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나의 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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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자수 Mar 03. 2025

카지노 쿠폰 속 비밀스러운 자아

대여섯살 때부터 나는 남자 아이들보다 목소리가 크고 괄괄한 골목 대장이자 놀이 대장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내 머릿 속은 ‘오늘은 누가 공터로 나올까? 무슨 놀이를 할까?’ 라는 생각으로 가득찼다. 상상 속에서만 뛰어놀 순 없지. 이불을 발로 휙 걷어 차고 밖으로 나왔다. 엄마의 빈자리가 유독 느껴지는 나지막한 집안 공기보다는 아무래도 바깥 공기가 더 활기찰테니 내 선택은 옳았다. 얼마전 엄마가 사주신 노오란 멜빵 카지노 쿠폰를 챙겨입고 대문을 나섰다. 골목골목을 뛰어다니며 회색 담장 너머, 자고 있는 동네 아이들을 깨웠다. 눈꼽조차 제대로 떼지 못한 아이들이 하나둘 모여 들었고 어설픈 인사를 나눈 후 곧장 사방으로 흩어졌다. 판판하고 널다란 정방형의 돌을 찾기 위해서였다.


오늘의 첫 놀이는 비석치기. 전쟁의 시작은 장비라고 했던가. 어떻게서든 좋은 돌을 누구보다 먼저 , 그리고 재빨리 쟁취하기위해 구석구석 뛰어다녔다. 각자손바닥만한 돌을 들고 나타난 우리들은 기고만장 해졌다. 어느 한 녀석이라도 빠졌을까 싶어 머릿수를 헤아린 후 한 목소리로 '데덴~찌‘를 외쳤다. 몇 번의 ‘데덴~ 찌’ 끝에 편이 나뉘었다. 어제 쓰다가 아무렇게나 던져둔 나뭇 가지로 땅바닥에 선을 그었다. 이제 시작이다. 저 멀리 서있는 상대방의 비석을 돌로 가늠한 후 한껏 노려보았다. 숨을 한 번 고른 후 비석을 맞히면, 상대방 비석은 펄럭하고 힘없이 쓰러졌다. 이번에는 비석을 가랑이 사이에 끼우고 세워진 돌을 쓰러뜨리는 놀이를 이어갔다. 이마저도 시시해지면 우리는 곧장 비석과 하나가 되었다. 비석을 발등, 머리, 등에 차례로 얹고 가서 땅에 곧게 세워진 상대의 돌을 쓰러뜨렸다.


비석치기 뿐만 아니라 사방치기도 그 시절, 우리가 즐겨하던놀이 중 하나였다. 사방치기는 땅바닥에 오징어 생김새와 비슷한 판 모양을 그린 후 한 칸 한 칸, 순서대로 돌멩이를 두고 그 사이를 뛰어 다니는 놀이이다. 이번에도 쉴새없이 그리고 날렵하게, 돌멩이가 있는 칸과 선을 용케 피하고 다녔다. 돌멩이 하나를 가지고 하루 온종일 즐겁게 놀던 시절. 그때의 나는 선머슴 같았고 동네 남자 아이들을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무엇이든 머심아보다 잘한다고 의기양양했던 나는 어느 날, 그들만의 리그인 오줌싸기 한 판에 참여했다. 해가 뉘엿뉘엿 떨어질 무렵, 슬며시 어두워진 틈을 타 개천가 나무 그늘 아래로 그들을 따라 나섰다. 비석치기, 사방치기 모두 졌던 카지노 쿠폰은 무엇이든 나를 이기고 싶어 안달난 사내 녀석들이었다.


“넌 오줌 어떻게 싸냐? 이렇게는 못 쌀 걸”

지퍼를 내려 오줌을 개천가 저편까지 쏘아대던 녀석들을 보니 자존심이 뭉개졌다. 코웃음을 치며 지퍼를 따라 내리고 싶었지만 한번도 해보지 못한일을 너희들보다 잘할거라 우길 자신이 없었다. “그래. 한번 해봐라. 해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집으로 돌아왔다. 혼자서 곰곰이 생각하던 카지노 쿠폰 오줌보가 빵빵하게 부풀어 오를때까지 참고 또 참았다. 전시에 나갈 준비가 되었을까?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겼다. 그 애들처럼 나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둠 속을 헤매이며 혼자서 집 뒷편 공터로 나갔다. 항상 쪼그려 볼일을 보던 내가 이번에는 당당히 두 무릎을 펴고 대지에 맞섰다.

‘이왕이면 힘차게, 이왕이면 멀리 보내보는거야’

지퍼만 내렸다가는 카지노 쿠폰가 온통 젖을 것만 같아 카지노 쿠폰를 발목까지 쭉 내렸다. 그리고 힘차게 내질렀다. “콸콸콸 쪼르르륵륵” 생각보다 오줌 줄기는 괜찮았다. 이 정도면 그 녀석들 코를 납작하게 해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마침내 결전의 그날이 다가왔다. 서너명의 사내 아이들과 카지노 쿠폰를 내리 깠다. 다같이 저멀리 시원하게 오줌을 갈기기로 작정하였다. 하나 둘 크고 작은 포물선이 그려지며 오줌 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불빛과 음악 소리만 없을 뿐이지 마치 홍콩의 심포니 오브 라이트 저리 가라할 정도의 멋진 분수쇼였다. ‘됐다. 이거면 충분하다. ‘ 싶었던 그때. 나의 오줌 줄기는 순식간에 사그라들었고 누구의 것보다 빠르게 대지 위에 안착했다.


왁자지껄 떠드는 웃음소리들은 그저 내 귀를 스쳐지나갔고 당당하게 대지를 지탱했던 나의 두 발은 구름 위를 걷는 듯 힘없이 후들거렸다. 시작은 그렇다치더라도 조준과 발사는 형편없었다. 누구보다 힘없는 발사였고, 이는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대결이었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그후로도 오랫동안 패자의 분노는 들끓었고 사내 아이들과의 경쟁에서만큼은 한사코 지지 않으려 애를 썼다. 여중을 다니던 시절엔 남자 아이들처럼 커트 머리를 한 채, 나무를 올라타기도 했고 동성인 여자 동기에게 러브레터를 받기도 했다.


그 시절, 나는 왜 그토록 남자 아이들을 이기고 싶었을까? 어찌할 수 없는 생물학적인 신체적 외형까지 바꾸고 싶었던 걸까? 실패를 인정하면서도 무엇 때문에 끝까지 놓을 수 없었을까? 가장 나에게 친근한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드의오이디푸스 컴플렉스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남근선망으로 여자인 내가 갖지 못한음경을 가진 그들을 부러워했을 수도 있겠지. 그럴 수도 있었겠다.하지만 어쩐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란 단어 하나로 퉁치자니 무언가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둘째 딸이었던 카지노 쿠폰 어른들의 한숨섞인 말을 많이 듣고 자랐다.

“네가 아들이었다면 …”,

“네가 아들 노릇을 해야한다.”

갑작스런 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빠마저 마지막 출근길에 엄마에게 했던 말은

“지영이가 아들 노릇을 할까?” 였단다.

누누이 들었던 말 속에서 나는 남편이 없는 엄마의 빈자리를, 아들이 없는 집안의 빈자리를 내가 채워야만할 것 같았다. 그리하여 나는 그토록 그들을 이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가질 수 없었던 ‘남자’라는 성을 가진 그들을 말이다. 억척같이 이기려했던 나는 그들 눈에 분명 정상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묻고 싶어진다.

남자가 여자보다 낫다고 여겼던,

딸보다 아들을 낳고 싶어했던,

아들만이 대를 이을 수 있다고 여겼던 남아선호사상이 과연 정상인 문화였느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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