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산동 이자까야 Apr 29. 2025

“돈 없어 치료 포기 않게”…부산대무료 카지노 게임 ‘선한 스승’

한 달에 한 번. 통장이 잠시 배불렀다가 반나절이면 홀쭉해지는 날. '작고 소중한 월급'은 매번 통장을 스쳐 지나가기 일쑤.이 '귀한 돈', 제 몸 돌보지 못한 채 '노동에 매달린 대가'를 생면부지 타인에게 조금이나마 떼어 준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죠.


"여전히 돈 때문에 필요한 수술을 할 수 없는 환자를 만나곤 합니다. 이런 환자가 수술받는 데 작게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부산대무료 카지노 게임 심장혈관흉부외과 이호석(53) 교수. 그는 지난 23일 부산대무료 카지노 게임에 스무 번째 기부금을 전달했습니다. 매달 100만 원. 2023년 7월부터 월급에서 100만 원을 떼 기부하기 시작한 것이 벌써 스무 달째.그는 정년을 맞는 2037년 8월까지 총 169개월간 1억6900만 원을 무료 카지노 게임에 기부하기로 약정했습니다.최근 스무 번째 약속을 지킨 겁니다.

무료 카지노 게임지난 23일 부산대무료 카지노 게임 장기려관 회의실에서 열린 기부금 전달식에 이호석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가 참석해 있다. 부산대무료 카지노 게임 제공


이 교수는 젊었을 땐 밤낮 없이 환자를 돌보는 것으로 소명을 다할 수 있겠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그때처럼 일하기엔 힘에 부친다고 생각했다네요.그렇다면 조금 다른 방식, 기부로 사회에 보탬이 되고자 다짐했다고 합니다.


그는 2006년부터 부산대무료 카지노 게임에서 환자를 돌봤습니다. 폐·식도·흉벽 종양과 로봇 수술이 전문 분야입니다. 지역 대학무료 카지노 게임 여건은 녹록지 않았습니다.기부를 약정했던 시점은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총파업을 벌였던 때입니다.부산대무료 카지노 게임은 입원 환자 대다수를 퇴원시키고, 하루 100건 가깝던 수술도 기약 없이 미뤄야 했습니다. 지난해 2월부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에 반발해 전공의가 대거 무료 카지노 게임을 떠났죠.


이런 어려움에도 이 교수는 무료 카지노 게임을 지켰습니다. 앞으로도 떠날 마음이 없다고 합니다.가장 먼저 "환자를 진료해야" 하고, 자리를 비운 제자들이 다시 현장으로 돌아오면 "선생이 남아 있어야 무료 카지노 게임을 빨리 정상화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입니다.무엇보다 정년까지 약정한 '월급 기부'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혹시라도 정년이 늘어나면, 매달 그만큼 더 기부하겠다"고도 말했습니다.


선한 영향력은 퍼져 나가기 마련. 이 교수의 직장, 부산대무료 카지노 게임엔 '장기려관'이 있습니다.'바보 의사' 고 장기려 박사. 1911년 팡안도에서 태어난 장 박사는 6·25전쟁 때 부산으로 왔고, 1951년 영도구 남항동 교회 창고를 빌려 '복음진료소(현 고신대학교 복음무료 카지노 게임)'를 마련했죠. 그는 이 '천막 무료 카지노 게임'에서 유엔(UN) 원조를 받아 6년에 걸쳐 피란민 등 하루 100여 명 환자를 무료로 치료했습니다.


1968년엔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설립합니다. 현 건강보험은 상상도 할 수 없던 시절, 그는 많은 이에게 의료 혜택을 줘야 한다는 신념을 가졌습니다. 이에 당시 담뱃값도 안 되는 월 60원을 보험료로 받고 민영 의료보험을 운영합니다.결국 의료보험조합 설립 움직임인 청십자운동을 전국적으로 일으켰고, 우리 사회 인식을 바꿔 놓습니다.


장 박사는 인술은 물론 실력도 출중한 외과의사였습니다.1959년 간우엽절제수술(간 대량 절제술)을 국내 최초로 성공합니다. 그가 이 수술에 성공한 10월 20일은 지금도 '간의 날'로 지정돼 있습니다. 또 부산복음무료 카지노 게임 설립자이자 초대 원장인 그는 1958년부터 2년간 부산대무료 카지노 게임장을 지내기도 했죠. 1975년엔 청십자무료 카지노 게임을 세워 원장으로 일했습니다.


유명한 일화도 꽤 있습니다.치료를 받은 환자가 돈이 없어 눈치를 보자 그는 밤에 몰래 무료 카지노 게임 뒷문을 열어 '도망' 가게 했고, 영양실조 환자의 처방전엔 '이 환자에게 닭 두 마리 값을 내어주시오'라고 썼습니다.


이처럼 부산 의료계에 장 박사가 미친 선한 영향력은 엄청납니다.그의 손길, 정신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죠. 평생 가난한 환자를 챙긴 장 박사는 집 한 채 없이 고신대무료 카지노 게임 옥상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그는 1995년 12월 25일 성탄절에 하늘로 갔습니다.


'한국의 슈바이처' '행려병자의 아버지' '성산(聖山·성스러운 산)' 등의 수식어만으론 장 박사를 기리기에 모자람이 있습니다. 그는 아시아의 노벨상 '막사이사이상'을 비롯해 국민훈장 무궁화장 등을 받았습니다. 2018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그를 '과학기술유공자'로 지정했습니다.


훌륭한 스승이 있으니, 제자 또는 후배들도 그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겠죠.이 교수 같은 의사가 괜히 부산에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의정 갈등이 장기화합니다. 이 교수의 말이 인상적입니다. "제자들이 돌아오면 선생이 있어야 한다." 한시라도 빨리 갈등의 골을 메워, 젊은 의사들이 선한 스승 밑에서 뛰어난 교육을 받기를 바랍니다.부산에서 '제2, 제3의 장기려'가 줄 잇는 날을 기다립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