모님의 무관심 때문이라고, 섬세하게 칭찬해주지 않고 공부 잘하는 형제자매와 비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연애가 끝난 후에는 늘 상대방의 단점만을 떠올렸습니다. "성격이 너무 예민해서", "나를 너무 힘들게 해서"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합리화했죠. 심지어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화를 내는 순간조차, 그 모든 책임을 학생들에게 돌렸습니다. 저는 그저 착하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 아이들이 자꾸만 저를 자극한다는 억울함에 휩싸였습니다. 브런치 조회수가 낮거나 라이킷이 적은 날에는 어김없이 독자들을 탓했습니다. '내 글은 이렇게 좋은데, 왜 사람들은 알아주지 않는 걸까?' 라며 불만을 토로했죠.
남 탓은 끝이 없는 미로와 같습니다. 핑계를 찾으려고 마음만 먹으면, 어떤 상황에서든 그럴듯한 이유를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남 탓과 핑계의 가장 무서운 점은, 바로 제 삶의 주도권을 스스로 포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키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고, 그들의 행동과 반응에 따라 휘둘리는 수동적인 존재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요즘, 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밤 9시에 잠들어 새벽 5시에 일어나, 명상과 긍정 확언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책을 읽으며 마음을 정화하고, 좋은 문장을 발견하면 글을 씁니다. 글쓰기를 마치면 가볍게 운동을 하고, 활기찬 몸과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불과 며칠 사이에 어떻게 이렇게 극적인 변화가 가능했을까요?
“모든 건 내 탓.”,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된다.”라고 생각을 180도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모든 일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그 교훈을 통해 매일 조금씩 발전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부자들의 서재, 리치파카(강연주)
더 이상 외부의 탓으로 돌리지 않으니, 모든 경험이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부모님 탓이라고 여겼던 학업 부진은, 이제 스스로를 더 사랑하고 아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헤어진 연인과의 아픈 기억은, 나와 진정으로 맞는 사람을 알아보는 지혜를 길러주었습니다. 학생들에게 화를 냈던 순간들은,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마음을 키우는 연습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조했던 블로그 조회수는, 독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글을 쓰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하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며칠 전, 옆 반 선생님으로부터 다급한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저희 반 여학생 두 명이 화장실에서 몰래 간식을 먹고 있다는 내용이었죠. 작년의 저였다면 당장 아이들을 불러 호되게 혼냈을 겁니다. 하지만 그날, 저는 잠시 아이들을 불러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짠했습니다.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평소 지각이 잦던 아이였는데, 혹시 서두르느라 아침 식사를 거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쓰였습니다.
"배가 많이 고팠구나. 9시 전에 학교에 오면 지각이 아니니까, 그때 밖에서 든든하게 먹고 오는 건 어때? 화장실은 간식을 먹을 만큼 깨끗하지 않으니, 다음부터는 그러지 않도록 하자."
모든 것은 결국 저의 책임이라는 생각을 하니, 아이들에게 더 부드럽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엄마가 일찍 출근하시고 혼자 등교하는 그 아이는, 제가 생활기록부에 기록한 지각 때문에 마음 한편이 불편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 죄책감 때문에 아침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고 학교에 왔을 수도 있습니다. 제 탓이라고 생각하니, 아이의 상황을 더 깊이 이해하고 따뜻하게 다독여주고 싶었습니다. 아마 그 학생들은 이제 다시는 화장실에서 간식을 먹지 않겠지요. 제가 화를 냈다면 오히려 반항심에 더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이해와 공감 덕분에, 아이들도 저를 믿고 따라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경험도 있습니다. 얼마 전, 세탁기가 있는 다용도실에서 담배 냄새가 희미하게 풍겨왔습니다. 위층인지 아래층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아내는 "또 담배야." 하며 서둘러 다용도실에서 나왔습니다. 저는 괜찮다며 제가 가보겠다고 했습니다. 작년 같았으면 아내와 함께 누가 담배를 피우는지 찾아내어 비난했을 겁니다. 하지만 요즘은 그저 안타까운 카지노 가입 쿠폰이 먼저 듭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분도 많이 힘드신가 봐. 무슨 힘든 일이 있으셨나 보네. 피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참을 수 없을 만큼 괴로우셨나 봐."
그렇게 이야기카지노 가입 쿠폰 나니,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얼마나 힘드셨으면 다용도실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셨을까. 그분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어쩌면 저처럼 치매에 걸린 부모님을 돌보고 계실 수도 있고, 직장에서 견디기 힘든 어려움을 겪고 계실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은 결국 저의 책임입니다. 제가 엘리베이터에서 먼저 밝게 인사를 건네지 못했던 탓입니다. 그렇게 생각한 뒤로, 신기하게도 더 이상 담배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오늘은 그분이 부디 행복하시기를 조용히 빌어봅니다.
만약 요즘 제가 쓰는 글이 이웃님들과 독자님들의 마음에 깊이 와닿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저의 부족함 때문일 것입니다. 어제보다 오늘 더 나은 글을 쓰고, 오늘보다 내일 더 발전된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제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하고, 더욱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실 수 있도록, 끊임없이 쓰고 또 쓰겠습니다.
함께, 정상에서 만나요! 정상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