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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반스토니언 May 01. 2025

카지노 쿠폰 어떤 유니버스를 삽니까

많은 종교들은 보통 '내세'에서의 삶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현세에 살면서도 내세에서의 영원한 행복을 추구한다. 다만 유교는 조금 예외다. 공자는 내세에 대한 제자들의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려주지 않았다. 유교는 내세보다 현세에서 충효를 다하며 입신양명하는 것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조금 특이하다.


내세에 대한 희망은 시궁창 같은 현실에 큰 위로가 되기도 카지노 쿠폰. 현세에서는 찢어지게 가난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을지라도, 내세에서는 올바르게 산대로 크게 이름을 떨치며 성인의 반열에도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앞의 글에서 말했듯이, 조지 오웰이 '동물농장'에서 등장시킨 모세라는 새가 주장하는 '슈가캔디 산'에 불과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내세를 추구카지노 쿠폰면서 현세의 불의와 싸우지 않고 외면하는 것이다.


요즘 한 저명한 신약성경 학자가 쓴 복음서 성경공부책을 번역하고 있다. 마커스 보그,라는 이 신약학자는 적어도 보수적인 학자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성경공부의 결론이 그저 '예수믿어 천국가자'였을거 같으면 나도 이 작업을 맡지 않았을 것이다. 보그는 그리스도교가 2천년간 믿어온 것도 최신 연구성과를 통해 주저하지 않고 거부카지노 쿠폰.


그는 두 가지를 주장한다. 하나는 성경에 나오는 모든 내용이 역사적, 과학적 사실이어서 믿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성경의 많은 이야기들은 중동의 신화소와 여러 구전전승에서 유래한 것이다. 같은 사건에 대해 4개의 다른 이야기가 존재하는 복음서만 봐도 그렇다. 그는 예수의 부활이 과학적 사실인지에 대한 논쟁 같은 건 '카지노 쿠폰 원하는대로 믿으라'고 말한다.


그는 인간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 의미를 주는 이야기의 힘이라고 말카지노 쿠폰. 정말 그럴까?


가짜뉴스가 하나의 세계관을 만들어 평소 사람들의 가려운 구석을 긁어주며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는 것을 보면, '사실 여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무엇이 모두에게 엄정하고 동일 동질한 진리인지를 검증하는 것은 근대의 산물이다. 지금은 후기근대사회, 포스트모더니즘의 세상이다. 그런 진리란 없고 있더라도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상황에 따라 변한다.


근대인들은 과학적 사실을 발견하는 것에 열광했고 그것이 시대정신이었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아무리 놀라운 발견일지라도, 자신과 관련이 없으면 무시하고 만다. 개개인의 의미와 이야기가 훨씬 더 중요한 세상이다.


가짜뉴스도 그러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데, 그보다 더 나은 인간행동을 위해서는 도대체 어떤 세계관과 이야기가 필요할까?


백신음모론자들에게 아무리 노벨상받은 과학자를 들어 그들의 자료는 틀렸다고 말해도 듣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모두가 한가지를 요구하는 것'에 본능적인 불편감와 위협감을 느끼고, 소수의 부작용이라도 주목해달라는 마음이 있다. 그건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의 문제다. 논파하기보다 공감하고 차분히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우리는 '중국과 북한이라는 거대하고 전지전능한 세력이 남한 전복을 위해 수단방법을 안 가리며 이미 많은 사람들을 세뇌시켰으니, 나라도 정신 똑바로 차려서 불의한 세상에 항거하자! 제2의 독립운동이다!'라는 이야기보다 더 나은, 힘 있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는 인명에 피해를 주는 의견 외에 모든 의견을 포용한다. 당신은 혐오의 세계에 살라, 나는 포용과 자유의 힘을 믿으련다! 결국 자유가, 사랑이 이긴다!' 이념이나 사상이 아니라, 이런 정도의 구체적인 간증과 신앙고백이 있어야 그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고정관념과 혐오를 부추기는 사건보도뉴스 한 개에 열 명의 '그렇지 않은 이야기'가 필요하다.


보그는 또한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복음이란 것이 '예수가 내 죄를 위해 대신 죽었고 나는 그로인해 용서받았다'는 '대속'교리는 적어도 이 복음서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고 지적카지노 쿠폰. 중세에 안셀름이라는 저명한 신학자에 의해 개발된 교리라는 것이다.


예수가 죄에 대한 대가로 죽었다는 게 복음이 아니라,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가 왔다!'는 것이 기쁜 소식이라는 것이다. 예수의 많은 행위들은 그것을 증명하는 상징적인 행위들이었다. 병자가 낫고 사탄이 쫓겨나며 억눌린 자들에게 해방을 주는 것이 복음이라고 말카지노 쿠폰.


그저 '대속'때문에, '나'는 구원받았으니까, 하는 현실도피의 종교인으로 살지 말라는 말이다. 신앙이란, 몇가지 원칙 목록을 지키는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보다는 어떻게 그 나라의 존재를 알아채며, 나도 그 통치를 보여주는 상징적 삶을 사는지에 관한 문제다.


그리스도교가 가진 '위험성'은, 모든 왕, 황제, 독재자들이 싫어하는 이야기를 계속카지노 쿠폰는 데에 있다. 지상의 이 나라 말고, 더 참된 나라가 존재하고, 다른 이가 통치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일제는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성경의 부분들을 읽고 설교하지 못하게 금지했던 것이다.


우리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윤석열의 독재 치하에서 달디단 독재의 열매를 누린 이들이 가진 세계관에 대항해서, '그 시대가 더 일사불란했다'는 이야기에 대항해서, '아니, 민주정권 하에서 우리는 더 번영했다'는 이야기를, 훨씬 더 많이 남겨야 한다. 그들이 그렇게도 휘호와 비석에 집착하는 이유는 그들의 이야기를 영구히 남기려고 하기 때문이다.


보그에 의하면 참 종교는 사실여부의 지엽말단에 매달리고 이기적 구원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사실이 아니라, 지금, 현재,의 사실, 그 이야기, 개인이 아니라 '우리'에 대한 이야기를 더 중히 여기라는 말이다.


꼭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자본주의 신화를 신앙하며 산다. 자기계발서가 그 성경이며, 부유하고 윤택한 삶을 전시하는 소셜미디어는 대성당의 화려한 유리화(스테인드글라스)처럼, '천상의 이미지'를 믿게 만든다. 우리는 돈의 신성함과 전지전능함을 믿는다. 신앙한다.


그리고 그 세계관에 지쳐버린, 탈진한 사람들이 또 있다. 그들은 아무리 '노오오오오오력'을 해도 안되고 결국 알고보니 다 '수저의 힘'이더라, 될놈될이고 나는 안되더라는 신화를 믿는다.


그런 세상인 것 같더라도, 모두가 그렇게 사는 것 같다가도, 우리는 문득 김장하 선생 같은 '증인'을 본다. 전혀 다른 세상, 다른 나라를 '증명'한 경우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거기에 착안해서, 그것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하면서,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골똘히 고민해 보는 것, 나는 그것이 '우리 모두를 위한 기쁜 소식'이며 참 종교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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