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수화 Mar 17. 2025

쩌릿, 쩌리릿!


지난 12월 중순 어느 날, 구순에 이르는 시아버지가 쓰러졌다는 소식이 시댁 단톡방에 ‘긴급속보’로 떴다.

광주광역시 대학병원에 도착하자, 이미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로 옮겨진 뒤였다. 카지노 가입 쿠폰이 가족 대표로 주치의를 만난 결과를 병원 로비에 있는 가족들에게 전했다. 연세가 있어 수술 결과가 좋아도 식물인간 상태를 면치 못할 거라고.

마치 눈앞에서 부모의 임종을 맞기라도 한 듯, 오열과 통곡이 이어졌다. 수술한 아버지 얼굴을 본 이는 가까이 사는 시누이 뿐이었다. 중환자실 면회가 엄격히 제한되어서였다.


중환자실 문이 교도소 철창처럼 굳게 닫혀, 전국각지에서 헐레벌떡 뛰어왔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일단 집으로 가서 향후 대책을 논의하자는 카지노 가입 쿠폰의 말에 이 차 저 차로 모두들 나뉘어 탄 채 시아버지 집에 모였다.

중환자실 면회일이 화ㆍ목요일 오전 8:30~09:00, 30분 동안이어서 바로 다음날 우리 부부를 비롯, 멀리서 온 자식들이 우선 면회하기로 했다.


너도나도 새벽을 가르며 달려왔던 탓일까, 각자 이 방 저 방 흩어져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시누이들이 안방을 차지한 까닭에, 나와 카지노 가입 쿠폰은 20여 년 전 아버님과 재혼하신 새어머니가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다른 방에서 몸을 뉘었다.


카지노 가입 쿠폰의 유학시절 3년간 큰아들을 맡아 길러주신 채무가 가없는 무게로 느껴졌다. 시어머니는 우리가 귀국한 지 2년여 만에 돌아가셨다. 그 일이 내겐 가장 슬프고 고통스런 불효로 자리매김했다.

그 후 새어머니와의 재혼….


파란만장했던 역사를 떠올리자, 정작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선 시아버지보다 22년 전 먼저 떠나신 시어머니가 떠올라 참을 수 없는 격정이 터졌다.

‘논과 밭, 바다로 종횡무진 다니며 손자를 보셨을…, 만약 아들을 맡기지 않았더라면 좀 더 사셨을까?’

“허어, 허어. 어어 엌엌 크읔엌엌….”


-아버님이 당신에게 그 날(?)에 대한 사과를 하시던가? 몇 번 말씀드렸는데….

꿈결인 듯 잠결인 듯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카지노 가입 쿠폰의 말에, 파노라마처럼 흐르던 눈물이 칼로 무 자르듯 뚝! 끊겼다. 이어 영화의 장면처럼 그 날(!)이 크게 확대되어 다가왔다.

카지노 가입 쿠폰의 유학과 현지에서의 직장생활로 30대를 거의 미국에서 보내고, 40대에 들어갈 무렵 고국에 돌아왔다. 카지노 가입 쿠폰은 대학교수를 꿈꿨지만 국내에서의 대학교수자리가 쉽지 않아 귀국을 주저했었다.

집안의 기대주 장남이 미국사람 되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시부모 때문에 미국에서의 모든 권리를 포기한 채 들어왔다.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반지하방을 임시 거처로 삼았다. 카지노 가입 쿠폰의 소속은 여전히 대기업이었으나 대학교수를 되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까닭에, 임용이 되면 학교 부근에 집을 장만할 생각이었다.

귀국 보따리를 채 풀기도 전에 보길도 계시는 시아버지가 올라오셨다.

‘하마터면 가장 잘난 아들을 미국에 빼앗길 뻔했다, 내 아들을 독차지 하려 한다’ 등의 말로 나를 곤혹스럽게 했다.


내일이면 가시겠거니 하는 날이 한 달로 이어졌다. 카지노 가입 쿠폰이 농담조로 ‘어머니 혼자 일하시는데 언제 내려가시냐고 묻자, 보길도 생활을 청산하고 우리와 함께 살 테니 집을 사라’고 일렀다.


이조시대 고옥에 갇힌 듯한, 남존여비 사상으로 무장된 시아버지에게 당신들과의 합가, 집 매매 등이 며느리 따위 눈치 볼 일이 아니었다.

예나 지금이나 큰돈은 카지노 가입 쿠폰이 관리해왔고, 맏이로 시부모를 언젠가는 내가 모셔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으므로, 나는 오로지 카지노 가입 쿠폰 결정에 따를 뿐이었다.


카지노 가입 쿠폰은 부모에게 순종적인 사람이었다. 결혼 후 부모에게 ‘No’라는 말조차 하는 걸 본 적 없었다. 유일하게 자신의 고집대로 한 일이 아마 나와의 결혼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런 카지노 가입 쿠폰이었기에 시아버지의 ‘집 장만 운운’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다.


귀국한 시기가 IMF 직후여서 집들이 대부분 헐값이었다. 미국에서 번 돈으로 강남이든 어디든 마음대로 골라 살 수 있었다.


미국에서의 살림살이가 한 달여 만에 도착했는데 포장도 뜯지 못한 채 방과 거실 한 켠 켜켜이 쌓아둔 채였다. 숨 막힐 듯 비좁은 집에 사느니 차라리 합가가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아버지가 잠시 시골로 내려간 날이었다. 늦은 밤 지친 몰골로 퇴근한 카지노 가입 쿠폰을 보자, 반가움과 동시에 연민이 일었다. 그러고 보니 카지노 가입 쿠폰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나는 모처럼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갖기 위해 미국에서 즐겨마시던 위스키를 꺼내 카지노 가입 쿠폰과 마주 앉았다. 그 자리에서 자신이 미국에서 번 돈을 주식으로 몽땅 잃었다고 고백했다.

-하아! 그 때문이었어? 돈이야 또 벌면 되지, 우리 젊잖아!

나의 위로는 진심이었다. 원래 경제관념이 없기도, 미용실을 운영하며 쏠쏠하게 돈을 벌고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카지노 가입 쿠폰의 실력과 능력을 믿었다. 언젠가 큰 성공을 거두리라는 믿음과 확신이 늘 내재돼 있었던 까닭이다.


며칠 후 시아버지가 시어머니와 함께 올라왔다. 미용실에서 늦게 퇴근한 날더러 기어이 저녁상을 차리게 하고 이어 술을 가져오라 일렀다.

어머니도 계시고 바로 옆집에 작은 아들이 살고 있는데도 일부러 나를 기다린 셈이다.


서울 집에 처음 오신 어머니에게 미안하고 민망하기까지 해, 최대한 감정을 자제하고 늦은 저녁을 지어 올렸다.

마주 앉기가 불편해 나는 싱크대에 선 채 밥을 국에 말아 억지로 ‘위장’으로 내려 보내는 나의 뒤통수에 날카로운 음성이 꽂혔다.

-너! 여어 꿇어앉거라!

-와따매, 참말로 와이런다요? 머한다꼬 여와서 이런저런 간섭해쌌소? 아아들 저거맘대로 살게두시오.

나를 편드는 시어머니를 우악스럽게 방으로 밀치곤 문이 부서지라 발로 ‘쾅!’ 차버렸다.


사시나무 떨듯 바들바들 떨며, 한 줌 먼지처럼 다소곳이 앉았다.

-○○(시누이)집 옆에 널찍한 아파트 나왔더라, 내일 나랑 같이 가서 계약하자! 이게 사람 사는 집구석이라? 일부러 시부모 못 오게 하려고 이딴 집을….

-아버님, 그이가 주식하며 돈을 다 잃었답니다.

-뭐, 뭐라아? 이 XX이? 지금 니가 내 앞에서 감히 지아비를 헐뜯는 거냐? 귀신을 속여라, 내 아들을 내가 잘 안다. 돈에 대해서는 철저한 사람이다, 절대 도박 같은 거 할 사람 아니다. 오호 니가 노름했구나?

-정말 왜 이러세요? 왜 이러냐구요?

순간, 술병이 허공을 나는가 싶더니, 눈에서 번개가 번쩍였다.

무지막지하게 며느리를 패는 짐승(!)을 안방에서 뛰쳐나온 한 인간(!)이 가까스로 말렸으나 역부족이었다. 손에 잡히는 식기류 등으로 어머니와 나를 때리고 부수었다. 바로 그때, 카지노 가입 쿠폰이 퇴근하여 돌아왔다.

이런저런 곡절을 겪으며 카지노 가입 쿠폰은 사업을 시작했고, 운이 좋았던지 그나마 순풍을 달고 항해했다. 시아버지의 며느리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져, 서서히 위치가 바뀌어갔다. 하지만 그 날(!)에 대한 응어리는 여전히 앙금으로 남았다.


날이 밝았다. 아침을 대충 챙겨먹고 모두 병원으로 향했다. 30분간 6명이 면회를 하겠다고 나섰으므로 한 사람당 5분씩이었다.

첫 번째 주자로 들어간 카지노 가입 쿠폰이 벌건 눈을 하고 나온 다음 내가 바통을 이었다.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온갖 생명장치들에 둘러싸인 희미한 생명체, 쿵쾅쿵쾅 펌프질하는 나의 심장소리가 꺼져가는 생명의 할딱임 소리에 박자를 맞추며 돌았다.

흐르는 눈물을 목으로 삼키며, 두 손으로 시아버지 오른 손을 힘주어 잡았다.

-아버님, 그날에 대한 사과를 하셔야죠, 이렇게 가시면 내내 원망과 한(恨)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으엌킄컥….

환자모니터 그래프가 급격하게 오르내리며 호흡이 가빠지는 게 느껴졌다.

-저에게 사과하신다면, 손에 힘 줘 보세요.

무당이 쥔 대나무처럼 파르르 떨리는 모니터를 배경으로, 희미한 진동이 느껴졌다. 환각인가 싶어 다시 확인했다.

-아버님, ‘미ㆍ안’하다고 생각하시면 두 번 힘 줘 보세요.

“쩌릿, 쩌릿!”

폐부 깊숙이 전해지는… 두 번의 진동!


그 후, 20여일 만에 시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