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게임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뒤로 자주 지난 경험과 기억을 떠올려 보곤 한다. 최근 머물러본 카지노 게임은 부러움이었다. 카지노 게임은 내 몸이 나에게 보내는 정직한 카지노 게임다. 유달리 누군가의 어떤 면에서 반복적인 부러움이 올라온다면 그 지점에 머물러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그들을 카지노 게임워하게 만들었을까?'
'매번 유사한 순간에 올라오는 이 카지노 게임은 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나는 내 마음을 살피기 시작했고 그들에게서 3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1. 어제보다 나아진 오늘을 만들어낸다는 점.
2. 세상이 어떻고 누가 뭐라든 자기만의 여정을 걷는다는 점.
3. 시행착오를 마땅히 여기고 기꺼이 받아들이며 계속 실행한다는 점.
3가지로 이유를 적어보긴 했지만 따지고 보면 이들은 한 문장으로 연결된다.
'세상이 어떻고 누가 뭐라든 자기만의 여정을 걸으며 시행착오를 마땅히 여기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태도로 계속 실행하여 결국 어제보다 나아진 오늘을 만들어내는 사람.'
이런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과 나를 비교하며 위축되거나 심한 경우엔 마음속 우울감마저 느껴지는 것이 반복되었다. 마음을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깊어지는 부정적인 카지노 게임에 한참을 머물러 있던 적도 많았다.
사실 그때는 '카지노 게임은 마음이 보내는 카지노 게임'라는 것을 잘 몰랐다. 특히 부러움은 보다 강력한 카지노 게임였지만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그저 우울감에 젖어 끊임없이 비교하며 나를 폄하했다.
지금에야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그땐 내가 나를 존중해 주지 못했고 존재로서의 나의 가치를 인정해주지 못했기 때문에 알아차릴 수 없었다는 것이다. 남들이 아무리 내 안의 변화와 나의 꾸준함의 가치를 이야기해도 꽤 오랜 시간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기며 살아온 것도 같은 이유였다.
내가 부러워하는 대상은 곧 내가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마음이 부러움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던 이유는 자기 존중과 자기 확신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삶의 이상향이 있다는 건 명확한 방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인데 단지 당장의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 길을 걷지 않았다.
'인생'이라는 게 길을 알고 나아가는 게 아니라 나아가면 곧 그게 내 길이 되는 법인데, '인생'이 '내 인생'이 되니 선뜻 움직이지 못했다.
최근 가까운 지인을 보면서 '변화'라는 단어가 자주 떠올랐다. 잘 짜인 계획을 세우는 것도 아니고 탄탄한 기획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끊임없이 실행하며 눈에 보이는 변화를 만들어내는 그의 모습을 볼 때마다 '부러움'이 강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의 행보를 오래 지켜보면서 내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그 카지노 게임의 실마리를 발견한 건 얼마 지나지 않았다. 이제야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확실히 알게 되었고, 남은 건 선택하는 것뿐이다.
부러움은 마음의 카지노 게임 중에서도 강력한 욕망을 담고 있는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만약 내 안에 부러움이 존재한다면 애써 덜어내려거나 아닌 척 부정하기보다 그 자리에 머물러 보자. 삶의 변화는 불편의 다리를 건너겠다는 결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시행착오를 겪어 보니 깨달은 건 타협을 통해서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설령 변화가 일어나도 미미한 수준이다. 대부분의 경우 관성에 의해 다시 돌아간다. 카지노 게임은 의지를 끌어올릴 마중물과 같다. 그러니 그 순간을 놓치지 말자.
지금 당신은 어떤 부러움을 느끼고 있는가? 설마 하거니와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카지노 게임을 밀어내며 살아가는 건 아닌가? 혹 그런 마음이라면 부디 생각을 바꾸길 바라본다. 부러우면 지는 게 아니라 행동해야 할 때라는 걸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