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깊이를 알 수 없는 작은 농촌 마을, 겨우내 자던 괭이가 서걱서걱거렸다. 쉼 없이 스며드는 초록 숨결에 헐거워진 살얼음의 대지를 헤치자 뭉근히 김이 피어오른다. 헐벗은 나뭇가지에 새순이 움트는 햇살 두툼한 봄날, 논둑에 널어놓은 봄내음을 마시던 괭이도 대완의 아부지를 따라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다.
대완의 아버지는 양은 주전자에 담긴 막걸리를 한 사발에 아껴 부어서 마른 목을 축였다. 그리곤 뒤안의 묵은 겨울이었을 무말랭이를 오물오물 씹었다. 아쉬운 갈증에 한잔 더 기울이니, 사발 안에 봄볕이 쏟아져 그새 찰랑거렸다.
아지랑이가 밭고랑 사이로 도로 눕고 고랑과 이랑에 김이 피어오르는 봄길을 농부는 흥건한 얼굴로 자식처럼 바라보았다. 참으로 속이 보이게 얕고도 깊은 마음이카지노 게임 추천.
“올해는 농사가 잘돼야 될 긴데.”
작열하는 태양 아래 치성을 깃들여 허리를 굽혀 땀을 흘려도, 치성이 통하여 곳간이 가득 찰지라도, 대학 등록금조차 버거워하는 봉투의 두께가 아지랑이가 되어 아른거렸다. 자식에게만은 영웅이 되고픈 아버지는 소산물의 품삯을 탓할 수 없카지노 게임 추천. 반주를 마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햇살이 달라붙은 괭이를 향해 다시금 논둑을 걸었다. 취기 때문인지 부드러워진 봄볕 때문인지 괭이질에 더욱 힘이 실렸다.
느린 해빙을 끝낸 개울물을 사이에 두고 대완이 객지 하숙방으로 돌아오던 날. 산길을 구불구불 넘어 다니는 시외버스 안에서 대완은 가방 속의 종이봉투를 어루만졌다. 바스락거리는 돈봉투를 건네었을 때조차 아버지는 후줄근하게 늘어진 넌닝구를 입고 땀에 절어있었다. 아버지는 열심히 대지를 일구다 보면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해가 지면 환희 한 갑 뜯어 피는 깊은 한숨은, 당신의 꿈의 결말이 앞을 흐리다사라지는 부류의 것이라는 걸 매일같이 암시하고 있카지노 게임 추천.대완의 아버지는 농사로 부자가 되는 것 말고는 다른 꿈을 꿀 수가 없었다. 대완은 전공을 발휘할 일이 있다면,그런 아버지를 위해 쓰고 싶다는 바람을 속으로 품카지노 게임 추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마음으로 학교를 향하는 대완을 싣고 버스는 자갈을 태운 양 내내 덜컹거렸다.
1987년 봄, 복학한 대완에게 캠퍼스의 봄볕이 찾아들었다. 캠퍼스의 정원에 아지랑이가 필 때마다 아버지의 뒷모습이 겹쳐 보여 대완은 강의실과 독서실을 전전했다. 지난 학기의 성적을 만회하려면 다른 방법이 없었다. 봄꽃들이 침묵의 소리로 필연성 있게 피어나더니 어느새통통한 이파리들이 온 산천을 둘러싼 초여름밤. 대완은 학교 도서관에서 기말고사를 위해 공부를 한 후, 책가방을매고 도서관 건물 밖으로 나섰다.
도서관 복도를 나서자 평소와 달리 신나는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람들의 목소리와 북소리는 계단을 내려갈수록 점점 장대해져 갔다. 건물을 나서자 대완은단숨에 발길이 묶였다. 타 대학생들이 쓴 커다란 피켓들과 핏대를 세우는 목소리가 온 교정을 뒤흔들고 있카지노 게임 추천.
“독재타도, 호헌철폐...!”
“M대 학생들도 동참하라. 울라울라...”
대완은 자신의 발걸음을 의식하지도 못한 채무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우연찮게 그 풍경을 지켜보던 과후배들을 만났다. 대완은 일면식이 있는 얼굴을 향해 다가가 물었다.
“야. 타대학에서 왜 이곳까지 찾아와서 저러는 거냐?”
대완이 후배에게 묻자 그중 유난히 착하게 생긴 후배 영호가대답했다.
“요즘 시국이 시국인지라... 선배님. 우리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 거 아입니까?”
평소 성격 좋기로 유명한 형진이도 분을 못 참고 한 마디를 거들카지노 게임 추천.
“대학생이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지는 게 말이니 됩니꺼? 우리 큰집 칠순 넘은 할매도 책상 한 번 쳤다고 쓰러지진 않습니다.”
풀뿌리 이방인들의 울라울라 소리가 교정의 아이비를 휘감고 있었다. 어수선한 그림자 속에서 아버지의 꿈을 위해서 애써 모른 척했던 그림자들이 온 도시를 휘감기 시작했다. 대완은 잠시 가로등 아래 자신의 그림자를 쳐다봤다. 자신의 존재 없이는 아버지의 꿈을 이루는 대완의 모습도 존재할 수 없는 거였다.
‘아부지, 이번 학기만은 나를 위해 움직일랍니다.’
“얘들아.”
대완은 후배들을 불렀다. 대완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 후배를 향해 말했다.
“당장 내 하숙방에 같이 가서내가대자보 쓰는거 좀 도와줄래. 내일 대자보 붙이려면 새벽까지써야 할 긴데 개안채?”
대완의 제안에 후배들은 그제야 엷은 미소를 띠었다. 네명의 학우들이 울라울라 소리를 배경 삼아 하얀 막걸리와 하얀 도화지를 들고 힘차게 골목길을 행진했다. 상현달은 M대학교의 인디언들을 내려다보며 점점 둥글게 차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