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늙음에 대하여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시각을 확인하니 새벽 1시 40분. 어머니 방이며 거실이며 부엌이며 켜 놓은 실내 등빛으로 내가 자는 방까지 훤하고, 잠귀 속으로 파고드는 달그락대는 소리 때문에 잠이 깬 듯하다.
나가보니 돌아 서서 등을 보인 채로 조리대 앞에 서 있는 노인이 있다. 구부정한 허리를 지탱하고는 무언가 몰두 중인 노인은 틀림없는 어머니였다.
"엄마, 지금 뭐 해?"
뒤돌아 나를 보는 어머니의 표정은 무연하게 온화했다. 새벽 1시 40분에 온 집을 밝혀두고 부엌에서 무언가에 열심인 사람이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 반응하는 사람치고는 너무도 태연하고 평온한 표정이었다. 그것은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에서 나누는 인사와도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내가 가까이 가서 확인한 배수통에는 배추 속알을 가지런히 가득 뜯어 물에 담가논 상태였다. 또 김치를 담글 요량으로 배추를 재신 터였다. 이웃에 살며 가끔씩 들여다보는 큰누님이 올 김장김치를 가져다 김치냉장고에 넣어둔 지가 달포도 안 됐다. 그런 줄을 또 잊어 먹으신 게 분명했다. 또 무슨 김치를 담근다고 이러시냐니까 김장할 때큰딸년이 밭에 흘린 부스러기들이 아까워서 주워 온 것이라며 변명을 하신다. 양념이 없어서, 하다 말았다고 못내 아쉬워한다.
나는 이제 골도 안 난다. 전에는 이런 이치에 안 맞는 짓을 하면서도 생떼를 부리며 고집을 피우는 모습이 밉기도 했지만. 그래서 핏대를 세우기도 했지만 그런다고 어머니의 증세가 좋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모든 의학자와 의사들이 매달려 공부하고 연구해 왔으리라. 누구는 사랑하는 늙어가는 어머니를 위해, 다른 누구는 돈 만드는 도깨비방망이를 찾는 심정으로 젊어지는 샘물을 찾거나 늙지 않는 풀을 찾아 헤맸겠지만, 아직은 못 찾은 불로초가 아니던가.
카지노 게임 이때다 싶어 약봉지를 찢어서 드시게 한다. 먹었다며 안 먹겠다고 하시는 걸 못 들은 척하며 주전자에서 식수를 받은 후 내가 건넨 대여섯 개의 약들을 입에 틀어 넣으시고 물을 머금는다. 매일 두 시간씩 드나드는 요양보호사도 이웃에 사는 큰누나도 이기지 못해 못 먹인다는 그 약을 카지노 게임 선선히 먹게 할 수 있다. 정신이 어두워지는 순간에도 당신 앞에서 먹으라며 악봉지를 뜯어 주는 아이가 당신이 살아생전 얼마나 아끼던 아이인지를 알기 때문일까. 깜깜한 치매의 깊은 어둠 속에 갇혀 있는 동안에도 한때는 금쪽같던 아들이 요구하는 거라면 무엇이든 다 들어주겠다는 어미 된 마음이 발동해서일까.
"엄마, 지금 카지노 게임 두 시예요. 이만 주무시는 게 좋겠어요"
평소 같으면 골을 낼 만도 한데, 어쩐 일인지 평온하다. 아무 말도 않고 나에게 등을 보이고는 다 늙은 나무늘보처럼 어머니 특유의 느린 움직임으로 가만가만 걸어서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닫으셨다. 그런 뒤에야 나는 부엌 등을 끄고 내 방으로 들어왔는데, 마음이 시리다. 다시 어머니 증세가 나빠지기 시작하나 보다 싶으니, 멍멍해진다.
어머니의 노쇠는 쇠락과 회복을 널뛰듯이 반복하며 매일 매야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다. 그 바닥 모를 늙어짐과 어두침침한 잊어버림의 시간 속으로 뱅글뱅글 맴을 돌듯이 늙음의 정중앙 쪽으로 미끄러지고 있는 중이다.
좋아질리는 없겠으나 그래도 제정신으로 돌아와 있는 동안은 내가 더 행복해져, 일상으로 회귀라도 한 듯이 나는 군다. 아무 일없이 다시 살 수 있을 듯이 죽음을 향해 질주하는 어머니가 아니라 다시 젊어진 건강하고 생기 넘치는 낯꽃으로 어머니가 아침 인사를 해주는 환영을 꿈꾸는 것이다. 그러면 좋을 것이라는 바람을 가져보는 것이다.
노망 증세도 사라지고 몸도 더 튼튼해지는 상상을 해본다. 어릴 때 계집애들이 놀던 고무줄 끊고 달아날 때 등 뒤로 쫓아오던 그때 그 비명 소리와 욕지거리를 듣듯, 저승사자의 뜨악한 표정과 함께 경악하는 소리를 맞닥뜨리더라도 아주 어려진 젊은 시절, 생기발랄하고 강인했던 우리 어머니의 얼굴과 몸, 태연함이랑 의연함을 보았으면 싶어지는 새벽이다.
2024.12.27 01:40~03:05
카지노 게임잠을 놓치고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