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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민 Jan 19. 2025

레비나스 타자철학: 무료 카지노 게임 나아감의 교육적 적용

레비나스 타자철학: 타자의 무료 카지노 게임로 나아감 이해하기


레비나스의 타자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레비나스가 어떤 철학적 흐름에서 등장했는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우선 레비나스와 정반대에 있는 철학이라고 볼 수 있는 데카르트의 철학부터 레비나스와 궤를 같이 하는 포스트 모더니즘까지 아주 간단히 이해해 보자.


1. 데카르트는 '인간=기계'와 같다고 생각하였다.
기계와 같은 정교한 메커니즘에 입각하여 인간이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작동한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철학적 인식론으로부터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가 탄생하게 되고, 그로부터'주체'라는 개념이 탄생한다. 이렇게 탄생한 주체의 반대급부의 개념으로서 '객체'라는 개념도 나오게 된다.
객체라는 개념이 나오게 되면서 데카르트의 인식론은 객체에 해당하는 타자를 '대상화'하고 '도구화'하게 된다. 주체의 관점에서 대상으로서 사고되는 무언가이자, 주체의 능동적 행위를 위해 도구화되는 대상이 객체인 것이다.


2. 그러다가 포스트 모더니즘이 주류가 되면서, 데카르트의 주체는 죽음을 맞이한다.

현실에서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구조(주변)의 영향으로부터 독립적인 주체가 존재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교육학에 접목되게 되면서 주체적인 의식에 입각한 주지주의에 의해 피교육자를 대상화하고, 수단화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정당하지 못하다는 비판적 관점을 갖게 한다. 다시 말해 현실에서 이뤄지는 교육적 행위가 교수자가 피교수자를 타자화하고, 객체화함으로써 도구화한다고 본 것이다. 이를테면 교육부가 국가교육과정을 통해 학생들의 시민성을 기르고자 시민교육을 가르치는 것 자체가 학생들을 타자화하고 도구화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현대 교육학, 특히 '모든 사람들이 시민으로서 이 정도는 알아야 해'라는 사고로부터 태동한 공교육의 인식론적 종말을 예고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3. 이런 흐름에서 부버(Martin Buber)는 강력한 관계론적 철학을 내세우게 된다.
관계를 통해 인간은 무언가를 배우게 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 비슷한 흐름에서 하버마스는 의사소통적 상호주관성을 주장한다. 교수자와 피교수자 간에도 지식을 가르치는 주체와 교육을 강요받는 객체가 있는 것이 아닌 주체와 주체 간의 의사소통적 상호주관성을 이야기하게 된 것이다.


4. 같은 맥락에서 레비나스는 인간이란 '타자의 무료 카지노 게임에 응답하는 존재'라고 이야기한다.
즉 인간이 데카르트가 이야기하는 사유하는 주체이자, 생각하는 기계가 아니라고 본 것이다. 이를 통해 주체와 객체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의 무료 카지노 게임에 응답하는 응답성의 구조 속에서 연결되어 있다'고 본 것이다. 이는 타자를 대상화하거나 도구화하는 것이 아니라오히려 '타자에게 종속된 나'(sub-ject)라는 관점으로 확장된다.

위에서 제시한 여러 철학적 관점에 따라 어떻게 교육이 달라질 수 있는지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사고실험이 있다. 바로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각 학자들의 철학적 관점을 적용하여 이해해 보는 것이다.


5.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1) 동굴 속 사람들

어떤 사람들이 깊은 동굴 속에 갇혀 있습니다.

그들은 평생 동안 목과 손발이 묶인 채 벽만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그들의 뒤에는 불빛(횃불)이 있고, 불빛과 사람들 사이에는 벽이 있습니다.

(2) 그들이 보는 세계

불빛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물건을 들고 다니는데, 이 물건의 그림자가 벽에 비칩니다.

동굴에 갇힌 사람들은 이 그림자만 볼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이 그림자가 곧 유일한 현실입니다.

그들은 그림자가 어떤 소리를 내는 것을 들으면, 그림자 자체가 소리를 낸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꽃 모양의 물건을 들고 지나가면 벽에는 꽃의 그림자가 비칩니다. 동굴 속 사람들은 이 그림자를 보고 “이것이 꽃이다”라고 믿습니다.

(3) 동굴 밖으로 나간 사람

어느 날, 한 사람이 동굴에서 풀려나 밖으로 나갑니다.

처음에는 동굴 밖의 빛 때문에 눈이 부셔서 아무것도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눈이 익숙해지고, 그는 동굴 밖의 진짜 사물(꽃, 나무, 하늘 등)을 보게 됩니다.

이제 그는 그림자가 아니라 사물 그 자체가 현실임을 깨닫습니다.

(4) 진실을 알게 된 사람의 고민

동굴 밖의 진실을 본 사람이 다시 동굴로 돌아옵니다.

동굴 안의 사람들에게 “우리가 보던 그림자는 진짜가 아니다! 진짜 세계는 밖에 있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동굴 속 사람들은 이를 믿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보는 그림자가 전부다! 네가 잘못 본 거야!”라고 비웃습니다.

(5) 이 비유가 의미하는 것

플라톤은 이 비유를 통해 사람들이 진리와 지식을 깨닫는 과정을 설명하려 했습니다.

동굴 속 그림자는 우리가 흔히 접하는 겉모습이나 편견, 잘못된 지식을 상징합니다.

동굴 밖의 빛은 진리와 참된 지식을 상징합니다.

동굴 밖으로 나가는 과정은 교육과 철학적 성찰을 통해 진리를 깨닫는 과정을 나타냅니다.

진리를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이를 전하려 하지만, 오히려 거부당할 수도 있다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결국 동굴에 갇힌 죄수가 동굴로부터 나와 바깥세상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바깥세상을 보고 진리를 깨달은 '교육적 주체'가 반드시 필요하며, 따라서 교육적 행위란 교육적 주체가 깨달은 진리를 해당 진리를 깨닫지 못한 피교육자에게 '행하는 것'이 된다.


6. 플라톤 입장에서 설명하자면'동굴 밖의 빛, 진리를 알게 된 교사 중심적 관점'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플라톤이 왜 민주주의를 중우정치로 폄하하며, 철인정치를 주장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데카르트와 연결해 보자면, '합리적 진리를 깨우친 누군가가 아직 진리를 깨우치 못한 사람들에게 해당 진리를 가르쳐야 한다'라고 볼 수 있다.


7. 이러한 이원론적 의식철학의 흐름은 칸트에게도 연결된다.
칸트는 계몽되지 않은 사회와 개인이 계몽된 사회와 개인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봤고, 이를 동물vs인간, 미성숙vs성숙, 결핍존재가 훈육/문화화/문명화/도덕화를 통해 자유, 자율, 이성, 성숙의 이원론적 인간론으로 표현한다. 칸트 입장에서 동굴의 비유는 결국 미성숙한 존재가 성숙한 존재로 나아가기 위해 계몽되어야 하는 것이고, 이 계몽은 역시 교육학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교수자가 피교수자를 타자화하면서 진행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칸트는 교수자가 피교수자를 계몽하는 것이 오히려 피교수자의 자율을 키워내기 위해 불가피하다고 보았다. 그가 원칙을 중시하는 정언명령을 강조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칸트는 강제가 불가피하고, 어떻게 하면 이 강제 가운데에서 자율을 키워낼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된다고 보았다.


8. 하지만 포스트 모더니즘은 무지vs진리, 미성숙vs성숙, 비이성vs이성의 이원론적 세계관을 부정한다.
따라서 이들은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 자체를 부정한다고 볼 수 있다. 포스트 모더니즘을 주장한 Kamlah의 언급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그 인간’에 굳이 다다라야 할 필요가 없다. 우리 자체가 이미 인간이기 때문이다."

(Kamlah, 1973: 30; Ricken, 1999: 228 재인용)


9. 이러한 포스트 모더니즘의 맥락에서 레비나스는 타자철학, 타자의 윤리학을 개진해 나간다.

우선 타자는 '무료 카지노 게임'로 대변된다. 레비나스에게 타자 철학은 무료 카지노 게임의 현상학이다. 왜냐하면 무료 카지노 게임은 설명될 수 없고, 그 자체로 마주하는 입장에서 가깝게 여겨지며, 그 자체로 타인에게 느낌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무료 카지노 게임의 속성은 타자화되고, 객채화되지 않는 타자를 대변한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레비나스는 "타자는 지식의 대상도, 경험의 대상도 아니다. 그저 나는 무료 카지노 게임로 나아간다."라고 말한다.

10. 레비나스가 무료 카지노 게임로 나아간다는 것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첫째, 무료 카지노 게임의 정직함과 연결된다. "무료 카지노 게임의 살갗은 발가벗었고 헐벗은 채로 있다. 무료 카지노 게임은 위협 앞에 노출되어 있다. 무료 카지노 게임은 우리의 살인을 금지한다." 즉 무료 카지노 게임 자체가 뿜어내는 윤리적 메시지가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우리가 누군가의 무료 카지노 게임을 마주하면서 폭력을 저지르는 것보다 익명성의 가면 뒤에 있을 때 손쉽게 폭력을 자행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무료 카지노 게임은 상황 없는 뜻. "무료 카지노 게임은 뜻이다. 상황 없는 뜻이다. 어떤 컨텍스트가 필요 없다." 이는 무료 카지노 게임을 절대화하는 것으로, 객체로서의 대상화를 거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무료 카지노 게임의 윤리적 명령. "무료 카지노 게임은 오직 자신에 대한 의미다. 무료 카지노 게임과의 관계는 곧바로 윤리다." 이는 무료 카지노 게임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윤리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넷째, 무료 카지노 게임은 말한다."무료 카지노 게임은 말하고, 나에게 대답의 책임을 부여한다." 이는 무료 카지노 게임이 그 자체로 '나'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그에 (윤리적으로) 대답할 책임을 부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섯째, 무료 카지노 게임이 지우는 빛. "무료 카지노 게임이 지우는 빛은 응답하지 않은 수없음의 관계, 응답하지 않을 수 없는 윤리성이다." 수많은 무료 카지노 게임들을 마주하는 내가 어쩔 수 없이 응답해야 할 빚을 갖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섯째, 무료 카지노 게임은 관계의 책임. "무료 카지노 게임은 관계적 책임으로서 서로가 응답적 관계로서 대하게 한다." 이는 마주한 무료 카지노 게임에게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하고, 윤리적인 관계를 맺어야 함을 의미한다.


11. 레비나스의 무료 카지노 게임로 나아감을 교육에 접목하면 어떤 부분들을 비판적으로 볼 수 있게 될까?

레비나스의 무료 카지노 게임로 나아감을 교육에 접목하게 되면 교수자로서의 나, 주체, 자아의 역할은 수동적이며 소극성을 띄어야 한다. 이와 달리'관계'가 매우 중요해지고, 이는 관계중심성을 넘어 '타자중심성'에 입각한 교육이 이뤄져야 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전통적 교육학은 레비나스의 입장에서 상당히 폭력적이라고 여겨진다.교수자가 주체로서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피교수자에게 가르치는 형태로 교육이 행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가르침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여러 방식(ex. 무시, 잠)을 통해 거부하는 피교수자들이 무지한 사람 취급을 받게 되는 것도 폭력이라고 여겨진다.


12. 레비나스의 무료 카지노 게임로 나아감을 실제 교육에 적용하는 것은 어렵다.

그렇다면 타자중심성에 입각한 교육은 도대체 어떻게 이뤄질 있을까? 이러한 타자철학에 입각한 교사의 역할은 무엇일까? 사실 실제 교육에 적용되는 관점에서 레비나스의 무료 카지노 게임로 나아감은 많은 한계를 지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실제 교사가 레비나스의 무료 카지노 게임로 나아감을 극한으로 구현하고자 하였을 때 '윤리적 소진'이 거의 99.9%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실제 20~30명의 학생들의 무료 카지노 게임에 모두 책임을 지며, 관계중심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불가능한 미션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말이 '관계중심적 성장'이지, 실제 현실에서 구현되는 관점에서 교사는 '어떤 내용을 교육해야 할지'를 알 수 없게 된다. 즉 타자에게 내가 생각하기에 옳은 것을 교육하는 폭력을 자행하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교육해야 할 '내용'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극한으로 학습자가 '교육 내용마저도 온전히 선택할 수 있는 학습자 중심 교육을 구현'하지 않고'어떤 내용을 다룰지 교사가 정하게 된다면' 레비나스의 타자철학을 구현한 교육이라고 보기 어려울 이다.


13. 물론 간접적으로 레비나스의 무료 카지노 게임로 나아감이 적용될 여지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교육과정을 만들고, 재구성하는 관점에서는 레버나스의 무료 카지노 게임로 나아감이 교육에 적용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교실상황에서 교수자와 학습자 간의 '상호작용' 측면에서는 응답성의 구조로 설명이 가능할 것 같다. 이를테면 쉬는 시간 교수자와의 대화, 교수자가 보이는 삶의 태도 및 모습과 같은 것들이다.

이러한 레비나스의 타자의 무료 카지노 게임로 나아감은 좁은 의미의 교육과정으로서 제공되는 교육을 넘어선 '의도되지 않았지만 교육적 효과를 일으키는 의사소통'의 맥락에서 구현될 것이다.


나아가 획일적인 교육 시스템과 사회구조 속에서 '발달과업에 실패하는 학생들의 무료 카지노 게임에 응답하고자 하는 교수자의 태도'로 연결될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맥락에서교수자는 학습자의 무료 카지노 게임에 종속된 주체(무료 카지노 게임에 대한 윤리적 책임)가 되는 것이다.


14. 레비나스의 무료 카지노 게임로 나아감이 필자의 교육행위에 가져다준 시사점

내가 만나는 학습자분들을 위해서 교육과정을 구성할 때, 나는 어쩔 수 없이 레비나스의 입장에서는 '폭력적'인 것 같다. 매지로우가 이야기하는 전환학습의 관점에서 학습자들이 마주한 문제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을 내재화할 수 있도록 교수자인 나의 관점에서 교육과정을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당 교육과정을 통해 학생들을 만날 때, 내가 생각하는 대로 관점이 전환되지 않는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는 레비나스의 무료 카지노 게임로 나아감이 적용될 수 있는 것 같다. 물론 요즘 교권 붕괴 등 여러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고, 이러한 맥락에서 많은 교수자들이 타자의 무료 카지노 게임로 나아가지 않고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현실적으로 한국의 교육 현장의 절대적 진리가 되어버린 법률 만능주의에 의해 타자의 무료 카지노 게임에 책임을 지려고 노력하게 되었을 때 오히려 법적 이슈에 휘말리는 등 '고난의 길'을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도 최근에 학교 교사가 아님에도 이러한 고난의 길에 빠져들 뻔한 적이 있다. 실제로 겪을 뻔해보니 정말로 레비나스의 무료 카지노 게임로 나아감을 현실에서 지킨다는 것이 쉽지 않겠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일을 몇 번 더 겪으면, 교수자로서 타자의 무료 카지노 게임에 책임을 지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생각보다도 더 나약한 나라는 인간의 한계를 느끼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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