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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방구리 Mar 21. 2025

나는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가?

누가 아이들에게 미래라는 짐을 지워주었나

"나의 사랑아, 이제 네 눈을 떠봐요.

삶의 참된 의미를 찾아보아요.

네가 올라 있는 그들은 너의 사랑

이제 내려와 모두 함께 노래 불러~"('꽃들에게 희망을'/ 낙산중창단)


책도 책이지만 이런 노랫말로 시작되는 생활성가를 무척 좋아했다. 트리나 폴러스의 책 [꽃들에게 희망을]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성가다. 아주 오래전에 읽고, 여러 번 반복해서 읽으면서 언젠가 꼭 한 번 고학년 아이들과 함께 읽어보고 싶었던 책. 드디어, 올해 새로 만난 5학년 아이들과 두 주간에 걸쳐 읽었다. 아니 읽어 주었다.


열네 개의 눈망울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아이들은 책의 내용에 빨려 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 저런!" "어머나!" "어떻게 해..." 이야기가 전개되어 감에 따라, 놀라거나 안타까워하는 아이들의 감탄사가 추임새처럼 들려왔다. 충분히 몰입해서 읽었음을 확신한 나는 업된 나머지 아이들에게 이런 주제의 글감을 주고 만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다고 해도 고작 열 살 남짓한 아이들이라는 걸 잊은 채.


'나는 무엇을 위해 공부를 하는가?'


공부를 잘하면 나중에 좋은 대학을 갈 수 있고 좋은 대학을 가면 좋은 회사를 갈 수 있고 좋은 회사를 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돈을 많이 벌면 잘 살 수 있다. 그리고 돈을 많이 벌면 원하는 음식이랑 원하는 책 원하는 물건을 살 수 있다.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그리고 공부하지 않으면 엄마 아빠가 감옥에 가기 때문이다....

키도, 몸도 제법 자랐으니 이제 슬슬 '인문학'을 공부하고 싶은 내 마음과는 달리, 아직 '또봇' 세상에서 헤매고 있는 M의 글은 이러하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의 글도 M의 글과 대동소이하다. 미래의 나를 위해 공부를 한다는 것인데, 아이들의 '미래'에는 '좋은 대학과 좋은 회사, 많은 돈'이 있다. 아이들이 이런 미래밖에 꿈꾸지 못한다는 사실이 그다지 놀랍지는 않았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가 그러하고, 그 어른들 안에는 나도 속해 있기 때문에 사실 할 말이 없다. 내가 죄인, 어른이 죄인일 뿐.


돈이 있으면 맛있는 것도 자주 먹고, 가고 싶은 여행도 있는 현실이니까 돈을 벌기 위해 좋은 회사를 가고, 좋은 회사를 가기 위해 좋은 대학을 가야 한다는목표는 일견 타당하다. 그래서 아이들은 지금 가기 싫은 수학 학원, 영어 학원도 가고, 쓰기 싫은 글쓰기도 하고 있다. 돈을 많이 주는 회사가 '좋은' 회사인지, '좋은' 회사는 '좋은' 대학을 가야만 있는지, '좋음'에 대해 토론하고 싶었지만 일단은 참고 넘겼다. 언젠가 다시 이야기할 날이 오겠지 생각하면서.


일곱 명 아이들의 글에는 모두 공부하는 이유가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라고 씌어 있다. 이쯤 되면 아이들이 지고 다니는 백팩이 내 눈에는 '미래'라는 돌덩이를 넣은 등짐으로 보인다. 누가 아이들에게 이런 무거운 짐을 지워 주었나. 미래는 아이들이 책임지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아이들이 잘 살도록 현재의 어른들이 잘 만들어 두어야 하는 것이다. 아이들이아이들답게 살 수 있는 시간은 고작 십 년인데 너희의 미래를 위해 너희의 현재를 희생하라고 하는 건, 아이들에게 너무 가혹한 처사다.


그렇게 읽어 내려가는 중 S의 글이 손에 박힌 가시처럼 까끌거린다.

... 세 번째 이유. 솔직히 지금은 놀고먹고 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미래(의) 내가 직장을 다니게 되면, 몇 시간 동안 설거지하거나 몇 시간 동안 운동 가르치는 것보다는 공부를 해서 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이유로 공부를 하는 것 같다.

공부를 해서 다니고 싶은 미래의 직장이 S에게몸을 써서 일하는 노동의 현장은 아닌가 보다. S도 학교 급식실에서 밥을 먹고, 태권도 학원에서 운동을 가르치는 학원 강사들을 만나고 있다. 여러 시간 많은 아이들의 식판을 닦아내는 급식실 아주머니들을, 자신을 가르치고 있는 학원 선생님들을 '공부를 하지 않으면 하게 될 일'로 보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된다. 엘리베이터에서 한 엄마가 아이에게 택배 노동자를 가리키며 "너 공부 안 하면 저 아저씨처럼 된다."라고 했다는 그런 비슷한 글을 어디선가 읽은 것 같은데, S가 혹여나 내 밥그릇 설거지해 주는 저 아줌마처럼, 내게 줄넘기를 가르치는 저 아저씨처럼 되기 싫어 공부하는 건 아니길 간절히 바랐다.


내가 만나고 있는 아이들 역시 이미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기둥을 타고 오르는 행렬에 섞여 버린 애벌레들인지도 모른다. 기둥 끝에 무엇이 있을지 직접 가보지 않으면 포기하지 못하는 애벌레들처럼 살게 될지도. 이 아이들에게 새로운 삶이 있다고 직접 보여주는 노랑 애벌레가 없다면 아이들은 자신 안에서 나비가 될 가능성을 끝내 찾지 못할 수도 있다. 그저 남들이 다 하니까, 남들이 그렇게 사니까 그게 전부인 줄 알고 기둥을 오르게 한다면, 나비가 될 아이들을 애벌레로만 살다가 죽게 하는 걸 텐데...


아이들이 먹고 자는 것 외에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공부를 단지 '미래'를 위해서 아니, 행복을 보장해 줄 것처럼 아이들을 꼬드기는 대학과 취업과 돈을 위해서 하지 않으면 좋겠다. 수학도, 영어도, 아니 나와 함께 하는 이 글쓰기 시간만이라도. 그러려면 지금 이 순간 행복하기 위해 즐겁게 공부하는 바로 그 모습을 내가 보여주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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