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뉴요커 3월호
아마 중국계 카지노 게임인으로 추측되는 마이클 루오Michael Luo는 더뉴요커지의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그는 올 해 4월에 그의 첫 책인 <카지노 게임땅의 이방인들- 소외, 소속, 그리고 중국계 카지노 게임인들의 인상적인 이야기의 출간을 앞두고 있다.
그는 더뉴요커지 3월호에 '록 카지노 게임 비극'이라는 글을 기고했다. 이 글은 1885년 9월 2일에 카지노 게임 와이오밍주 록 스프링스라는 도시에서 일어난 '록 스프링스 대학살'에 대한 글이다. 이 사건으로 약 5백명이 살던 차이나타운이 백인 광산 노동자들의 폭력으로 불에 타 전소되고 28명이 처참하게 살해당한다. 카지노 게임 내의 뿌리깊은 '아시안 혐오'에 대한 글이다.
트럼프는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우한 바이러스, 차이나 바이러스'라고 부르자고 해서 그 뒤로 카지노 게임에 아시안 혐오 폭력이 급증하게 만든 전과가 있다. (반면, 카지노 게임 캔자스 주에서 발병한 독감은 '스페인 독감'으로 명명되었다) WTO는 인종혐오를 피하기 위해 질병명 등에 특정 지역을 언급하는 것을 금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카지노 게임인의 아시안 혐오는 당장 카지노 게임에서 살고 있는 202만명의 한국계 카지노 게임인들을 위험으로 몰아넣을 뿐 아니라, 한국에 주둔하는 28,500명의 주한미군의 지위에 관한 협정인 'SOFA'가 어떻게 한국을 무시하는지, 그들이 한국인을 어떻게 대하는지에도 영향을 미친다.
전국 각지 시골에까지 있는 소위 '원어민 교사'들의 상당수도 카지노 게임인들이며, 한국에 사는 15만 4천명의 카지노 게임인들이 한국인을 어떻게 대하고 한국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쓰는지에도 영향을 미친다. 무엇보다도, 카지노 게임이 아시아를 상대할 때의 태도를 결정한다.
루오는 이 글을 통해 학살의 현장이 어떠했는지, 그 비참한 실상을 상세하게 전한다. 중국계 카지노 게임인들은 카지노 게임의 거대철도회사, 유니온 퍼시픽 철도회사가 대륙횡단철도를 건설할 때, 백인 노동자보다 더 싼 임금으로 더 위험한 일에 투입되었던 이들이다. 오늘의 카지노 게임이 있게한 노동자들이다.
빨간색 화살표시가 와이오밍주 록 카지노 게임다
그런데 횡단철도가 완공되면서, 이들은 같은 회사가 운영하는 석탄 광산업에 종사하게 된다. 그러면서 백인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의도치 않게 뺏게 된다.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장비들을 회사가 운영하는 곳에서만 값비싸게 사게 하고, 겨울 성수기를 앞두고 이미 한계치인 작업량을 더 늘리라는 말도 안되는 요구를 계속했다.
이에 노동쟁의를 택한 백인 노동자들의 파업을 무위로 만든 것은 회사측의 중국인력 투입이었다. 지역사회는 점차 이들을 노골적으로 증오하게 된다.
결국 9월 2일에 백인 노동자들은 같은 노동현장에서 일하던 중국인 광부들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총으로 무장한 채 차이나 타운을 급습한다. 거주민들에게 앞으로 한 시간 줄 테니 그 안에 모든 짐을 챙겨 떠나라고 통보한 뒤, 삼십 분만에 그들을 공격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보이는대로 쏘아 죽였다. 그렇게 28명이 총에 맞아 죽거나 숨어있다가 불에 타 죽었다. 그리고 백인들은 그 자리 위에 공립학교를 세워 흔적을 지웠다.
그 과정에서 백인들은 중국인들이 목숨 걸고 벌어들인 막대한 금과 돈을 탈취한다. 도망친 중국인 가족들은 지역교회 목사에게 가서 피난처를 구하지만 그 목사조차도 그들을 외면한다. 아무것도 없는 산으로 들로, 철길을 따라 도망친 이들 중 여럿은 굶주림에 시달리다 못해 분변을 먹으면서까지 버틴다. 결국 어떤 가족은 아버지가 갓난 아이와 엄마를 죽이고 자신은 자살을 선택하여 온가족이 몰살 당한다.
회사는 강경대응을 하겠다면서, 샌프란시스코항을 통해 본국으로 귀환하고자 하는 중국인들을 강제로 다시 록 카지노 게임로 돌아오게 만든다. 폭동을 주도한 주모자들이 구속되어 재판을 받지만, 그들과 지역사회를 두려워한 증인들이 아무도 증언을 안해서, 결국 '아무도' 처벌받지 않고 사건이 종결된다. 나중에야 지역 의회는 유가족들에게 소소한 보상금을 주어 사건을 무마하려 한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나는 공포와 분노로 손이 덜덜 떨렸다. 비참한 마음이 들었다. 나도 아이가 있기에, 맨발로 도망쳤을 그 가족을 상상하며 깊은 비탄에 젖어들었다. 그러고도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니. 지금도 그 살인자들의 후손들은 분명히 록 카지노 게임에 살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카지노 게임이구나, 싶은 것은, 시가 누리집에 이 학살 사건을 공식 소개하고 있고, 2023년에 이르러서지만 2만 5천 달러의 예산으로 추모비를 건립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시 정치인 입장에서는 표 떨어지는 거 밖에는 안 될, 귀찮고 부끄러운 역사를 굳이 지금 이 시점에 세우는 것이다.
카지노 게임인들은 일본인들을 참 좋아한다. 자신들과 대등하게 항공모함까지 건조하며 지독하게 싸웠던 적으로서 그 문명을 인정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전쟁 무기 실험'이라고 할 만한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으로 희생된 수백만 명의 일본인들(징용된 조선인들 빼고)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하나 그와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일본계 카지노 게임인 억류 수용소Japanese American Interment' 사건이다. 1941년 12월 7일에 하와이 진주만에 선전포고도 없는 비열한 공습으로 수많은 미군과 민간인을 죽인 '진주만 공습' 이후로, 카지노 게임 내에서는 일본인들이 본국과 내통할지도 모른다는 근거없는 반일감정이 폭발한다.
당시 카지노 게임내 거주중인 일본인은 12만5천명으로 그 중 8만명이 카지노 게임에서 태어나 카지노 게임시민권자인 2세대들이었다. 1942년 2월에 미 전쟁부는 법무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2개의 수용소를 서부 해안가로부터 떨어진 내륙에 짓는다.
아이다호, 와이오밍, 유타, 콜로라도, 애리조나와 같은 사막같은 불모지에 일본계 카지노 게임인들을 강제 이주시켜 수용소안에서 살게 했다. 마지막 수용소가 폐쇄된 것은 전쟁 후인 1946년에 이르러서였다.
이들은 자신들이 살던 집과 상점, 회사 등을 모두 헐값에 백인들의 손에 넘기고 떠났으며 2천명은 자신들의 자동차가 안전하게 보관된다고 들었지만, 결국 미군은 이 차들 또한 강제징발한다고 협박해서 헐값에 사들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계 카지노 게임인들은 용감하게 전쟁에 참여해서 태평양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공헌한다. 1976년에 가서야 제랄드 포드 대통령이 행정명령 9066을 통해 공식적으로 사죄했고, 1982년에 대통령 특별위원회는 이 사건이 인종차별에 근거했다고 보고한다. 1988년에 미 의회는 8만명의 시민권자들에게 각 2만 달러씩을 주는 법안을 통과시키게 된다.
여기에 우리는 1992년 4월 29일부터 5월 4일까지 계속된 'LA 폭동'을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백인 경찰들이 백인 부자 주거지를 보호하기 위해 아예 한인타운을 버려서 흑인 폭도들에 의해 상점과 집들이 약탈당하고 불탔던 사건이다. (물론 흑인들의 반한감정은 고용주였던 한인들이 흑인들을 게으르다며 차별해온 역사에서 기인한 것은 잊지 말아야할 것이다)
타임지 표지모델로 등장한 적이 있는 한국계 카지노 게임인 캐시 박 홍은 시인으로서 아시안 차별과 혐오를 신랄하게 비판한 '마이너 필링스Minor Feelings(한국에도 같은 제목으로 번역됨)'라는 책을 출간했다. 거기에 보면 아직도 카지노 게임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내밀하게 아시아인들을 혐오하고 차별하는지 잘 나타나 있다.
이제는 대놓고 차별은 못한다. '차별금지법'덕분이다. 하지만 마이크로 어그레션micro aggression이라고 해서, '수동 공격'과도 비슷한 미세한 차별과 상처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딱히 뭐라 집어 말할 수는 없고, 뭔가 뒷맛이 찝찝하고 은근 기분 나쁘게 만드는 일들은 카지노 게임에 사는 아시아인들에게 흔하디 흔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동시에 캐시는 '우리 안의 인종차별'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한다. 왜 혐오는 반복되는가. 왜 혐오의 피해자들은 또다시 혐오의 가해자로 변신하는가.
우리가 '록 스프링스 대학살'과 '일본계 카지노 게임인 수용소'를 기억하는 것만큼, 우리는 우리가 저지른 '베트남 전쟁 민간인 학살'과 지금도 벌어지고 있을 동남아에서의 인종차별 뿐 아니라 한국에서 벌어지는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착취를 기억해야만 한다.
그리고 약자들에 대한 폭력은 항상 그들이 투쟁했어야할 거대 회사의 부당한 대우가 아니라, 더 손쉬운 약자들에게 향했다는 불의도 기억해야 한다. 우리도 우리 처지의 불안과 부당한 대우를 한국 사회구조에 대한 비판과 저항이 아니라, 손쉬운 '외노자, 조선족 혐오'로 대체하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