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서서히 달구던 유월의 볕은 따사롭고도 뜨거웠다. 저녁의 거리는 퇴근하고 집이 아니라 군중을 향해 모이는 사람들로 날로 과밀해갔다. 버스정류장앞 조간신문에서 군중들을 본 카지노 쿠폰은 하얀 한복을 입고서 푹신한 멍석 위로 날아오르던 3년 전이 번뜩였다. 환호 어린 박수와 굿거리장단이 합심하여 카지노 쿠폰과 함께 응어리를 풀고, 공연이 끝난 후 막걸리 한 사발에 얼을 노래하던 지난날. 카지노 쿠폰은무대 밖에서도 자신을 따라오던 스포트라이트와 대치하면서도, 젊음들이 모이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햇빛에 충분히 적셔진 유월은 사람들이세상 하나 바꾸겠다고 거리로 향하게 했다.
낡은 군화를 신던 복학생과 군복무를 기다리던 세 후배들은 민중의 물살을 타고 당연하단 듯이 거리의 제일 앞에 서 있었다. 그것이 어른의 시쳇말로 세상에 도망칠 명분을 찾은 것인지, 드디어 함께 끓어오를 매질을 찾아 신이 난 것인지는 냉정하게확신할 수도없었다.자명한 건 대자보를 붙이던 네 명의 M대학 학생들도유월의 거리맨 앞에 서있었다. 여기저기 들끓는 교정과 거리의 기세만 봐서는 삽시간에라도 세상은 변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 자유로운 분자들의 맞은편에는선형의 검은 방패들이 대치한다. 잠시후 방패 뒤로 핀이 뽑히는 소리가 나더니 툭 하고 동그란 쇳덩이하나가 날아왔다. 바닥에 떨어진 최루탄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흩어지라는 명령을 받은 듯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
대자보를 붙이고 넷이서 저녁을 먹은 날이었다. 햇살 한뼘같던 교수님을만난 후,카지노 쿠폰은 같이 대자보를 쓴 후배들을 삼겹살 집으로 불렀다. 삼겹살은 선배인 자신이 당연히 사는 거라며웃던 카지노 쿠폰이 자연스레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니네도 거리로 나갈거제?”
“아이 그럼요. 설마 거리로 나와달라부탁한다꼬선배님이 산다 한 겁니까? 당연히 그럴 거였는데 저희야 얻어먹고 좋네요.”
철 없이 불판 위에 삼겹살을 집어먹는 후배들을 보며 카지노 쿠폰은 속도 없는 고마움을 느꼈다.
“그러다경찰에 잡혀갈 수도 있데이. 불효하는 거 안 무섭나?”
약간 토실하게 생긴성격 좋은 후배 하나가 크게 웃었다.
“그게 탈춤 추다가 경찰한테 잡혀간사람한테서 들을 말입니까?”
카지노 쿠폰도 막상 생각해 보니 제 모습이 웃겼는지 픽 하고 웃으며 후배 녀석의 등을툭 쳤다. 조용하던 후배 하나가 카지노 쿠폰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저선배님... 물을 게 있습니다.”
“뭔데? 편하게 물어봐라.”
후배는 주저하며 말을 시작했다.
“대자보 붙으면 이번엔 대학생만 오는 게 아니라 시민들도 모일 낀데, 경찰들은 데모하는 애들이나 시민들이나 똑같이 대하고 최루탄 던지겠지예?”
카지노 쿠폰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야 연기에 익숙하지만, 그날처음 맞아보는 사람들도 있을 낀데, 시위대가 해산하지 않을라카마우에하는 기좋겠슴미꺼?”
순간 모두조용해졌다. 테이블에는 여남은 고깃 조각이 말라가는 소리만 타닥타닥들렸다. 카지노 쿠폰은 잠시 생각하다 답했다.
“그야... 우리가 안 쓰러져야 안 되겠나.”
펑 탕탕탕탕...
최루탄 터지는 소리가 잔뜩 긴장한 허공을 잿빛으로 짓누른다.
“으아악...”
긴장한 공기에 공포탄이 요란하게 터지고 매캐함이 삽시간에 퍼지자 모든 것들이 한순간 혼란으로 소용돌이쳤다. 비장하게 자리를 지키던 사람들의 자리들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뒷골목이나 공원으로 달려가 메스꺼운 속을 토하며 게워내기를 반복하거나, 다리에 힘이 풀려 무력하게 눈물을 쏟아냈다.
화염병을 들고 최전선에 서있던 복학생카지노 쿠폰도 눈물이 나긴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고개를 돌리면 똑같이 눈물을 흘리며 맨 앞을 지키는 후배들이 있었다. 타협하지 않는 사람을 멍청하다고 하지만, 세상은 타협하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바뀌는 것이리라...
정신을 차리고 발아래를 보자 발치에 최루탄이 있었다. 카지노 쿠폰은 자세를 고쳐 잡고 한 다리를 힘껏 들었다. 그리고최루탄의 모양을 발등으로 느끼며 밀어냈다.
최루탄 하나가 연기를 내며 전투 경찰의 품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모두가 멍하니 연기의 움직임을 바라보며 자신이 맡은 역할을 서서히 기억하기 시작했다. 시위대에 스트라이커가 하나 있다면, 한쪽에선 힘차게 구호를 외치며 앞으로 걷고, 다른 쪽에선 전진 과정에서 쓰러진 사람들을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날랐다.
기억받지도 못할 텐데 화염병을 들고 최전선에 서 있는 이유를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무장한 채 방패를 들고 나란히 서있는 경찰들을 마주하고도카지노 쿠폰은 이상하리만치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시위가 시간과 횟수가 거듭되면서 최루탄이 연이어 터져도 카지노 쿠폰은 냄새조차 신경 쓰지 않았고, 시위대로 날아오는 사과탄을 피할 때면 묘한 쾌감마저 느꼈다. 코피가터지는 날도 있었고, 방패를 든 자와 부딪혀 쓰러지기도 했다. 그러나 카지노 쿠폰의 시절들은 어떤 형태로든 카지노 쿠폰을 단련했다. 어린 시절 고향에서 연마한 운동신경과 고등학생 시절 원펀치로 허름한 도장을 다니던 기억들은 카지노 쿠폰을 쓰러지지 않게 했다. 어느샌가 카지노 쿠폰은 사람이 아닌 생각조차 못한 거대한 종류의 것들과 싸우고 있었다. 그것이 혼자일 때도, 동아리 하나일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거리의 모두와 함께였다. 그렇기에 카지노 쿠폰은 최루탄이 날아와도 두려울 수가 없었다. 두려움 저변의 홀로였다는 분노와 민중과 함께라는 희망이 복학생을 그곳에 서 있게 하였다.
마침내 6.29 민주화 선언으로 뜨겁게 타오르던 불길은 종식되었다. 거리는 놀라운 속도로 비어갔다. 사람들은 퇴근 후 속속들이 귀가하길 반복했고, 날아오는 최루탄을 발로 차서 경찰에게 돌려보내고, 화염병을 정확하게던지던 카지노 쿠폰의 행적같은 것은 금세 잊혔다.
직선제 소식을 들은 날,카지노 쿠폰은 한 번 더 후배들을 불러 배불리 먹였다. 후배들이 속속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카지노 쿠폰은 다시 자취방에 홀로 남았다.
책더미가 숲을 이루고 세숫대야에 옹달샘처럼 물이 고인 도심속 허름한 단칸방. 오래간만에 방 한가운데에 대자로 누워 세숫대야에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소리를 들었다. 해진 난닝구에 무릎이 튀어나온 츄리닝 차림으로 누운 그를 자취방은 따스히 받아주었다. 숲 속은고요로충만하고, 대자보를 쓰던 책상위에 검은 마커가 카지노 쿠폰을 찬찬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카지노 쿠폰은 이거면 족하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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