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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lla Apr 16. 2025

#8. 엄마! 여기 조기카지노 게임요!

2026.3

한국생활은 여전히 갈팡질팡, 그런데 벌써 두 달이 넘어가고 있다.

12살이나 드신 매그너스 이 글은 부산에서 대전으로 긴 여행을 하고 오셨음에도 엔진소리는 그 어는 1살보다도 듬듬하다. 모양새도 매끈하게 빠진 블랙의 신사처럼 어깨가 둥그렇지 않고 남성화 코끝처럼 날씬해서 그 안에 앉아있는 한 명의 남성과 세명의 여성분에게 매력의 향기를 더 해주고 있다고 난 생각 중인데...

"카지노 게임! 이게 무슨 냄새야?"

"카지노 게임! 너무 지저분해!"

그래, 내 생각하곤 다르다. 그녀들은 중고차에 길들여있을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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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결혼식 날짜를 정한 날에도 차가 없었다. 학생이었는데 어디서 그런 돈이 있었을까!

금은방에 가서 14K 금반지를 샀고 학교 게시판에 붙어 있는 "내 차 팔아요"라는 광고를 보고 당시 750 DM( 현 시세로 750유로)을 주고 18살 빨간색 Fiat Panda를 사서 결혼식날에 남편 연구소 친구들이 콜라캔, 호나타캔등등을차 뒤에 매달고 "우리 방금 결혼했어요"라고 길거리 모든 사람들한테 들으라고 달렸었다. 18살 빨간색 Panda.

남편이 직장에 들어가고 어느 정도 경제적인 여유가 있음에도 우린 중고차를 선호했고 그다지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왜 꼭 새 차를 사야 하는지, 어차피 새 차들도 어느 날부터는 수리하는 날이 오는데 좋은 조건의 차를 싸게 사서 잘 쓰면 되는 게 아닌가!라는 게 남편의 기본철학이고 나도 어느샌가 세뇌되어 있었다. 한국으로 오기 전까지 사용했던 차들은 오렌지색 그리고 빨간색으로 나의 취향과는 너무 먼 컬러였지만 중고차를 사면서 컬러까지 욕심을 부리는 건 낭만이라고 여겼었다.

그런데 한국에 파견근무 와서까지 남편은 중고차를 원했고, 사실 회사차를 받을 수 있었음에도 남편은 거절했다. 어차피 부대비용은 우리 부담이고 복잡한 절차를 싫어하는 남편은 간단하게 우리의 중고차를 선호했던 것이다. 그래서 한 국도착전 부산의 큰언니에게 부탁했고 8백만 원을 주고 이 매끄러운 매그너스 이 글을 샀던 것인데 친정식구들의 반응은 상상이상이었고 난감할 정도로 부담스러웠다. 왜냐하면 남편의 파견계약서와 명함에는 "director(중역, 임원)"라고 명시되어 있는데 부산에서 올라온 8백만 원 매그너스 이글이 도저히 맞지가 않았을 것이다.

"뭐야? 그 뭐 director 라며?"

"돈이 없어?"

남편은 그랬다. 있는 그대로.. 허세 없이.. 실속 있게... 그리고 중요한 그의 철학은?

"우리가 조금 쓰면 많이 벌 필요가 없잖아!"

노동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 싶은 남자였고 작은 것에 만족하며 가족과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살고 싶은 지극히 현실적인 남자라는 걸 한국에 온다고 바뀌지는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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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만에 친정에 방문을 했고 그곳엔 부모님과 형제자매 그리고 조카들이 모여 있었다. 한국에 온 이방인들과 막내딸인 나를 동생, 누나, 고모, 이모 등등의 자격으로 축하해 주러 온 친정가족들이 어마어마했다. '이게 한국식 가족모임인거지' 한국 토종인 나도 모여있는 가족수에 어리둥절한 판인데 세명의 독일외국인들은 어때했을까!

그리고 점심식사로 안방, 거실에 엄청난 크기의 상이 놓여 있고 그것도 거실엔 2개의 교자상이 펼쳐져 있었으며 안방엔 하나의 대형 상이 차려져 있었다. 안방에 차려져 있는 점심상은조카들과 우리 독일외국인 딸들 몫으로 나와 떨어져 있어야 하는 그녀들의 난감한 얼굴, 특히 베라의 얼굴은 식사도 하기 전에 울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남편은 1 m86 cm의 키에 롱다리를 바닥에 어떻게 해야 앉을 수 있을지가 큰 고민인양 이렇게 저렇게 시도해 보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정말 웃지도 울지도 못하게 하는 모양새를 하고 있으니 이 또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답은 참 쉽게 나왔다.

"거 상을 소파 쪽으로 좀 당겨라. 소파에 등을 대고 다리를 상 밑으로 쭉 펴"

친정아버님의 해답은 남편의 얼굴에 환한 미소와 '이젠 됐다'라는 안도였다. 모두들 얼굴을 돌려 웃는 모습에 나도 남편도 함께 웃었다.


"엄마, 여기 조기카지노 게임, 드세요!"


점심상위에 놓여있는 조기, 카지노 게임와 꼬리와 동그랗게 눈을 뜨고 있는 조기 다섯 마리! 남편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걸 곁눈으로 봤고 '이걸 어쩌나!' 등뒤에서 식은땀이 샘솟는 걸 감지한 나는 재빨리 조기카지노 게임를 떼어내어 다른 접시에 담았다. 두 가지 목적이 있는 조기카지노 게임 분해였는데, 하나는 남편의 사색이 된 얼굴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이 맛난 조기카지노 게임를 친정어머니께 갖다 드리고 싶은 사랑의 마음이었다.

남편은 생선을 안먹는다. 아니 못 먹는다.가시가 있는 생선, 또 생선카지노 게임가 있고 눈이 있는 생선을 먹는다는 것 자체를 상상도 못 하는 사람이다. "저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데 어떻게 먹냐? 너 참 대단하다"라고 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시장에 가면 다 손질된 생선, 즉 카지노 게임 없고 가시 없고 꼬리 없고 내장 없고 어떤 때는 피부도 다 벗겨진 생선만 사 와서 먹는다. 정말 손이 많이 가는 가족이다.

그리고 엄마에 대한 막내딸의 사랑이었다. 조기카지노 게임는.

조기머리 5개가 있는 접시를 들고 기쁜 마음으로 카지노 게임에게 달려가서 "엄마, 여기 조기카지노 게임, 드세요!"라고 큰소리로 말했다. 그 순간! 모든 시간이 멈춘 듯 모든 공간의 공기가 멈춘 듯 너무 조용하고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분위기가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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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엄마 조기카지노 게임 좋아하시잖아"


풍족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은 나름 많은 추억거리들이 나의 마음 저 어디엔가 자라 잡고서 가끔씩 앨범을 열면 그리움으로 나가오곤 했다. 육 형제! 3남 3녀, 우린 대등한 남녀 비율이었지만 위아래 서열은 엄격했고 남녀의 차이도 존재했었다. 그 차이는 매 식사 밥상머리에서 확연했는데 부모님과 남자형제들 한 상 그리고 셋 딸들 다른 한 상.. 이랬었다. 그랬어도 그 좁은 방에서 8명이 옹기종기 앉아서 먹던 식사시간은 매냥 즐거웠고 생선이 오르던 날은 서로 먹으려고 하지 않고 부모님을 제외한 형제자매들 간에는 보이지 않는 '오빠 드세요', '아니다, 난 비린내 나서 먹고 싶지 않구나' 사랑이 항상 함께 있었다.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시간!

문제의 조기머리는 조기가 상에 올라오던 날은 다른 식구들이 다 헤쳐서 살은 없고 머리만 남아있던 접시를 당신 앞으로 옮겨 놓으시고 카지노 게임는 정말 맛있게 드셨었다. "어두육미야. 엄만 조기머리가 제일 맛나다"라고까지 말씀하셨었고 난 그냥 그렇게 믿었다.


카지노 게임는 내가 내민 접시를 받아서 당신 국접시 옆에 놓고서 웃으신다.

"그래, 이 조기카지노 게임 잘 먹으련다. 나만 먹으련다."

그리고 크게 웃으셨다. 동시에 여기저기 큰 소리로 웃음바다가 만들어지고 있었고 그 웃음은 끊어지지가 않았다. 올케 세 사람은 너무 웃는 바람에 식사를 할 수 없을 정도여서 먹던 음식을 뱉었고 얼굴은 너무 빨개서 저러다 넘어가겠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오빠 언니 그리고 남동생은 참다가 숟가락을 놓고 화장실로 뛰어가는 남동생을 보면서 실소를 터뜨렸다. 여기서 이 상황을 이해 못 하는 사람은 나와 남편뿐이라는 게 더 이상할 정도로.

"이눔아! 카지노 게임가 조기머리를 왜 드셨겠냐? 니들 6육형제 입에 줄 조기, 조기머리밖에 카지노 게임입 차지였겠지"

친정아버지의 이 말씀으로 또다시 웃음바다가 되었지만 내 마음은 뜨거운 그 무엇인가가 내 속을 타 오르게 하는 걸 어찌할 수가 없었다. 얼굴은 화끈거리고 이 나이 먹도록 카지노 게임의 진심을 몰랐던 철부지인 셋째 딸이 저지른 이 행동을 남편에게 설명할 수 없는 이 상황이... 나이 든 철부지인 나였다.

"난 맛있다. 그만 밥 먹어"

카지노 게임는 웃음 반 흐뭇한 맘 반으로 식사를 계속하셨고 다른 식구들도 웃음을 참으면서 젓가락에 춤 사락을 주고 있었다.


막내 남동생이 그랬다.

"막내 누나가 순수해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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