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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잡스 유진 Mar 18. 2025

카지노 게임

라라크루화요갑분글감

● 라라크루의 화요갑분글감



아버지는 건재상을 하셨다. 못과 망치, 비닐과 포대들이 어지럽게 섞인 그 공간은 '만물상'이라는 말이 잘 어울렸다. 집에서 필요한 작은 못부터 큰 공사 현장에서 쓰이는 부품까지, 없는 물건이 없을 정도였다. 어린 내 눈에는 아버지의 가게가 보물창고였다.



아버지 가게에 들를 때마다 몰래 챙겨오는 물건이 있었다. 카지노 게임였다. 마이마이, 삐삐, 시디플레이어 등 당시 내 삶 속엔 카지노 게임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 물건이 많았다. 가게에 갈 때마다 진열된 카지노 게임를 슬쩍 집어 들곤 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다 알고 계셨던 것 같다. 딸이 가게에 올 때마다 카지노 게임를 몇 개씩 몰래 가져간다는 사실을 말이다.


마음껏 가져가도록 일부러 못 본 척하셨던 것 같다. 부모가 된 지금에서야 그 조용한 배려의 깊이를 알아차린다. 자식들에게 무엇 하나 부족함 없이 해주기 위해 애쓰다 보면, 내 몸의 카지노 게임가 방전된 듯 피곤해질 때가 자주 있다.



최근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보면서 나는 부모의 삶에 크게 공감한다.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부모에게는 힘겨운 노력과 희생이었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드라마 속 부모의 모습이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이제 부모가 된 나 자신과 겹쳐지며 마음이 뭉클해졌다. 나 또한 지금 내 아이들이 부족함 없이 자랄 수 있도록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도 우리 집 한쪽엔 항상 카지노 게임가 넉넉히 쌓여 있다. 꼭 필요하지 않은 순간에도 카지노 게임를 사서 모으는 습관이 아직 남아 있다. 가끔씩 왜 그렇게 사는지 나 자신도 의아할 때가 있지만, 아마도 그것은 아버지가 나에게 주었던 무언의 사랑을 내 방식대로 기억하며 이어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하루를 살아간다. 내 몸의 카지노 게임는 소모될지라도,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다시 충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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