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연희(2021), 『폭설이었다 그카지노 가입 쿠폰은』, 아침달
헤테로성을 해체한다. 소녀와 언니의 밀회라든지, 콧수염을 달고 이분법적 성별 구분을 방해하든지. 시 속 화자들은 천진하고 해맑은 얼굴로 이성애적 사회를 퀴어적 문법으로 비튼다. ‘퀴어적’이라는 게 꼭 성애적이진 않으나 어쩐지 이 시집 속 ‘나’와 ‘언니’들은 보송보송하게 끈적인다. 손도 잡지 않았는데, 왜인지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나 상대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 속에 이미 한껏 몸을 섞은 다음의 뉘앙스가 그득하달까. 그저 내가 그렇게 읽고 싶은지도.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금기시될 때. 꺼내놓고 거부당하기도 전에 억압받을 때. 매 순간 사랑이냐 아니냐 저울질당할 때. 절망, 좌절, 혼란, 그리고 슬픔이 닥친다. 폭설처럼 몰아치는 감정 이후, 그다음에는 무엇이 올까. 적막과 고요. 언어로 형용되지 않을 자기 확신이 생겨나지 않을까. 그리고 유희가 시작되겠지. 콧수염을 붙이고 중절모를 쓰고 구두를 신고. 슈슈와 밍밍과 코코를 부르며 이 요지경을 다만 웃어넘기는 거다.
그러니 여름은 끝나지 않고 폭설이 예기치 않게 찾아와도 다음이 있다. 끝나지 않음이 이미 다음이고 폭설도 언젠가는 멈추기 마련이니. 사랑을 사랑이라 말하지 못하더라도 ‘나’는 온전히 알지 않는가. 자신 안의 사랑도 다 똑같은 사랑이라는 걸. 도래하지 않은 미래는 늘 이미 여기 안에 잠재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