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거니 Mar 30. 2025

다른 사람 책 내카지노 게임 추천 게 훨씬 쉽더라

일단 표지 초안을 만들었다

원고는 다 써놓고서 이런저런 바쁜 일에 치여 미루기를 한참, 기존에 만들어둔 내지 디자인도 엎고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리라 책상 앞에 앉았다. 생각해 보면 출판 에디터로 살 때에는 숨 쉬듯 책을 냈는데, 기획부터 편집, 출간까지 후루룩 해치웠는데,이게 내 일이라 생각하니 한없이 더디다.


책 출간은 크게 기획, 집필, 편집, 제작, 유통, 마케팅 정도의 단계로 나뉜다. 그중 기획은 크게 편집기획과 집필기획으로 구분하는데, 전자가 '어떻게 책의 꼴을 만들지'를 정하는 절차라면 후자는 '무슨 내용을 쓸 것인가'이다. 이상적으로는 기획이 완벽하게 세팅되고, 이후 집필과 편집이 들어가야 하지만 현실이 어디 그렇게 만만돌이던가.


책을 쓰다가 좋은 디자인이 있으면 뒤적거렸다가, 아 근데 마케팅은 어떻게 하지 했다가 결국 '내 책은 쓰레기야' 모먼트를 맞이하며 회피하다가 다시 주섬주섬 마음을 다잡곤 하는 게 보다 흔한 풍경이다. 나름 출판 에디터 출신이라지만 나 역시 그러하다. 책을 낼 때마다 겪는 환장파티다.


책의 타깃도, 주제도 명확하다. (아직까진 그렇게 생각한다) 이제 책의 꼴을 갖추어야지, 하고 눈에 힘을 준다. 책의 비주얼이라 함은 크게 두 가지다. 표지와 내지. 책의 핵심은 물론 내용이지만 비주얼 역시 (어쩌면 내용 이상으로) 중요하다. 단순히 예뻐야 하니까,라는 이유라기보단 손에 잡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게 생각보다 중요한 탓이다.


창작물을 만든다는 건 의외로 허공을 휘젓는 기분이다. 지난한 구상과 자료 수집, 퇴고와 수정, 좌절과 간간이 찾아오는 보람의 연속이다. 이때 중심을 다잡아줄 무언가가 있다면 효과적인 동력이 된다. 출판에서는 비주얼과 실물이 그 역할을 한다. 다만 책이 나오기 전까지 책을 보거나 만지는 건 불가능하므로, 결국 볼 수라도 있는 건 표지나 내지다.


처음에는 디자이너에게 맡길까 하고 잠깐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내가 해보자고 달려들었다. 내 책 2권도 다 내가 직접 디자인했고, 표지만 100개는 만들어봤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중이 제 머리 못 깎는 순간을 다시금 맞이했다.


레퍼런스를 수없이 찾아보고, 집에 있는 청소년책도 뒤적거렸지만 이거다 싶은 사례가 없었다. 내가 뚝딱뚝딱 만들기에는 난이도가 있거나, 끌리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 책'이라는 생각에 힘을 너무 세게 준 것 같다. 대충 해서도 안되지만 경직되어서도 안 되는 게 창작의 영역, 나아가 일의 천성이 아니던가.


힌트를 얻은 건 의외로 '어른들이 보는 에세이'에서였다. 쨍한 단색 배경에 단순한 일러스트가 도리어 선명하게 다가오는 표지였다. 해당 표지의 레이아웃과 느낌을 살려 디자인을 했고, (자칭) 기획실장을 맡고 있는 아내는 반려를 했다.


색감을 바꾸고, 제목에 힘을 주는 과정에서 힌트를 얻었다. 며칠이나 끙끙대던 시간이 무색하게 하루 만에 디자인을 마쳤다. 일단 초안은. 그 과정에서 책 제목도 바뀌었다. (확정이 되면 공개할 예정이다.)


지금껏 책을 많이 만들어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매 순간이 새로운 얼굴을 하고 찾아온다. 일의 맛이란, 출판의 맛이란 이런 것이다. 그래서 책을 내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