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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Dec 26. 2024

<2 “미술사에 큰 획을 긋는 카지노 게임 추천 될 거야.”

-암기력이 무척 나빴던 열등생, 파블로 피카소

*파블로 피카소(1881~1973)=스페인 출신 카지노 게임 추천. 입체주의 미술시대를 연 20세기 최고의 작가. 5만 여 점의 그림과 조각품을 남김. ‘아비뇽의 처녀들’ ‘게르니카’가 대표작.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국에서의 학살’을 그림.



파블로 피카소는 천재 카지노 게임 추천라 불린다. 11세 때 그린 토르소 소묘나 14 때 그린‘맨발의 소녀’ 같은 작품을 보면 신동임에 틀림없다. 스페인과 프랑스 등지 피카소 미술관에 가보면 그의 위대한 작품들에 나 같은 그림 문외한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천재라는 찬사는 그림에 한해서다. 그의 소년 시절을 더듬어보면 전반적으로 열등생이다. 그림 이외 학업에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뒤떨어졌으며, 말썽쟁이 학교 부적응 아이였다. 초등학교 시절 산수 과목을 유달리 어려워했으며, 난독증까지 겪었다. 아무리 가르쳐 줘도 책을 읽거나 쓸 줄을 몰랐다. 학교에 가지 않으려고 꾀병부리기 일쑤였다.


“피카소는 일반 과목, 특히 산수 과목을 지겨워했다. 그는 또 암기력이 무척 나빴다. 다 큰 녀석이 알파벳 순서도 제대로 외우지 못한다며 피카소의 부모는 자식이 문맹이 되지나 않을까 걱정했다.”(‘발견자 피카소’ 김원일, 동방미디어북스, 2002)


소년은 기본적으로 그림을 제외하고는 무슨 공부든 싫어했다. 학교에서는 늘 주위가 산만했으며, 수업시간에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다녔고, 창문 너머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곤 해 교사들이 애를 먹었다. 수업 시간에 교실을 빠져나가 몰래 교장 사택에 숨어들기도 했다. 무용수처럼 예쁜 교장 부인을 가까이서 보기 위해서였단다.


하지만 피카소는 그림에 특별한 취미와 재능이 있었다. 무명 카지노 게임 추천이자 미술 교사인 아버지 영향인지도 모른다. 네 살 무렵부터 그림을 그렸다. 학교 가기 싫다고 떼를 쓰다가도 비둘기를 주면 가져가서 날갯짓하는 비둘기 모습을 그리곤 했다.


“피카소는 이웃에 사는 아기에서부터 노인까지 뭇사람들의 표정과 동작, 짐승과 새, 숲, 산, 바다, 자연의 변화를 잘 그려냈다. 그의 뛰어난 소묘 실력은 타고난 재능이었다기보다 그의 날카로운 관찰력과 눈에 띄는 대로 쉴 새 없이 그리는 근면성이 빚어낸 당연한 결과였다.”(‘발견자 피카소’ 김원일, 동방미디어북스, 2002)


결국 아버지는 그를 미술학교에 보냈다. 그림이 아니면 평생 제 앞가림하기 힘들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아버지 근무 학교를 따라 14세 때 옮겨간 문명도시 바르셀로나는 그를 카지노 게임 추천로 키운 보금자리이다. 전통을 자랑하는 라 론하 미술학교에 입학했지만 엄격한 아카데미즘으로 무장한 학교 수업에는 맞지 않았다. 자꾸 불평을 늘어놓자 아버지는 하는 수 없이 별도의 작업실을 얻어주었고, 그곳에서 그는 자기만의 그림 공부에 매진했다. 이때부터 피카소의 그림 실력은 일취월장했으며, 출품하는 작품마다 상을 받게 된다.


이즈음 피카소에겐 큰 꿈이 생겼다.단순히 카지노 게임 추천가 되는 꿈이 아니라 세상에 이름을 떨치는 위대한 카지노 게임 추천가 되는 꿈 말이다. 그는 이런 다짐을 했다고 한다. 마음 다짐에 그치지 않고 가족과 친구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각오를 다졌다.


“나는 세계 미술사에 큰 획을 긋는 위대한 카지노 게임 추천가 될 거야.”

“두고 봐. 나는 그림으로 반드시 억만장자가 되고 말 거야.”


피카소라고 곧바로 명성을 떨친 것은 아니다. ‘우울한 카지노 게임 추천’ 반 고흐만큼은 아니지만 그도 고된 무명시절을 경험했다.23세 때 프랑스 파리에 겨우 마련한 화실은 ‘세탁선’이라 불리던 허름한 건물 다락방이었다.심하게 헐어 밖에서 보면 지하실 창고 같았고, 전기가 들어오지도 않았다. 램프 기름 살 돈이 떨어지면 왼손에 촛불을 들고 그림을 그리곤 했다.


쉬지 않고 그렸지만 제값을 받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림에 관한 한 천재란 소릴 듣고 자랐으나 고작 한 끼 빵과 포도주를 사기 위해 그리는 가난한 청년 카지노 게임 추천였을 뿐이다. 화실 근처 선술집에서 술 한잔 얻어먹으려면 스케치를 여러 장 그려줘야 했다.


하지만 위대한 카지노 게임 추천 되겠다는 꿈 하나는 분명했다. 당시 최고 카지노 게임 추천이던 앙리 마티스를 따라잡겠다는 것이 목표였으니 자신감은 차고 넘쳤다. 과감하게 도전장을 던졌고, 초대형 그림 ‘아비뇽의 아가씨들’이 첫 결실이다.26세 때 그린 이 걸작은 처음 마티스에게 악평을 받았지만 카지노 게임 추천 최초의 입체주의 작품으로 기록되었다. 그의 입체주의 관점은 회화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며, 현대 추상미술의 기초가 되었다.


그의 명성은 날로 높아졌고, 30대 중반쯤부터 유럽에서 최고 값을 받는 카지노 게임 추천로 자리 잡았다. 백만장자, 천만장자, 억만장자가 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학업 열등생의 꿈은 이루어졌다. 어릴 적 그토록 산수 공부가 싫고, 단어 외우기가 힘들었지만 성공 가도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카지노 게임 추천가 되겠다는 꿈이 워낙 강렬했기 때문일 것이다. 월트 디즈니는 이런 말을 남겼다.


“꿈을 꿀 수 있다면 그 꿈을 이룰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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