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기분이 어때요?"
"흠,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그냥, 뭐, 나쁘지 않아요."
"살면서 내가 정말 좋아했던 것이 있나요?"
"좋아했던 것이요? 이것도, 글쎄요. 딱 떠오르는 게 없네요. 잘 모르겠어요."
"우와, 00님은 좋은 감각을 가지셨네요!"
"네? 제가요? 에이, 설마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혹시 내 얘기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오늘의 글을 잘 읽어봐 주시길 바란다. 사실 이 대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그러니까, 내 이야기다. 과거의 알레는 늘 '잘 모르겠다'를 습관처럼 입에 달고 살았던 사람이다. '과거'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현재'는 나를 더 잘 알기 때문이다.
모르긴 몰라도 우리나라에는 과거의 나처럼 자기 카지노 게임이 부족한 사람들이 제법 있을 거라 생각한다. 겸손이 미덕인 나라인지라, 개인보다는 전체를 중히 여겼던 유교문화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나라인지라, 자기를 드러나지 않도록 강요받으며 자랐기 때문이다. 지금은 좀 다를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80년대 태생인 내가 자라던 시절은 모난돌은 정을 맞는 시절이었다.
4년간의 카지노 게임와 몇 개월 째 이어지는 라이프 코칭을 통해 나를 다각도로 해체하고 분석하며 들여다 보길 이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자기 카지노 게임이 부족했던 이유에 대해 몇 가지를 알게 되었다. 특히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자주 되풀이했는데 오늘은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보려 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는 답이 반복되는 이유는 단순한 기억력 부족이나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보통은 더 근본적인 내면의 이유를 가지고 있다. 즉 나의 내면에 어떤 심리적 장벽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첫 번째 심리적 장벽은,'좋아함'이라는 감각에 대한 불신 또는 억압을 들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좋다는 감정이 올라왔을 때'내가 좋다고 느낀 게, 이게 진짜 맞는 걸까?'라는 생각이 바로 올라와 헷갈리게 만든다. 한 가지 단서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어린 시절부터 '그런 거 말고 00 해야지'라는 식으로 외부 기준에 익숙해진 경우를 들 수 있는데, 다시 말해 카지노 게임감정이 존중받지 못한 경험이 쌓였을 가능성이 크단 소리다.
모르긴 몰라도 의외로 많은 카지노 게임에 해당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막상 내가 아빠가 되니 생각보다 저 표현을 자주 쓴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빠로서 내 아이에게 더 좋은 제안을 해주고 싶은 것뿐인데 그것이 자칫 자녀의 감정이 존중받지 못하는 경험을 남을 수 있겠다는 걸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두 번째는, '좋아한다'라고 말하면 잘해야 할 것처럼 여기는 카지노 게임다. 성공 스토리에 종종 등장하는 것 중 하나가 "어떤 한 가지를 좋아해서 파고들아 보니 성공한 사람이 되어있더라고요"이다. '우와, 대단하다!'라고 생각하며 가볍게 넘기면 그만인 것을 자꾸 이렇게 되새김질하는 사람이 있다. '뭔가를 좋아한다는 건 끝을 볼 만큼 빠져들어야 하는 거구나. 그럼 난 좋아하는 게 아니네.'
나는 '그냥'이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말 그대로 당장은 별다른 이유가 떠오르지 않지만충분히 좋아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걸 다 잘해야 한다고 여기는 이유는 성과 기반의 사고를 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뭐든 성과를 내야만 한다는 심리적 장벽이 존재할 카지노 게임 좋아한다는 것은 곧 잘해야 하고, 성과로 연결되어야만 한다는 자연스러운 사고 체계를 가지고 있다면 '좋아한다'라고 말을 하는 것이 매우 버거운 일이 될 수밖에 없다.
마지막 셋째는, 내 주변의 익숙한 타인의 기준이 내 안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카지노 게임다. '좋음'에 대한 판단 기준이 전적으로 내 기준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적 기준에 뿌리내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첫 번째 카지노 게임와 유사한데 내가 좋았던 걸 무시당했거나, 남들에게 '인정받는 선택'을 우선해 온 삶의 결과일 수 있다. 이런 카지노 게임에 지금 와서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을 묻는 건 낯설고 두려운 탐험처럼 느껴진다.
3가지 경우를 살펴봤는데, 나는 카지노 게임를 통해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먼저 '내가 좋다고 느낀 게, 진짜 맞는 걸까?'에 해당하는 감각 불신형에 대해 알아보자. 감각 불신형의 카지노 게임 가장 필요한 건 내가 나를 믿어주는 연습이다. 나 같은 카지노 게임 매일 아침 거울 앞에 서서 3분 간 나를 바라보았다. 나를 바라보며 나를 믿는다는 말을 되풀이 하거나, 나를 긍정하는 말, 신뢰의 말을 반복했다.
글을 쓸 때도 어떤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특별한 이유를 붙이기보다 그냥 좋았다고 있는 그대로 써보는 거다. 그냥 좋아하면 안 될 것 같다는 마음이 처음엔 불편하게 할 수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괜찮아', '그래도 돼'라고 되뇌며 기록을 이어가기를 반복하다 보면 점점 심리적 장벽이 낮아짐을 느끼게 된다.
두 번째 카지노 게임에도 비슷하다. 살면서 한 번이라도 성과와 상관없이 좋아서 행동했던 것이 있다면 그 기억을 떠올리며 그때의 감정을 글에 남겨 보자. 솔직히 말해서 내가 뭘 좋아한다고 했을 때 나에게 성과를 요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내가 나를 압박했을 뿐. 아무런 성과가 없이 좋아해도 문제 될 게 없다는 걸 경험하고 나면 한편 허탈해질 것이다.
세 번째의 카지노 게임에는 외부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공간을 선택하고 그 안에서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것을 선택해 보는 연습을 해보자. 카지노 게임에 따라 다르겠지만, 혼자만 머무를 수 있는 코인노래방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마음껏 불러본다던가, 아니면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훌쩍 여행을 떠나 마음이 이끄는 대로 선택해 보는 시간을 보내보자.
중요한 건 순간의 감정들을 글 속에 잘 기록해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삶의 관성은 꽤 힘이 강하기 때문에 기록해 두지 않으면 익숙한 자리로 돌아가기 쉽다. 일상에서 벗어나 이런 경험을 해본 카지노 게임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역시 그 감정을 잊어버릴 수 있다. 그럴 때 남겨진 기록을 꺼내 보며 그날의 기억, 감정을 되새김질해주면 도움이 된다.
나답게 살아가기 위해선 자기 카지노 게임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나의 감정을 잘 살필 수 있으면 좋다. 어떤 선택을 하거나 행동을 한 뒤에 편안함이 따라온다고 해서 모두 나다운 선택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익숙함에서 오는 편안함을 무시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나다운 선택과 익숙한 선택을 구분할 수 있는 팁을 남겨 보겠다. 둘 다 편안함 뒤따른다 해도, 나다운 선택 뒤에는 주로 뿌듯함, 자부심, 기분 좋은 긴장 후의 이완과 같은 느낌을 느낄 수 있다. 반면 관성을 따랐을 때는 무감각, 무난함, 또는 의욕 없는 상태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즉 나다운 선택 뒤에는 긍정의 확장감을 느낄 수 있는 반면 익숙함을 따를 카지노 게임 나 자신을 잠깐 중립 상태에 머무르게 하는 '정지 버튼'을 누른 느낌이라고 할 수 있다.
살아온 시간이 저마다 다르기에 오늘의 기록이 모두에게 다 들어맞진 않을 것 같다. 앞서 말했든 위의 카지노 게임는 모두 나의 카지노 게임에 해당하는 것이기에 혹 유사한 경험을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정리해 보았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벌써 4년째 글을 쓰며 나를 들여다보고 있다. 절대 짧지 않은 시간이며 또 어설퍼도 축적된 시간은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나와 4년 전의 나는 분명 나의 감정을 느끼는 민감도도 차이가 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처음부터 이런 걸 알고 시작한 것도 아니고 그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서 글을 쓰며 나에게 질문하고 답하길 꾸준히 반복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누구라도 할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나 자신에 대해 '잘 모르겠어요'를 반복하고 있다면 조금만 더 나에게 머무는 시간을 가져보자. 알기 위해선 머무름은 필연적이다. 머무르기 위해선 멈춰야 한다. 그래서 글을 써보라는 것이다. 카지노 게임만큼은 누구라도 편하게 접근할 수 있으니까.
오늘도 글을 통해 나다움으로 향하는 당신의 여정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