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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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여인 정심. 그녀는 학살당한 가족의 유가족이면서 모든 비극의 목격자이자 경험자이다. 정심은 삶과 죽음의 두 가지 가능성이 종결되지 않은 오빠 정훈의 흔적을 찾아 한평생을 보낸 여인이며, 지옥에서 돌아온 사내를 남편으로 받아준 여인이다. 나이를 따라 침범한 치매에 사로잡힌 처지에서도 잘려 나간 가족에 대한 ‘환지통’으로 극심한 아픔을 느끼며 살다 갔다. 두 번째 여인 인선. 그녀는 한평생을 고통과 비애로 엮인 삶을 사는 어머니의 등을 보며 자랐다. 젊었을 때는 그런 어머니가 미워 가출도 했던 사진작가이자 동시에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한국군에게 몸이 부수어진 베트남 여성과 독립군을 돕다가 탈주하는 눈밭에서 발가락을 잃은 만주벌판의 여인 그리고 한없이 허허로운 자신의 삶을 인터뷰하며, 아리고 아픈 역사의 칼날 위를 지나간 여성들의 신음을 녹음하고 상흔들을 녹화한다. 세 번째 여인 경하. 경하는 소설 작가로서 오월의 참상을 소설로 써낸 다음 극렬한 고통과 우울증으로 자살의 늪에 빠졌다가 인선을 만나면서 다시 사월의 비극적 참상에 영혼을 베이는 인물이다.
정심이 온 ‘삶’을 다해 가족을 찾으며 가시밭길 같은 삶을 지나왔다면, 인선은 사진과 다큐라는 ‘빛’으로 여성 인권의 유린 현장을 고발하면서 수평적, 사회적 지평에서 전달자로 살아간다. 또한 경하는 소설이라는 ‘말’로써 한국에서 벌어진 민간 인권 유린의 진상을 수직적, 역사적으로 파고들면서 아픈 진실에 공명한다. 경하의 내면에서 오월 광주의 아픔은 제주의 사월이 겪어야 했던 아픔으로 공명한다. 두 극점에서 울리는 아픔은 서로 마주 울리면서 몸을 떨며 운다. 울림은 정심을 강타하고, 나아가 인선을 흔든 다음, 경하에게까지 퍼져 나가 전율하게 한다.
세 여성 화자는 이야기의 중심부로부터 나온 파장을 온몸으로 맞으며 물속 같은 역사 속으로 미끄러진다. 온몸이 젖고 기어이 잠수한다. 정심과 인선은 시대적으로 이어져 있고, 인선과 경하는 사회적으로 매듭지으며 연쇄된다. 인선은 사월의 비극을 역사적으로 물려받았으나, 그녀의 ‘삼면화’ 작업은 세 개의 에피소드를 사회적으로 넓혀가는 양상으로 진행되고, 경하는 사월의 참극을 인선과 인선의 가족을 통해 사회적으로 전달받고 있지만, 그녀의 글쓰기는 여린 영혼의 촉수를 가냘프게 떨어대며 오월과 사월의 역사적 연결고리를 하나하나 끼워 나간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