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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티콘 Apr 27. 2025

나의 책 이야기, ‘세계 카지노 게임 전집’

내 어릴 적에 우리 집 책꽂이에 세계 카지노 게임 전집 여러 권이 있었다. 정음사(正音社)에서 출판한 책들이었다. 금색(金色)과 검은색으로 고급스럽게 디자인한 북케이스에 녹색 하드커버로 장정(裝幀)한 책이 들어가 있었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I/II/III』, 지드의 『좁은문/배덕자/법왕청의 지하도/전원교향악』, 카뮈의 『이방인/페스트/전락 외』, 호머의 『일리어드/오딧세이』, 위고의 『레미제라블 I/II/III』, 조이스의 『율리시이즈 I/II』 등등. 책을 펴면 흑백 작가 사진에 얇은 반투명 종이가 덧대어 있었다. 본문은 세로쓰기로 되어 있었고 줄 바꿈도 우측에서 좌측으로 진행하였다. 군데군데 한자도 섞여 있었다. 국민학교 교과서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나로서는 유명한 서양 작가들이 쓴 대단히 어려운 책들이라는 것밖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어린 나에게 명작이란 범접할 수 없는 금단의 영역이라는 관념을 심어준 세계 카지노 게임 전집을 집안으로 들여온 사람은 나보다 열세 살 먼저 태어난 맏언니였다. 여고에 입학하면서부터 한 권 두 권 사서 읽은 책들이 십여 권을 넘었다. 얼마 전에 맏언니에게 그 책들을 다 읽었냐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정말? 도서관에 뻔질나게 드나들며 책 읽기에 도전하는 나에게는 아직도 어려운 책인데 어떻게 읽었냐고 따져 물었더니 돌아온 답변은 “그냥 읽었어.” 오십 년 전 일인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면서도 그때는 다들 그렇게 읽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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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는 다르게 정음사의 세계 카지노 게임 전집뿐만 아니라 삼중당문고, 글방문고 등을 두루 읽어냈던 『속물 교양의 탄생』의 저자 박숙자는 그 시절 그렇게 읽었던 행태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런데 교양의 의미를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식민지의 교양은 ‘식민성’의 프레임과 연동하면서 ‘교양의 식민화’ 과정으로 흐르는 징후가 역력하다. 단적으로 ‘교양을 하다’의 함의가 현실화되는 과정에서 ‘명작’의 의미가 ‘좋은 책fine work’에서 ‘유명한 책famous work’으로 변용되어 번역되었다. 명작에 담겨 있는 ‘좋은 책’이라는 의미가 ‘목적’이 되는 대신, 타인의 인정을 위한 ‘도구’로 활용된 것이다.

(『속물 교양의 탄생』, 박숙자, 푸른역사, 2013, 11쪽)

저자에 따르며 맏언니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이 세계 카지노 게임 전집을 선호하게 된 풍토가 시작된 시기는 일제강점기부터였다. 해방 후에도 그러한 풍토는 이어져 교양 있어 보이려면 유명한 세계 카지노 게임 전집 몇 권 정도는 읽거나 소장하고 있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세계 카지노 게임 전집이 교양(敎養)을 함양하는 도구가 아닌 남들에게 보여주어 교양(驕揚)하기 위한 속물적 수단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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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주장에 나도 찔리는 구석이 있다. 도서관에서 제일 먼저 들르는 곳이 세계 카지노 게임 전집 서가다. 민음사 책들을 살펴보다 몇 권 빼서 한두 장 훑어보고 다시 꽂는다. 바로 옆에 있는 을유문화사와 열린책들과 카지노 게임동네의 책들도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이 그렇게 거친다. 그러고 나면 품위와 지성이 ‘업’되는 느낌이 든다. 때로는 몇 권 대출하기도 하지만 태반이 제대로 읽지 못하고 반납 절차를 밟는다. 끝까지 읽은 책들도 소화율은 바닥이다. 그래도 나는 ‘언젠가는 읽고 말 거야!’라는 근거 없는 신념으로 끊임없이 세계 카지노 게임 전집에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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