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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자타 Mar 08. 2025

온라인 카지노 게임(片鱗)

임유영(2023), 온라인 카지노 게임, 문학동네

온라인 카지노 게임


영화 속 장면들이 나열된 것 같은 시집. 다만 그 영화들의 파편들이 조금 섬찟하다. 치맛단이 무릎 위로 말려 올라간 소녀의 새 하얀 발목이 흙에 지저분해진 채로 장면의 귀퉁이에 걸려 있는 느낌이랄까. 동화책이라고 손에 잡았는데 읽고 나니 잔혹 동화고, 멜로 영환 줄 알고 봤는데 끝은 스릴러인, 뭐 그런 시집. 천진한데 어둡고 밝은데 습하다. 흰자와 노른자가 구분되지 않는 모양새로 뒤섞인 온라인 카지노 게임처럼, 구분되어야 할 것들이 한 데 섞여 물컹하고 부드럽고 폭신하고 말랑거리는 음식이 되었다. 입안으로 곧 삼켜질.


시가 써지는 이유는 휘발되거나 흘러가거나 보이지 않거나 붙잡고 싶은 무언가를 언어적으로 포착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지 않을까. 인간은 언어로 생각하고 언어로 느끼고 언어로 스스로를 정의하고 나아가 세상을 규정한다. 그러나 우리 안에 그리고 밖에는 그것 속으로 수렴되지 않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시는 그런 것들을 조금이나마 손에 쥐어 보고자 하는 덧없는 시도이자 덧없어서 의미를 생산하는 놀이일 테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드러나지 않는 마음과 시야에서 벗어난 장면을 언어로 끄집어낸다. 무지개색 사이사이에 숨은, 인간의 눈으로는 구분되지 못한 색들을 애써 망막에 그리려는 듯하달까.


그래서 아름다운 한편 처연하다. 앞뒤 맥락은 사라져 찾을 길 없고, 남은 것이라곤 카메라의 가장자리에 간신히 걸린 초점이 나간 희미한 이미지뿐이다. 가령 이미 폐허가 된 소녀의 몸 일부 같은. 아무도 보지 못하니 외롭고, 이 주위를 맴도는 것은 아직 현상되지 못한 필름의 잔상들밖에 없다. 이러한 풍경 곁에는 늘 죽음이 맴도니 축축하고 채도가 낮을 따름. 죽음이 부드러울 순 있어도 따뜻할 순 온라인 카지노 게임 법이겠지.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를 위해, 기억하고 잊지 않기 위해 소환해야 할 수밖에 없는 것은 머릿속 어딘가에 온라인 카지노 게임으로 남은 무엇이다. 부재는 평소에 그냥 지나치던 것들, 바늘만큼 가늘어서 시야에 걸리지 않던 것으로부터 불쑥 솟는다. 그럼에도 상실은 회복되지 못한 채 계속 아물지 않는 상처로 남고, 호명할 수 없는 마음은 관절 마디마디에 숨어들어 궂은 날이면 기어 나온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놓인 풍경을 그림으로써 형용할 길 없는 마음을 달랜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만든 사람과 먹는 사람, 식탁, 해가 뜬 아침 광경이 공존하는 그림.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만드는 마음은 이 그림 속에, 너무 사소하고 일상적이고 평범해서 지나치기 일쑤인 이미지들 안에 녹아있는 것 아닐까.


그림 속에 담겨/숨겨져 있을 마음이 궁금해서 읽은 시를 읽고 또 읽는다. 반복된 중얼거림에도 여전히 마음은 읽히질 않는데, 어쩌면 그게 우리들의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이렇게 읽히지 않는 마음들을 그저 정성스레 줍고 다정하게 이어 붙이기만 한다. 이 봉합술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제법 부드럽고 따뜻해서 죽음과 상실, 상처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가만히 웃을 수 여유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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