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꿈은 뭔가요?'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당신은 뭐라고 답을 할 것인가. 꿈에 대한 답은 언제나 추상적이다. 마음 한 편 '이건가? 저건가?' 헷갈릴 때가 많다. 어릴 적에 어른들에게 종종 들었던 말이 '사람은 큰 꿈을 꿔야 한다'는 것이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이 말을 계속 들었는데 그때마다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사람이 포부가 커야지!'
세월이 한참 흘러 40대가 되었다. 직장 생활을 할 땐 꿈에 대한 이야기 보단 현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내 집 마련, 자녀 학업, 재테크, 자산 증식과 같은 이야기가 그들의 주요 안건인 듯 보였다. 회사를 떠나 나다운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만나니 다시 꿈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물론 경제적 자유라는 이름 아래 현실적인 부분도표현하곤 했지만 그럼에도 꿈꾸는 사람들을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무척 반가웠다.
오랜만에 지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꿈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 흘러가는 대화 중에 무의식적으로 '큰 꿈'이라는 표현이 튀어나왔고 그 순간 멈칫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우리는 꿈에 대해 이야기할 때 크기를 말하게 되었을까요?"
"큰 꿈이라고 표현한다는 건 상대적으로 작은 꿈도 카지노 게임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거고, 그 말인즉슨 꿈들도 비교 대상이 있다는 뜻이라고 볼 수도 있겠죠?"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나도 모르게 또 비교하고 있었네요."
대화를 곱씹어 보며 은연중에 표현카지노 게임 것들에 무의식적 비교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에 놀랐다.
"꿈에 크기가 있을 수 있을까요?"
"아니겠죠. 꿈은 '고유한 나 자신'의 것이니까요."
"그럼, 꿈이 뭘까요?"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우리의 대화는 점점 꿈에 대한 사유로 이어졌다. 그래서 꿈은 뭐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 부분에 대해선 당신도 한 번 자신만의 정의를 내려보기를 바라본다. 집에 돌아와 내린 나만의 정의는 '꿈은 내가 살아가고 싶은 삶의 방향이다'였다. '지금은 멀어 보이지만, 그 방향으로 갈 때 살아있다고 느껴지는 상태'이며 '내가 가장 나답게 카지노 게임할 수 있는 지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근데 왜 우린 꿈을 크기에 빗대어 말카지노 게임 것이 익숙해진 걸까요?"
이 물에 대한 답 또한 집에 와서 곱씹는 중에 떠올랐는데, 내가 내린 결론은'비교'와 '증명'으로 카지노 게임의 가치를 매기려는 방식때문이라는 것이다. 학창 시절 성적별 등수에 따라 카지노 게임의 가치가 달라지듯, 대학교, 회사의 이름이 곧 나의 몸 값이 되듯, 거주지와 자산이 나의 삶의 의미가 되는 세상에서 '비교'와 '증명'은 끊임없이 작동하는 삶의 굴레와 같다. 그러니 꿈도 이왕이면 큰걸 가져야 있어 보이는 것이다.
"우리는 왜 이런 의식 구조에 갇혀 살아가고 있었던 걸까요?"
"결국 내 카지노 게임(Being)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겠죠. 그러니 자꾸 어떤 행동(Doing)의 결과로써 나를 증명하기 바빴던 것 같아요."
코칭을 받으며 깨닫게 된 건 어떤 누구도 행동(Doing)이 카지노 게임(Being) 보다 클 수 없다는 것이다. 카지노 게임로서 나의 가치는 카지노 게임만으로 이미 충분하기에 행동의 결과가 좋고 나쁨과 상관없이 존중받아야만 한다. 그런데 결과가 좋을 땐 가치 있는 카지노 게임가 되고 반대의 경우 쓸모없는 카지노 게임로 치부하며 살았던 건 아니었을까? '쓸모없는 카지노 게임'라는 표현이 다소 극단적이라면 '인정받기엔 충분하지 않은 카지노 게임'라고 이야기하면 좀 더 와닿을 것 같다.
행동의 결과가 카지노 게임를 앞서는 순간 끊임없이 비교할 수밖에 없다. 각자가 추구하는 가치의 정점에 있는 곳까지 이르지 못하면 여전히 부족한 카지노 게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큰 꿈'을 꾸라고 말하지 않기로 했다. 비교와 증명에 압도되어 꿈조차 카지노 게임 못하고 살아가는 삶은 너무 슬프지 않나. 그러니 이제는 나다운 꿈을 꾸자. 명사 형태로 꾸는 꿈이 아닌 동사 형태의 꿈을 꾸는 것이다.
"저는 그냥 온전한 나로 살아가는 게 제 꿈이에요."
오늘 만난 지인의 답이었다. 너무 멋진 답이었고 그의 얼굴에서 느껴진 평온함은 짙은 잔향을 남겼다. '무엇이 되겠다'가 아닌'어떻게 살아가고 카지노 게임'로꿈을 재정의하고 나니 방향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인과 나누었던 대화와 곱씹어 정리한 생각을 통해 나는 이런 방향을 발견했다.
'나는 카지노 게임 자체로 사람들에게 평온과 자기 믿음을 선물하는 삶을 살아가겠다.'
마치 오래된 숲 속에서 느껴지는 평온함처럼 나를 만나는 사람들에게 정서적 안온함이 전해질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나가고 싶어졌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당신만의 꿈을 꿔도 괜찮아요', '당신은 이미 카지노 게임만으로 충분한 사람이에요'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길 바라는 마음이 더 간절해졌다.
그동안 나를 가로막고 있던 것이 한 꺼풀 걷힌 기분이다. 코칭을 해보겠다고 했다가 망설였던 마음엔 여전히 결과로 나를 증명하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카지노 게임만으로 충분한 나를 믿고 나와 같이 망설임과 꾸물거림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해 주고 싶어졌다. 당신은 이미 충분하다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물어보고 카지노 게임.'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 이 글을 읽기 전과 후 혹 당신의 생각이 달라졌다면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하다. 어떤 답을 내렸든 당신의 꿈을 응원한다.