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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선 Apr 16. 2025

카지노 게임

팟캐스트 <오직 카지노 게임하는 영화만이 살아남는다에서 못다 한 이야기 #3

대학에 갓 입학하고 얼마 안 되어 제법 큰 교실에서 교양 수업을 들었을 때였습니다. 출석을 부르는데, 다른 과 학생 중에 저와 성(姓)이 같은 여학생이 있더라구요. 희귀 성씨여서 초중고 내내 놀림만 받았었거든요. 그런데 제 종씨를 이렇게 난데없이 만나다니요. 호감이 급발진하지 않았겠습니까. 수업 마치자마자 그 여학생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죠. 제 소개를 하면서. 너무 반갑다. 나와 같은 성씨의 사람은 가족 외에는 처음 본다.. 뭐 이런 식으로 얘기를 꺼냈던 것 같은데, 그분이 카지노 게임 말이...





이러지 마세요오. 저 공부해야 해여...


.

.

.

.



아니 누가,


공부하지 말랬나?






얼마 전에 과학유튜버 '궤도' 님은 어느 방송에서 카지노 게임의 시점(始點)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에로스적인)사랑이라는 감정의 목적은 번식에 있을 테니까, 일반적인 카지노 게임의 시점은 2차 성징기를 지나 생식과 수태가 가능한 중고등학생 시절이 될 것이라고. 저 역시 이렇게 "어떤 자연현상에는 목적이 존재한다"는 접근방식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 의견에 토를 달 수는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실제로 중고딩 때 카지노 게임을 하기가 어디 쉽나요? 그런 건 대만 하이틴 로맨스 영화에서나 나오는 거 아닌가요? 적어도 80년대는 그랬습니다. 중고생, 한창 파릇파릇할 시절을 오직 대학입시를 위해 쏟아부었던 그때는, 사실 카지노 게임이라는 감정을 소중하게 간직하기에는 부모님 눈치가 너무 많이 보였었거든요. 그리고... 아마도 저 위의 경우에도 그런 정서가 대학 입학초까지 이어져서 그런 거 아니었을까요? 그.. 렇겠죠? 제가 너무 별로거나, 뭐 냄새가 났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겠..죠?


아무튼, 영화 <카지노 게임의 영신 역시 중고생 때는 공부만 열심히 했던 건지 사랑의 감정을 처음 느끼게 된 건 대학에 들어간 이후가 됩니다. 그리고, 줄넘기도 한번 제대로 안 해보고, 잽 날리는 법, 원투 치는 법도 모른 체 링에 올라가 그만 처절하게 망가지고 말죠. 뭐 사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아무리 그전에 혼자 샌드백을 많이 쳐봤다고 하더라도 첫 스파링 때는 손 한 번 제대로 못 뻗는 게 당연합니다. 그래도 영화 속 영신은 그나마 좋게 좋게 끝난 편 아닌가요? 아무래도 순정만화 스타일의 판타지 영화를 만들어야 하니까 구린내 나는 현실은 최소한으로 반영한 것이겠지만, 저로서는 마지막 쫑파티에서 얼큰한 취기에 감겨있는 영신을 보고 있자니, 지지리 궁상스러웠던 제 옛날 기억이 떠올라 쓴 물만 계속 올라오더라구요. 아니 왜, 도대체 왜, 왜 우리들의 카지노 게임은 음주가 합법적으로 가능한 나이에 시작했던 걸까요. 그건 마치 첫 스파링을 헤드기어 없이 글러브 없이 시작하는 거랑 마찬가지잖아요.


아 물론, 입에 담기도 챙피한 모든 찌질의 역사의 탓을 죄다 술 탓으로 돌리려는 건 아닙니다. 대학생 때 카지노 게임을 한다고 하더라도 술을 한 방울도 안 마시고 할 수는 있죠. 여기서 말하려는 건 어떤 안전망에 대한 거죠. 어떤 제한사항을 두고 시작하는 카지노 게임, 가족끼리 잘 아는 사이라든지, 입시공부 혹은 부모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지 못한 신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자제력. 이런 제한사항 - 보호장치들을 입고 나서 카지노 게임을 시작했다면, 조금이라도 덜 비극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거예요. 이별의 슬픔도 엄마 품에 안겨 달랠 수 있었을지도 모르잖아요. 관할 지구대 유치장에서 오바이트를 하며 비련의 스토리를 쓰는 게 아니라.


비단 카지노 게임이 아니더라도, 처음에 하는 일이 한 번에 제대로 되는 법은 많지 않습니다. 설명서 대로 끓이는 라면조차 처음 끓여보는 라면과 노련한 주방장이 끓이는 라면은 격이 다르죠. 얼마나 스파링을 많이 하느냐, 그리고 얼마나 실전을 많이 겪는가가 몸에 쌓이게 되는 거니까요. 처음 카지노 게임을 시작하려고 할 때 가장 힘든 건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내는 것이었던가요? 나는 저 사람을 이 만큼이나 좋아하는데, 과연 상대방도 나를 그만큼 좋아할까... 하는 불안감. 그러고 나서 조금 경험이 쌓이다 보면, 상대방의 마음보다 내 마음의 진정성에 더 의심하게 됩니다. 저 사람에게 자꾸 신경이 쓰이는 것이 단지 호기심인 건지, 아니면 상대가 먼저 보낸 호감에 고마운 감정이 드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호르몬이나 몸의 일시적 반응인 건지.. 자기 마음의 진정성에 자신이 없다 보니까 맘 놓고 시작을 하지도 못하는 상황이 생기게 되는 거죠. 반대로 자기 처지나, 군대문제, 여타 다른 상황에 부담감을 느껴서 과연 상대를 좋아할 만한 자격이 되는지 걱정하는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게 겹치고 겹져지면서, 결국 내 의지와 상관없이, 마치 지구 주변을 돌다가 갑자기 빨려 들어가듯이, 고백을 하게 됩니다.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 6회의 마지막 장면처럼요


복수 : 나 찾아왔어요?
경 : ... 네...
복수 : 왜요?
경 : ... 그냥요... 그냥... 그냥 찾아왔어요
복수 : 내가... 뭐 해줄까요, 전경씨?
경 : ...... 내가... 좋아해도 되나요?


드라마다 보니까, 이렇게 애틋하고 귀엽게 그려지지만, 자 오늘부터 1일! 하고 시작한다고 만사가 다 잘 풀리지는 않죠. 사실 앞서 서술했던 걱정들은 서로 고백하고 사귀고 난 다음에도 줄기차게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나 자신의 감정에 혹은 상대방의 감정에 대한 믿음이 옅어지다 보면 이제 슬슬 끝이 보이기 시작하는 거죠. 왠지 같이 대화를 하면 계속 상처만 받는 것 같고, 같이 있으면 편하기보다는 점점 불안해지고 그런 경우가 생깁니다. 좋은 감정으로 시작했지만 서로를 갉아먹는 관계로 발전하는 건 드문 일이 아닙니다. 미리 알고 아예 시작조차 안 할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처음에는 그걸 한 번에 캐치해 내기가 힘들겠죠. 결국 카지노 게임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좀 더 알게 되고, 자신이 좋아했다고 혹은 자신을 좋아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 대해 좀 더 알게 되는 경험으로 끝이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그걸 깨닫고 끝나는 경우는 무척 아름답고 바람직한 마무리일 거예요. 스파링이 끝나고도 자기 팔길이조차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니까요.


저요? 글쎄요. 아무것도 깨달은 게 없기에는 후유증이 지긋지긋하게 길었었죠.


머리가 깨진 적도 있고, (<러스트 엔 본의 알리처럼) 주먹 뼈에 금이 간 적도 있습니다. 도대체 어쩌자고 공영방송에서 반 고흐의 일생을 다룬 영화를 가족시간에 방영해 줬던 걸까요 (<열정의 랩소디 Lust for Life 1956). 어릴 적에 그걸 보고 예술가라면 그렇게 격정적으로 살아야 카지노 게임 줄 알았잖아요. 한쪽 귀 정도는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자를 줄 알아야 한다고.


그래도 여전히, 나 자신에 대해선 모르는 거 투성이입니다. 요것만큼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던 것도 전혀 새로운 부분이 문득문득 튀어나오곤 해요. 카지노 게임들과 만나는 일도 마찬가지예요. 오십이 넘어도 인간관계는 여전히 힘듭니다. 상대가 나에게 왜 이러는지, 내가 그런 거에 왜 또 일일이 상처를 받는지.. 여전히 헤드기어와 글러브 없이 헤딩만 해대는 일이 빈번히 일어납니다. 그래도, 몸소 깨달은 거 하나는 있어요. 다행히.



너무 아픈 건 참지말자는 거 하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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